출판사 푸른숲에서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과 손잡고 진행한 위화 작가의 신작 <원청> 미리 읽어보기 이벤트를 신청해 책을 미리 읽어보았다. 요새 재밌게 읽은 책들 상당수가 푸른숲에서 낸 책이길래 출판사 인스타도 팔로우해서 보고 있던 터였다. 위화 작가 책을 간만에 접해보는 것이라 기대도 컸다.

예~~~전에 중국 여행할 때 위화 작가 신작을 서점에서 보고는 한국 출간되기 전이길래 이상한 부심에 끌려 사온 적이 있다. 읽는 속도가 너무 더뎌 완독 못하고 결국 포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도 번역돼 나왔다. '원서로 언젠가 읽을거야!!'라는 생각에 한국에서 출간된 건 따로 구해 읽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이 역시 푸른숲에서 출간했다. 2018년에 나온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란 책이다. 생각난 김에 원서 다시 중국어 공부할 겸 시작해야겠다... 

 

가제본 <원청>. 정식 출간되는 책은 당연히 표지가 다르다.

 

1.

책 같이 읽기 기간이 약 한달간이라 미루고 미루다 어제 책을 집어들었다^^; 메일로 매일 담당 편집자님의 질문 메일이 오는데 확인하면서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가 주말 약속 취소된 김에 맘 잡고 펼쳤다. 중간에 몇시간 쉬긴 했지만 하루 꼬박 걸려 다 읽었다. 이야기를 워낙 잘 쓰는 작가이기도 하고, 이 거대한 이야기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 중간에 울기도 했다. 책 보다 이렇게 눈물 흘리기는 정말 간만이었다. 

 

2. 

이 책은 191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1910년대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엄청난 격변기였기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정보 하나만으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얼마나 굴곡진 인생을 살게 될까에 대해 짐작하게 된다. 작가가 한국어판 서문에도 "저는 그런 난세 속 대한제국에도 <원청>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밝힌다. 

 

3.

책은 중국 남부지방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진'이라는 지역에 어느날 나타난 '린샹푸'라는 남자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그는 커다란 봇짐을 지고 갓난아기인 딸을 안고 다니며 젖동냥을 한다. 그는 어디에서 왔고, 왜 이곳에 머무르는가. 

린샹푸는 북방지역 린가 가문의 도련님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혼자 큰 벽돌집에서 살아가는 그는 집안일을 돕는 톈가 집안 아들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목공일을 배운다. 평온하지만 어딘가 따분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아청'과 '샤오메이'가 나타난다. 경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던 그들은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고 린샹푸는 선뜻 받아들인다. 다음날 아청은 사정상 혼자 먼저 떠났다가 샤오메이를 데리러 와야겠는데, 그동안 샤오메이를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샤오메이가 신경쓰였던 린샹푸는 이 부탁 역시 흔쾌히 받아들이고 아청은 떠났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에게 결혼을 청하고 샤오메이도 거절하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을 한 그들은 안정된 삶을 이어가는데 어느날 샤오메이가 린샹푸 집안이 몇대를 거쳐 모아온 금괴를 들고 사라진다. 린샹푸는 분노와 그리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전의 생활을 이어가던 와중 어느날 배가 부른 채 부푼 발로 샤오메이가 찾아왔다. 그의 아이마저 데려갈 수 없다는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용서와 환대 속에서 딸을 낳고,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또 떠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찾아온 행복을 맘껏 누린다. 그러던 어느날 샤오메이가 또 사라졌다. 딸을 둔 채. 금괴도 하나 손대지 않은 채. 

린샹푸는 이번엔 마냥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딸을 안고 샤오메이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원청'이란 지역에서 왔다던 아청의 말 한마디에 기대서, 아청과 샤오메이가 쓰던 사투리에 기대서 샤오메이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4.

600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인데도 흡인력 높은 이야기 덕분에 술술 읽혔다. 이야기 전반의 핵심이 되는 린샹푸라는 인물의 발걸음을 따라 이 책도 중국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오간다. 

작가의 서문을 읽고 시대에 휩쓸리는 인물의 격랑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반부에는 린샹푸라는 주인공이 시대보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험난한 인생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나온다. 근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어쩌면 그가 샤오메이와 만나게 되는 우연도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시진에 머무르다 이내 정착하는 린샹푸와 시대가 겹쳐지게 되는 본격적인 장면들은 토비의 등장부터다. 잔혹하기로 유명한 토비들은 청나라 멸망 후 강력한 중앙권력이 사라져 혼란한 시기에 나타난 도적떼다. 책에 묘사되는 그들의 악행은 너무 잔인하고, 위화 작가가 또... 너무 끔찍하게 그를 묘사해서 책 읽다가 처음 위기가 왔다. 이런 무질서의 시대에 가장 취약한 건 역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 암담했다.  특히 가장 악랄한 토비였던 장도끼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끔찍한 인물이라 빨리 죽어줘,,,,,,바라면서 읽었다. 

공권력이 무너진 이후의 세상은 아마 <원청>에 나오는 시진 일대처럼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5. 

그런데 같은 시기에 상하이는 완전히 별세계다. 샤오메이가 아창과 함께 찾은 상하이는 근대화의 정점에서 돈을 흡수하면서 급속 성장하고 있었다. 1910년대 근대화라는 시대적 배경을 더 잘 보여준 건 오히려 상하이 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6. 

(*스포*)

 

- 린샹푸가 유언으로 남긴 편지를 읽고 시진으로 찾아온 톈가 형제의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특히 린샹푸와 톈다의 관계가 애틋한데, 린샹푸를 보기 위해 주검으로라도 찾아온 톈다의 사랑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톈다는 린가 집안의 일을 돕는 사람이지만 린샹푸가 아기일 때부터 그를 돌 본, 어떻게 보면 세상을 일찍 떠난 부모보다 더 부모처럼 린샹푸를 지켜온 사람이었다. 린샹푸가 톈다와 계급적 차이를 크게 두지 않고 함께 일하는 모습에서도 둘의 관계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관계가 책의 그 어떤 두 사람보다 절절하다고 느꼈다. 

