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가득해요*)

 

http://v.media.daum.net/v/20170923142224112

 

1. 시사인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였다. 마침 재밌는 책을 찾고 있었다. 둘레길 갈 때 버스에서 지루함을 달랠 만한 책으로. 제목과 책 표지를 봤을 땐 취향에 안 맞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으나.. 어쨌든 학교에 약속 있어 들리는 김에 도서관 가서 빌렸는데 생각보다 너~어무 두꺼운 것이 아닌가. 850페이지에 달하는..?

 

지리산 둘레길 가기로 한 당일 새벽에 일어나 짐을 꾸리는데 책을 들고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포기. 읽지도 않고 짐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한참을 책상위에 방치해두었다가 연휴를 핑계삼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줄곧 달렸다. 800페이지가 아니라 1600페이지가 되더라도 이정도의 스토리와 전개라면 쉬지 않고 읽었을 것이다.

 

 

 

2.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소감, '박지리 작가 책 다른 거 뭐 있지?'

25살에 등단한 박지리 작가는 지난해 생을 마감했다고 뉴스기사를 통해 접했다. <다윈 영>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고. 대부분의 서평에서 그의 모든 작품이 대단하다고 하니 거꾸로이긴 하지만 마지막 작품을 계기로 하나하나 거슬러 가면서 읽어봐야 겠다.

 

3.

러너, 니스, 영, 루미, 레오 등 등장인물의 이름 모두 서양식이라 읽다 보면 가끔 한국작가의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 책에서 그려내는 사회가 한국과 접점이 많아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 작가임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철저하게 계급화된 사회, 프라임스쿨로 대표되는 학교별 위계, 자신들만이 최고의 선이라 믿는(소설에 따르면 사과의 핵) 위선에 가득찬 최상류층 사람들 등.. 내가 속한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는 다른 국가의 독자들이 읽어도 아마 제가 속한 사회 혹은 곧 다가올 사회의 미래라 여길지도 모른다.

 

4.

벌어진 특징 사안에 대한 진실을 저마다 다르게 정의내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 러너-니스, 니스-영의 부자관계도 그렇고 니스-루미 사이도 그렇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만만했던 루미가 마침내 진실이 삶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면서 진실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역시 인상적이었다. 루미라는 등장인물 자체가 사실 굉장히 유약하다는 것은 중간 부분부터 알수 있었긴 하다.

 

5.

좋은 점이 한 두개가 아닌 소설이지만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자면,

 

- 1지구에 살면서 아버지가 '고작' 7급 서기관이나 하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는 루미가 여학생으로서 갈 수 있는 최상위 학교 학생임을 내보일 수 있는 프리메라 교복을 '언제나' 입는다는 점. 또 상대가 자신의 우월한 점을 인정해줄 때는 상대에게 너그럽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직업, 거주지 등을 추측하며 한없이 열등한 존재로 정의내리는 점. 루미의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아주 잘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또 학교 이름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 등을 신분증마냥 들고 다니는 걸 자주 목격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익숙한 인물 군상이기도 했다.

 

- 악마로 변하기 전, 다윈 영이 천성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선함과 해맑음. 극복해야 할 열등감이나 트라우마가 없는 인물에게서만 볼 수 있는 유함, 세상을 바라보는 지극히 순수한 시선들이 현실에선 불가능한 성질일지라도 소설에서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으로 한 사람에게 열등감이 미치는 파장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인 것 같다.

 

- 위선적인 어른들 가운데서 그나마 가장 정직해보인 인물인 피터 마샬조차 자신만의 열등감이 있다는 점 역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아저씨가 마치 성인 버전의 다윈 영처럼(아버지 니스 영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의 다윈 영을 말한다) 그려졌다면 너무 판타지스러워서 실망할 뻔했다..ㅎ

 

- 살인자인 니스 영을 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소설은. 열 여섯 이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아버지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바쳐온 니스가 떠맡은 죄의 무게와 아들 다윈을 향한 너무나 큰 사랑이 잘 묘사되어서 그런 것일까?

 

- 보이지 않을 뿐 우리도 소설보다 더 촘촘하게 갈라진 계층 사회에서 살고 있다. 보이지 않아서 더 