 

- 천융량 무리와 토비가 싸우는 걸 보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토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는 문장도 굉장히 간결했지만 의미심장했다. 

 

- 토비들이 사람들을 납치해가서 고문하는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난세에 영웅난다는 말이 있듯 난세에 인간의 탈을 쓴 악마도 나타나는 셈이다.

 

- 구이민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장사꾼인 만큼 돈에 욕심이 많고, 겉치레에 신경써 여덟명이 끄는 마차를 탈 만큼 속물이면서도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린샹푸의 마지막을 끝까지 배웅하는 모습엔 우정과 의리도 느껴졌다. 그의 아들들 묘사는..흠...예...

 

- 린샹푸가 샤오메이와 결혼하지 않고 매파가 소개시켜준 류펑메이와 결혼했다면 평온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렇지 않았을 거 같다. 시대의 풍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역과 사람은 없었으니까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엄청난 추위가 찾아오는 린샹푸의 고향에도 토비가 다른 얼굴로 찾아왔을 것이다. 

 

- 책을 보면서 소름끼쳤던 부분이 '또다른 이야기'라고 해서 샤오메이와 아청의 히스토리를 풀어내는 두번째 챕터. 

아창의 남색 장삼과 샤오메이가 만든 아기옷과 신발, 모자의 퍼즐이 앞 챕터와 맞춰지면서 완전 소름 돋음... 위화 당신 천재..?

 

7.

인상 깊었던 문장

- 어렴풋하게 '나뭇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사람은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라는 구절이 보여 구이민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예전에 본 중국영화 <낙엽귀근>이 생각난 구절. 이 영화에도 저 문장이 그대로 몇번이고 인용된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고)

 

- 톈시 형제들은 큰형과 도련님을 끌며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먼 길에 올랐다. 린샹푸가 어렸을 때는 톈다의 목말을 타고 늘 둘이 함께 마을과 벌판을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나란히 누워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뿌리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 오로지 결혼식 날만 두 손을 소맷자락에 넣은 채 줄줄이 들어왔다가 또다시 두 손을 소맷자락에 넣은 채 줄줄이 떠난 게 전부였다.

 

- 죽은 듯 고요하던 그들의 삶이 시리촌을 떠나 선뎬으로 가는 대나무 지붕 배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상하이에서는 인력거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 아기가 웃는 걸 보고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다가와 그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어투로 묻자 아기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어투를 바꿔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아기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대파 두 뿌리가 쉼 없이 흔들렸다.

(린바이자를 아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 모두가 귀히 여긴다는 미스터 션샤인의 애기씨가 떠오름)

 

-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편의 당혹감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 그렇게 샤오메이가 땅에 묻혔다. 생전에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설립을 겪었던 그녀는 죽어서 군벌의 혼전과 토비의 난무를 피하고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중략) 샤오메이는 17년을 기다린 뒤에야 그곳에서 린샹푸와 만났다. 

유쾌발랄한 표지, 재치가 묻어나는 문장들이지만 눈물을 삼키며 읽었다. 막연하게 느꼈던 서러움을 얼굴 모르는 작가가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있다.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담론에서마저 밀려나있던 차녀들을 소환했다. 작가는 '차녀성'이라는 명명과 함께 둘째들을 불러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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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 힙합 - YES24

가정이라는 정치적 장소에서처음 사랑하고 최초로 상처받으며 만들어지는 차녀의 세계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인 사소하고 미묘한 서러움과결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근원에 대하여내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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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국제도서전 문학동네 부스에서 단연 눈에 띈 책. 와, 이제 차녀들을 소재로 하는 책도 나오는구나 해서 무척 반가웠지만 두손 가득 든 책들이 무거워 우선 눈도장만 찍었다. 동네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한 후 뒤늦게 받아보고 부랴부랴 읽었다. 

 

1. 

작가는 사남매의 둘째다. 위로는 언니, 밑으로는 나이차가 한참 나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꽤 오래 두자매의 막내로 살다가 늦둥이들이 태어나면서 언니와 동생들 사이에 껴버린다. 여기서 작가가 겪는 형제자매와의 관계는 한참 복잡해지는데 주로 장녀인 언니와의 관계에서 겪는 감정과 사연들이 나오기에 공감을 하며 읽었다. 

 

2. 

-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내면의 중립 기어, 뭐라도 해야 나를 봐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키운 관종력, 제일 좋은 것을 선뜻 요구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은 보통의 차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질이었다.

(이 통찰에서 무릎 꿇음. 난 관종력은 없지만 '내면의 중립기어 + 머뭇거림'에서 누구한테 지지 않음 ^_^;)

 

- 그래서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다. 당연하게 제 몫이 보장되는 첫째와 달리 끊임없이 남의 그릇을 힐끔거린다. 

(마찬가지다. 언니와 함께 자라며 언니에게 주어지는 몫들에 속이 상해 눈물 깨나 흘렸다.. 그마저도 대놓고 화내지 못하고 뒤에서 입 삐죽 튀어나와서 흐르는 눈물 닦아내기 바빴던 어린시절. 솔직히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엄마는 두 딸에게 너무 좋은 사람인데 나는 날 향한 사랑의 크기가 조금 작은 것에 엄청 화가 나다가도 이내 이게 엄마를 원망할 일인가 싶어 마음을 다스렸다. 20대까지도 이런 마음의 훈련을 반복하니 20대 후반부터는 서운한 마음이 좀 덜 하다) 

 

- 공평하게 막대기가 하나씩 꽂힌 쌍쌍바조차 똑같이 쪼개지지 않는데, 물리적인 노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랑이 어떻게 공평하게 딱 나뉘어 분사되겠는가. 

 

- 동성의 또래, 그리하여 비교 가능한 존재가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 잘 때도 먹을 때도 웃을 때도 울 때도 쉴 때도 쌀 때도 그 존재가 내 시야에 얼쩡거리며 신경을 살살 긁는다는 것. 그 존재와 어린 시절 유일한 에너지 공급원이자 삶의 전부인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굶주린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상대의 자존감을 바각바각 갉아먹고, 또 그만큼 파먹힌다는 것. 

 

- 나의 계보이자 누군가의 곁에도 있을 우리의 .... 원망과 사랑, 연민과 이해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들통에서 푹푹 끓는다. 

(작가의 할머니들 이야기. 많이 공감했다. 나의 할머니는 네번의 출산 끝에 낳은 첫번째 아들인 우리 아빠를 6남매 중 가장 사랑했고, 아빠의 아들을 간절히 바라셨다. 언니가 태어나고는 내가 아들이길 엄청 바라셨다는데, 딸인 걸 알고는 산부인과에 발길 한번 안주셨다지. 공부를 잘했던 언니와 내가 좋은 성적표를 가져오고 원하는 대학을 가고 직장을 잡을 때마다 꼭 끝에 덧붙이던  '아들이면 참 좋았을텐데'라는 말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도 사랑이 큰 사람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손주들을 끌어안고 부엌에 나와 잠시 쉴 때면 볼과 손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담는 줄 알았으니까. 여생 내내 아빠의 자식들이 딸인 걸 아쉬워하셨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를 예뻐하셨다. 정말 '원망과 사랑' '연민과 이해'가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

 

- 내 몫의 애정이 언니보다 밀도가 낮다고 서러워만 할 때는 몰랐다.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무심한 정서적 연결고리가 그만큼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 첫째가 늘 양보해야 이유는 모든 것이 그에게 첫번째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싫으면 둘째에게 먼저 주고, 얌전히 양보를 받으면 된다. (옳소!!!!)

 

- 나에게는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 내 욕망과 기분을 우선시하여 부모의 심기를 거스를 용기나 패기가 없었다. 그냥 엉거주춤 서 있다가 누군가 힘듦을 호소하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애썼다.

(나를 관통하는 문장. 언니보다 엄마아빠의 기분을 더 살피고 애쓰는 이유. 서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 듯) 

 

- 각종 예능에서 '딸 낳고 싶다'는 말을 가장 열심히 하는 부류는 남자 연예인이다. 자기가 낳을 것도 아니고 본인은 아들로서 '무뚝뚝해도 되는 권리'를 마음껏 누려놓고 정작 양육에서는 애교 많고 귀엽고 사랑스러우 딸 키우는 재미를 보고 싶어한다. (ㄹㅇㄹㅇ)

 

- 참을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걸고 싶어졌다. 혹시 둘째냐고, 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아이였냐고, 그래서 막연한 허기처럼 마음에 구멍이 뻥 뚫려 있냐고. 도대체 그 구멍이 어쩌다 생겼는지 궁금했고 더욱 파고들고 싶어졌다. 

 

- 특히 재밌었던 것은 자신의 설움을 토해내다가도 곧 "언니도 어렸죠" "엄마라고 그러고 싶었겠어요" "장녀도 힘들죠"라며 왔다갔다하는 지킬 앤드 하이앤드적 전개였다. 내글에서도 눈에 띄는 경향이라, 그런 점에서마저 공감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와....이거 완전 나잖아. 누가봐도 내가 화가 날 상황에서도 잔뜩 짜증을 내다가도 갑자기 중립기어를 걸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해보는... 아놔..) 

 

- 어릴 때부터 이런 피해의식은 불쑥불쑥, 김밥 속 청양고추처럼 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왜 나는 사소한 걸로 감정이 상하고, 분위기를 망칠까?

(정말 난 왜 이런 걸로 아직도 마음이 상하지?라는 생각에 마음 복잡해지는 차녀들..)

 

- 언제나 한발 떨어져서 내가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가져도 되는지 가늠하고, 나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번거롭거나 귀찮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성격. 눈치보거나 기죽지 않고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느끼는 선망과 질투, 그게 바로 빈 언니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걸 '차녀병'이라고 불렀다. 

 

-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생명력이 질기다. 

 

- 어떨 때는 집에서 택배 상자 하나를 못 뜯고, 코트입은 채로 소파에 앉아서 몇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다고 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요청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혼자 있을 때의 무기력이 차녀로서의 인정욕구와 맞닿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솔직히 뜨끔했다. 인정에 목을 매다 자기 자신을 가장 홀대하게 되는 아이러니. 

(하... 정말. 사회생활을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 의욕이 넘치고 잘해내려고 하는 나와 집에서의 혼자 있을 때의 나가 정말 다르다. 요새도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을 때가 많은데... )

 

-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왜 이렇게 아쉬운지, 사람들이 왜 '별것도 아닌 일'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하는지를 절절이 이해하기 때문에. 

 

3.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이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바로 눈물이 고였다. 왜냐? 아직도 겁나 서러우니까 ㅜㅜ 

 

가족들을 잘 챙기고, 기념일들을 잘 기억하는 건 사실 애쓰는 거다. 이게 나의 역할 같으니까. 이걸 안챙겨도 되어도 부모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녀들에겐 적다. 

 

첫째딸은 엄마의 영원한 첫사랑이라는 구절을 읽고는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4. 

이 책 읽고 운전하면서 팟캐듣는데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이 장녀로서의 서로움과 고충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거봐, 장녀들은 이렇게 자기들 힘들다고 난리지. 이렇게 온 사회가 장녀 힘들다는 거 다 알아주는데 말이야. 동생들은 이제야 막 이야기를 꺼낸다고"

하다가

"그래,,그래도 장녀 힘들긴 하지 한국에서"로 다시 중립기어 박아버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죽일 놈의 차녀성. 

 

 

 

완독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ㅠㅠ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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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YES24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고발하며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단 하나의 기사3년간의 취재, 수백 건의 인터뷰 끝에 탄생한퓰리처 상 수상 탐사보도 이면의 생생하고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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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이후 이 책을 추천해주는 지인, 친구도 많았고,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참 많이 접했다. 

빌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뉴욕 타임스>의 두 기자가 유명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수십년에 걸친 성폭행 폭로 기사를 어떻게 취재했고 보도하게됐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게다가 그 기사가 이끈 미투 물결의 여파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 기사는 당연히 한국과도 무관치 않다. 그 물결은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투 덕분에 우리 사회도 새로운 기준이 생겼고, 성적 추문을 일으킨 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많은 용기있는 고백이 뒷따랐고, 진작에 배제됐어야 할 이들이 뒤늦게나마 죄값을 치렀다. 

 

기자 두명이 취재거리를 어떻게 확장시켜나가는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누군가를 폭로하는 기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특히 그 누군가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두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또 기사와 기자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가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팩트를 채워나가고 탄탄하게 만든다. 메일 하나, 연락 한번도 취재원의 성격과 처해있는 상황에 맞게 전략적인 방식을 택하는 게 대단했다. 

 

1. 

이 책은 취재의 출발부터 기사가 보도되고, 그 이후의 여파까지 시간 순서대로 다룬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모든 취재원이 처음부터 기사화에 동의한 채 인터뷰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저자들은 책의 내용을 작성한 시점에서야 공개가능한 사실이지만, 당시 시점만 해도 인터뷰이와 기자들만 아는 사실이었음을 수차례 밝힌다. (이게 책의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데 좀 한몫함ㅠ)

취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확장하고, 한명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 짚을 수 있는 점들을 포착해내는 기자들의 능력이 대단하다. 또 필드에서 뛰는 기자들을 뒤에서 뒷받침해주는 데스크들과 취재와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짚어주는 변호사도 폭로기사를 내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

가장 큰 쾌감은 아마 어떤 리액션을 받을 지 장담할 수 없는 기사를 세상에 내보내고 난 후 쏟아진 수많은 여성들의 고백이었을 거다. 그 물결은 대법관 후보자의 과거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포드의 용기로까지 이어졌다. 저자들이 타임스가 아닌 타사가 접촉했던 포드의 일화를 한 챕터로 자세히 다룬 것도 그래서 좋았다. 

 

3. 

*좋았던 문장들*

- 언론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어넣은 사례다. 우리가 한 일은 수많은 선두적인 페미니스트와 법학자, 애니타 힐, 미투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 그리고 우리 동료 기자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오랫동안 쌓아왔던 이 변화에 하나의 동력을 더한 것에 불과했다. 

 

- 합의는 혐의의 대상인 위법행위를 어떻게 은폐했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였고, 이는 성폭력을 보도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 로젠펠트 교수는 수업 중 사법 체계는 여성이 아닌 남성을 보호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인 사례로 보노보원숭이의 평등주의적 행동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따. 보노보원숭이는 진화 과정에서 공동체 내 수컷의 성적 강제를 뿌리 뽑았다. 수컷 보노보가 암컷에게 공격적으로 굴면 암컷이 특정한 울음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무 위에 있던 다른 암컷들이 그 암컷을 돕기 위해 몰려와서 수컷의 공격을 막아낸다고 했다. 

 

- 여성들이 극도로 망설이는 데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보도에는 본질적으로 불공평한 면이 있다. 어째서 불편한 이야기를 대중 앞에 털어놓는다는 부담을 짊어지는 쪽이 아무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는가? 

 

- 성폭력은 각 업계마다 독특한 생태를 가진다. 식당 노동자들의 경우, 그들의 일터에는 언제나 판단력을 갉아먹고 억제력을 느슨하게 하는 술이 있으며, 관리자들은 돌발 행동을 하는 손님에게 맞서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실리콘밸리에는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무책임한 젊은 남성들이 넘쳐났다. 조선소와 건설 현장처럼 남성의 일터라는 통념이 있는 곳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을 몰아내고자 그들을 물맂거 위험에 처하게 하기도 했다. 

 

- 위협이나 겁을 주는 말이 있다면 기사에 곧이곧대로 실을 겁니다. 이런 전략과 맞서 싸우는 방법은 이를 노출시키는 것이니까요. 

 

- 오늘날의 법적 기준은 1964년 대법원이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에서 명예훼손 고소가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기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인쇄한 것뿐 아니라 공인에 대해 '실제 악의'를 가지고 이를 행한 경우, 여기서 실제 악의란 '사실을 무모할 정도로 무시하는' 것이라는 정의로 정리된 것이다. 

 

- 하비 와이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제 수십년간 그 누구도 손쓰지 않고 있었던 위법행위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쟁이자, 덜 심각한 잘못이 훨씬 더 심각한 잘못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시이기도 했다. 성폭력과 학대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이 수치스럽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행동이라는 것도. 

 

- 이 변화의 핵심은 과거의 일에 대해 책임을 지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여성들 중 더 많은 수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 기업이나 학교가 문제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둘째치고,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대중들의 의견 일치조차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기업 이사회에서부터 술집에 모인 친구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가이드라인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이는 매력적인 대화 소재였으나 총체적인 혼돈이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새로운 기준에 어떻게 동의할지, 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고발들을 어떻게 해소할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 대신, 양쪽 모두에게 부당하다는 감정만 누적되고 있었다. 

 

- 미투 담론의 가장 까다로우면서도 풀기 어려운 과제를 이끌어냈다. 바로 과거에 있었던 고통스러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관한 딜레마였다. 고발자가 피해를 주장하고, 고발당한 자가 응답하는 공정한 과정을 제시해야 한다는 시험대였다. 책임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통제를 잃으리라는, 다양한 의제로 무장한 타인들이 그녀가 바라는 바와 무관하게 움직이리라는 조짐이었다. 

 

- 언론계에서는 중요 기사에 있어 경쟁사들이 서로의 취재에 부응하는 것이 관행이다. 만약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와 러시아 간의 거래에 대한 특정을 낸다면 <타임스> 역시도 같은 내용에 대한 취재를 시도하고 그 역도 가능하며 이로써 <타임스> 독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동시에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추가적으로 확인해준다. 과학자들이 피어리뷰를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공공의 토론이 불만족스러운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가운데 이런 사적인 차원에서 사유를 통한 개인의 변화가 가장 크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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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유투브에 세계문학 편집자분이 추천해준 세계문학. 고전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 권했다. 아주 술술, 흥미롭게 읽힌다면서 간략한 줄거리를 말해주는데 그 영상을 보자마자 ebook으로 질렀다. 그리고 한참을 묵혀두다가 가볍게 읽을 책이 필요해서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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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 YES24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케인의 데뷔작으로 1934년에 발표된 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모순으로 가득한 미국 사회 이면의 욕정과 탐욕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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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투브에서 편집자는 연인이 사랑을 매개로 사회에서 가장 죄악시한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책을 직접 읽으면서는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태도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같았다. 두 주인공은 단순히 살인 때문이 아니라, 살인 계획을 도모하기 전부터 삶을 향한 태도에서 이견을 보이며 삐걱거렸다고 생각해서다. 

 

당대에 워낙 유명했던 책이라는 설명히 책 뒷부분에 나와 있다. 후에 영화, 뮤지컬로도 나왔다는데 레베카의 운명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 카메라 앞에서 말이야, 내가 어떤 애인지 알아차리더라고, 나도 그랬고. 아이오와 디모인의 싸구려 계집애에게는 딱 원숭이 정도만큼의 기회밖에 없었어. 아니 원숭이보다 못하지. 어쨌든 원숭이는 웃길 수라도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역이라곤 역겨운 것뿐이었어. 

 

- 그런 별 볼일 없는 패는 매일 만나요. 모두 다 카드를 갖고 있는 상황, '제대로 돌리면 이기는 카드를 모두 다 가진 상황'인데 나를 보시오. 

 

- 프랭크. 그곳에서, 그날 밤, 우린 모든 걸 가졌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몰랐어. 우린 키스했고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영원하도록 봉인했어. 우린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두 사람보다 많은 걸 갖고 있었어. 그런 다음 무너져 내렸어. 처음엔 당신이, 그리고 그런 다음엔 내가 말이야. 

 

- 난 깊이 빠져드는 게 아니라 빠져나오고 싶어. 

 

- 떠나 버리고 싶은 건 그냥 당신이 부랑자이기 때문이야. 그게 다야. 여기 왔을 때 당신은 부랑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부랑자가 아니라고. 난 뭔가 '되고' 싶어. 여기 살자. 우린 떠나지 않아. 

 

-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파열음이 내 귓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 당신 약간 집시 같은 면이 있지? / 집시라고? 태어날 때부터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니까. 

 

- 우린 서로 사슬로 묶여 있어, 코라. 우린 산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했지. 그게 아니었어. 산이 우리 위에 있었고, 그날 밤 이래로 산은 언제나 거기 있었어. / 당신이 사랑 안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야. 그건 미움이야. 

 

- 나를 그렇게 느끼게 만든 게 무엇이었을까. 왜냐하면 그녀는 날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종종 말했다. 나는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너무 컸다. 한 여자의 존재가 그렇게 너무 큰 것은 흔한 일은 아니라고 나는 짐작한다. 

 

- (해설) 그녀는 우편배달부에게 보험지급증서를 자신에게 직접 배달하라고 지시했으며 초인종을 두번 울리는 것이 신호였다. 이 신호와 '배액 보상'은 성적 불성실을 뜻하는 진부한 표현이 된다. 

..

케인은 <포스트맨>의 앞 면지에서 "내 첫번재 소설이며, 기본 줄거리는 뉴욕의 스나이더-그레이 소송 사건에 기초한다"고 언급한다. 

..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만 살인이 사랑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남녀가 있고, 그런데 일단 저지른 다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떤 두 사람도 그렇게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고는 같은 지구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는 얘기야. 

 

 

 

 

 

2월 독서모임 책 제레미 리크핀의 <육식의 종말>을 읽었다. 흔히들 종말 3부작으로, 이 책과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을 꼽는다. 부끄럽지만 이번에 읽은 책이 3부작 중 처음 읽는 것이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소개된 게 2002년. 그런데 미국에서 출간된 건 그보다 훨씬 전인 1993년이다. 책이 세상에 나온지 30여년 가까이 지나서야 읽었는데도, 작가가 제시한 통찰이 여전히,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의미를 갖게 됐다. 훌륭한 책, 사회과학도서의 고전이란 이런 것일까? 

 

주석이 책의 한 챕터 분량 정도 될 정도로 촘촘하다. 그만큼 작가는 근거를 촘촘하게 쌓아올랐다. 그에 기반해서인지 책의 생명력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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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 YES24

저자에 의하면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식생활이다.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파생되기 시작한 문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한 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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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이 처한 현실과 사회에서의 인식을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는 회사에 다니는지라 책의 뒷부분은 사실 새롭진 않았다. 아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기반, 어쩌면 그에 대해 처음으로 물음표를 던졌던 작가가 제레미 리프킨이겠지. 그가 제기한 물음 덕분에 이미 많은 매체들이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많이 다루고 있다. 

 

내게 오히려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가 어떻게 세계사 속에서 움직이고, 인류 역사와 함께 했는지를 다루는 앞 부분이다. '축산업으로 보는 세계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소라는 한 종(種)의 역사가 살아남는 과정을 보면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내용 일부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오래 살아남은 종은 종 전체로 봤을 때 성공일지라도, 개별 동물에게 그것이 성공일까?하는 유발 하라리의 지적. 소는 축산업의 대표적인 축종으로 수백, 수천만마리의 소가 지구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살아남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FAO가 어떻게 대량 축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도 나온다. 국제기구가 이끄는 여러 논의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에 대해 다루는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최근에 봤던 영화 <퍼스트 카우>도 생각났다! 미국 개발시대, 아주 귀했던 소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이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

 

- 소는 가장 오래된 이동 재산이며 많은 서구 문화에서 교환의 매개물로서 이용되었다. 이와 같이 소가 신성한 위치에서 통화와 상품으로 이행한 것은 자연에 대응하는 인류의 변화와 역사적으로 일맥상통한다. 소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쓸모 있게 만드는 실용적인 동물이었으며, 세계 속의 자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정의하는 유용한 투명이자 상징이었따. 

 

- 간혹 항생 물질 잔유물이 사람들이 소비하는 쇠고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은 알게 모르게 질병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수천년 동안 다른 동물들을 통해 자아에 대한 우리 감각을 키워 왔다. 지구상의 풍부하고 다양한 동물들의 삶은 줄곧 인간 삶의 판단 기준이 돼 왔다. 

 

- (알쓸신잡1) 이탈리아인들은 소의 땅을 뜻하는 '이탈리아'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가져왔다.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이 로마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들은 소 숭배의식을 치르며 전투에 임했다. 

 

- 농경사회에서 방위는 대지에 대한 소속감 속에서 발견된다. 대지는 신의 보호와 조상의 감시를 받는 거룩하고 신성한 거주지다. 대지는 책임감을 낳고 그것은 각 세대를 신성한 의무와 책임의 복잡한 관계로 긴밀하게 엮는다. 농경 사회에서 소속감은 대지, 변화하는 계절, 탄생, 성장, 죽음, 재생의 연령 주기와 결부돼 있다. 

 

- (알쓸신잡2)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됐으며 그 옆으로 지위를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들 차지였다. 예컨대 사슴 고기가 나왔을 때 꼬리나 내장은 늘 가장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 지방이 많은 쇠고기를 즐기는 영국인의 입맛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가지 위대한 농업 전통을 하나로 합치도록 했다. 하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최초의 위대한 곡물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곡식 생산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유라시아 스텝 지방의 말을 탄 유목민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목축 문화가 그것이다. 두 위대한 농업 시스템은 대초원의 울퉁불퉁한 방목지와 중서부의 평평한 농경지가 마주치는 미서부 평원에서 처음으로 결합되었다. 

 

- 자신들의 신분과 직책을 순전히 혈통에 의존하는 상류 계급의 경우, 그들이 소유한 우수한 소의 순수성에 관한 문제는 그 중요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열등한 혈통이 섞이지 않은 채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 혈통이 존속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순수성 문제에 대한 귀족들의 광적인 태도는 해외 식민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 오늘까지도 아메리카 버펄로의 멸종은 미국 생태계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일화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갑작스럽고도 단호하게 진행된 학살은 1만50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평원의 주인공을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끝장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 지방이 많은 쇠고기 부위를 선호하는 유별난 영국인의 취향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농업 역사상 유래 없는 새로운 상업적 관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1900년 이후로는 점점 더 많은 소가 옥수수에 의존하게 되면서 곡물 가격의 변동이 쇠고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거꾸로 연간 소 생산과 쇠고기 수요의 변화도 곡물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 현재의 등급 시스템은 은연중에 소비자의 입맛과 수요를 곡물로 기른 육우로 획일화하는 산업 구조를 강요하고 잇는 것이다. 

 

- 대다수의 경제역사학자들은 철강과 자동차 산업이 초창기 미국의 산업 천재에게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여기지만, 돋보이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처음 사용된 곳이 대부분이 다름 아닌 도축장들이었다. 

 

- 현재 LA 공립학교들의 대다수 어린이들은 히스패닉 계열이다. 미국 문화의 부분적 라틴화는 전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토지 활용 형태가 변화하는 데 기인한다. 그 지역들에서 기존의 생존을 위한 농업이 육우 사육과 사료 작물 재배로 대체되면서 대륙 전체가 국제 쇠고기 무역을 위한 방목지, 경작지, 가축 사육장으로 전환된 것이다. 

 

- 세계 농업이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 전환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인류 악을 나타내는데, 아마도 그 결과는 과거 인간 대 인간이 벌였던 그 어떤 폭력보다도 훨씬 장기적이고 심각할 것이다. 

 

- 다른 국가들에게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가도록 권유함에 따라 미국 농부들과 농산업계 회사들의 이익이 증진됐다. 

 

- 진보의 시대는 어디까지나 북반구의 좁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 진보가 기아와 질병, 그리고 날로 심화되는 자포자기와 절망감을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 현재 전세계 각국들은 지금 그들의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체험해온 기후 환경이 50년 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예상을 토대로 경제 계획을 결정하고 미래 개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 오늘날 빌딩, 교량, 댐, 도로, 하수 시설, 운하 및 각종 기계류는 향후 50~100년이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기후 압력 오차 허용도를 감안해 설계되고 있다. 

 

- 우리는 흔히 자연을 섭취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연을 이해한다. 먹는 행위는 인간과 환경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따. 그 경험이 생존과 보충의 행위이자 신성한 행위로, 또한 영적 교감으로 칭송받는 문화가 많은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 (알쓸신잡3) 육류는 단순한 음식을 뛰어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구 문화에서 얼마나 육식을 탐했는지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따. '문제의 골자(meat of the matter)' '내용이 충실한 질문(a meaty question)' '개선(beef up)' 같은 용어들이 그런 것들이다. 

 

- 날고기를 '힘, 남성 지배, 특권'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현대사회에서 종종 목격되는 가장 오래된 문화적 상징들 중 하나다. 

 

- 비어드는 당대의 각광받던 생물학적, 사횢거 개념을 고기를 먹는 민족들이 더 우수하다는 오랜 유럽의 선입견과 결합시킴으로써 정교한 인종 이론을 만들어냈다. 즉 성과 계급 차별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육류와 우월성, 식물과 열등성을 결합시켜 또 다른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백인 식민 세력과 다른 유색 원주민들과의 차별을 공고히 했던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두거나 급한 대로 메모장에 적어둔다. 근데 단 한번도,, 그것들을 정리하질 않고 살았다. 지금 쓰는 폰에 저장된 목록이라도 한번 정리해보고자 이 포스팅을 쓴다.

 

양자오, <슬픈 열대를 읽다: 레비스트로스와 인류학을 공부하는 첫걸음>, 유유

양자오, <추리소설 읽는 법: 코넌도일, 레이먼 드챈들러, 움베르트에코, 미야베미유키로 미스터리 입문>, 유유

양자오, <노자를 읽다: 전쟁의 시대에서 끌어낸 생존의 지혜>, 유유

박한아,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오종우, <5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책>, 어크로스

에티엔 발리바르, <역사유물론 연구>, 현실문화 

송재윤, <슬픈 중국>, 까치

 

넬리 블라이,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모던아카이브

조민진, <진심은 보이지 않아도 태도는 보인다>, 문학테라피 

이길보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레오 카츠, <법은 왜 부조리한가>, 와이즈베리

 

문목하 작가 인터뷰 중, "세라 워터스, 할레드 호세이니는 내가 나의 인생을 소재로는 이런 소살까지는 안되겠다는 행복한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김보영 작가와 앤 레키"

 

옌롄커, <침묵과 한숨>, 글항아리

옌롄커, <레닌의 키스>, 문학동네

주진숙 이순진, <영화하는 여자들>, 사계절

플로랑스 로슈포르, <페미니즘들의 세계사>

톰 홀랜드, <도미니언>, 책과함께

캐럴라인 냅, <명랑한 운둔자>, 바다출판사

장용만, <귀신나방>

 

게르트 노엘스, <자이언티즘>, 탬

크리스티안 펠버, <모든 것이 바뀐다>, 앵글북스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우리는 코다입니다>, 교양인

시어도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어크로스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김영사

이은기, <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 아트북스

염운옥, <낙인찍힌 몸> -> 두번이나 기록돼 있다. 꼭 사서 봐야징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김상운, <국보를 캐는 사람들>

조너선 스펜스, <현대중국을 찾아서>

 

에릭 클라이넨버그, <폭염 사회>, 글항아리

정옥희, <이 춤의 운명은>, 열화당

오노레 드 발자크, <기자 생리학>, 페이퍼로드

제니퍼 에버하트, <편견>, 스노우폭스북스

김내훈, <프로보커터>, 서해문집

샬롯 호릭, <19세기부터 현재까지 한국미술>

캐서린 샌더슨, <방관자 효과>, 쌤앤파커스

조디 캔터 매겉 투히, <그녀가 말했다>, 책읽는 수요일 -> 와, 이책 최근에 회사 후배가 추천해줬는데 이미 폰에 기록했었네..황당..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플레이타임

로즈 칼라일, <걸 인 더 미러>, 해냄출판사

찬호께이, <망내인>, 한스미디어

악셀 호네트, <인정>, 나남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띠비 스터디001 

최인철 등, <헤이트>, 마로니에북스

프랭크 폰 하펠, <화려한 화학의 시대>, 까치

<사회학적 파상력>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웨허, <역사소설>

최현숙, <할매의 탄생>

마고사키 우케루,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찬호께이, <염소가 웃는 순간>

 

지승호,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미야베 미유키,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멀리사 에임스, <대중 문화는 어떻게 여성을 만들어 내는가>

닉 폴슨, <수학의 쓸모>

베서니 맥린,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 211121 기록 -

독서모임 9월 책. 입소문을 꽤 탄 책이라 종이책으로 구입해두고 방치(?)하다가 마침 독서모임 책으로 정해져서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이동진 평론가도 유튜브를 통해 이 책을 철학 입문서로 매우 좋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NPR에서 해외 통신원으로 일한 작가다. 일본, 인도,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를 다닌 경험이 책에도 잘 녹아있다. 제목이 책 전반적인 컨셉의 힌트가 되는데 작가는 철학자의 생가나 작업실이 있는 여러 도시를 열차를 타고 가면서 철학가의 사상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위트가 넘치는 글인데도 철학가의 핵심 사상을 가볍게도 다루지 않고, 작가만의 통찰이 묻어나는 지점이 참 많았다. 철학가의 이름에만 익숙한 나같은 독자들이 정말 읽기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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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YES24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이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에릭 와이너와 함께 떠나는 철학자행 특급 열차! 2020 아마존 베스트 논픽션, 2020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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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의 황제이면서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첫번째로 소개되는 철학가다. 이후에 나오는 철학가들 모두 당대에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들이라 친구들과  '철학가들은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했다. 근데 아차차.. 마르쿠스 로마 황제였지 ^_^; 

 

- <명상록>

 

- 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는 걸까? 생각은 당연히 내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2. 소크라테스

아 그래도 나 소크라테스는 좀 알지,, 근데 과연 알까? 하면서 읽은 파트. 

 

-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호기심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늘 눈앞에 나타나는 다른 반짝이는 대상을 쫓아가겠다며 위협한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머문다. 

 

3. 루소

루소는 언시 준비할 때 그나마 많이 접했던 철학가다. 그의 사상이 현대사회를 분석할 때 아주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 그런데 루소가 이렇게 기행(?)을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니...... 

 

- <고백록>, <에밀>, <사회계약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우리 인간은 바다에서 왔는데 '걷다walk'라는 단어의 어원에서도 그 사실이 드러난다. 11세기에 이 단어는 바다처럼 '굽이치고 요동치다'라는 뜻이었다. '걷다'라는 단어가 해안으로 걸어 나와 몸을 말리고 현대의 의미를 획득한 것은 13세기의 일이다. (이 부분은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단어가 해안으로 걸어 나와 몸을 말리고" 부분)

 

 -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4. 소로 

"대부분은 억지로 소로를 떠안는다"는 말이 너무 웃겼다. 미국에선 교과서에 소로의 작품이 나오는 모양. 그래, 교과서를 통해 접하는 문학은 대부분 억지로 떠안게 되지. ㅋㅋㅋㅋ 

'소로처럼 직접 구운 쿠키를 먹으려고 엄마 집에 몰래 들어가면서 홀로 간소하게 사는 척하는 법' 부분에서 소로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밈으로 쓰이는 가도 간접 이해했다. 

 

- <월든> 

 

-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 조류학자는 공작새가 형형색색의 깃털을 뽑내는 생물학적 이유는 알아도 그 아름다움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는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5. 쇼펜하우어 

-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저술에 대하여>

 

-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 수정을 요구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 좋은 예술은 정념을 초월한다. 욕망을 키우는 모든 것은 고통을 키운다. 욕망을, 쇼펜하우어의 표현에 따르면, 의지를 줄이는 모든 것은 고통을 완화한다.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포르노가 예술이 아닌 것이다. 포르노는 예술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 "가장 최근에 쓰인 것이 늘 더 정확하다는 생각, 나중에 쓰인 것이 전에 쓰인 것보다 더 개선된 것이라는 생각, 모든 변화는 곧 진보라는 생각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6. 에피쿠로스

에릭 와이너가 소개한 14명의 철학가 가운데 가장 내 맘에 와닿은 철학가, 에피쿠로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에피쿠로스는 그저 스토아 학파와 대척점에 있는 철학가로, '쾌락'이라는 키워드를 의미가 아닌 표식으로 기억했는데 에피쿠로스가 하늘에서 자신이 이렇게 외워지는 걸 알면 기가 막혀할 듯.. 

 

-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해줘요. 게다가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뭐든 충분하지 않을 걸요."

 

-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 남는다. 

 

7. 시몬 베유 

- 모든 말다툼은 오해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범주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양측이 같은 문제를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다. 양측에게는 각자 다른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한 사람에게는 그릇을 비효율적으로 넣어서 고성능 식기세척기의 세척력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핵심 역량, 더 나아가 자신의 남성성이 후려침 당하는 상황일 수 있다. 전쟁과 심술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 종류와 상관없이 어떤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8. 간디

- 비폭력은 창조성을 요구한다. 간디는 언제나 새롭고 혁신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9. 공자

-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서로 간의 거리는 중요한 요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라. 우리가 자기 자신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할 때 친절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점점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 

 

10. 세이 쇼나곤

세이 쇼나곤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철학가였다. 에릭 와이너가 말하듯 일반적인 범주에서 세이 쇼나곤은 철학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의 의미를 곰곰 따져봤을 때 세이 쇼나곤이 철학가가 되지 못할 이유도 사실 없다. 

 

- <베갯머리 서책>

 

- 즈이히츠는 일본의 글쓰기 기법 아닌 글쓰기 기법으로, 내 눈엔 책이 아닌 책을 쓰기에 완벽한 방식으로 보인다. 즈이히츠를 실천하는 작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 지적 가려움을 긁은 다음,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글에 구조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구조가 스스로 나타나게 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조금 즈이히츠를 활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자기계발서들은 조언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움직일 것.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할 것. 

 

- 쇼나곤의 철학에 함축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11. 니체

영화 <사랑의 블랙홀> 

 

- 니체 철학의 핵심에는 "완벽한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보통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도망쳐 확실성을 향해 달려간다. 니체는 그것이 불변의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치이며,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재평가가 가능하다. 

 

12. 에픽테토스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는 사실 벽장 하나만 허물면 비슷한 결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스토아철학은 이처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스토아철학은 무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 

 

- "해야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13. 보부아르

-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 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되 없다.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14. 몽테뉴

- 나는 몽테뉴가 나처럼 필요할 때는 그럴듯한 외향형처럼 굴 수 있는 내향형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우리 같은 사교적 내향형들은 세상을 속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꾸며낸 외향성은 우리를 소모시킨다. 진을 빼놓는다.(완전 나인데,,?)

 

-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수용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자신의 긍정적 성격에 대한 수용이자 자신의 결점에 대한 수용이었다. 

 

-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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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그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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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독서모임에서 진행했던 책. 끝까지 못읽고 갔는데도 토론은 잘 되는 책이었다(?)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를테면,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는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찌된 연유인지 이 책을 선정했다. 처음에는 읽기 힘들다 생각했으나 중반부를 넘어서니 왜 고전으로 읽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갔고, 지금 시대에도 통용되는 지점에 대해서 모임에서 한참을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623583?OzSrank=1

 

의심스러운 싸움 - YES24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1930년대 초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맥인 존 스타인벡의 첫 정치 소설이다. 『분노의 포

www.yes24.com

*스포 있음*

 

1.

책을 읽으면서 노동자를 조직하고 이들을 움직여, 심하게 말하면 선동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게 정말 선의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길게 보면, 노동자 전체를 위한 일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자본가만큼이나 노동자 개인을 도구로 취급하는 데 이게 옳은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게 과연 맞는가,는 결론내리기 어려운 주제지만 그만큼 계속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2. 좋은 문장 

- 대부분의 경우 당신이 도와주려고 애쓰는 바로 그 사람들이 당신을 증오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오. 

 

- 그런데 그들에게도 분노가 있었지만 저하곤 다른 것이었어요. 사장이나 도살업자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 높은 사람들이 속한 체제 전체를 증오하더군요. 그게 차이었어요. 다른 종류의 분노죠. 뭔가 다른 구석이 있었어요. 

 

-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함께 뭉치면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깨닫도록 하는 거야. 

 

- 어떤 운동의 한 부분에 속하게 만드는 데에는 그들이 뭔가를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 전체 집단이 살육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거야. 너무 한 사람의 피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수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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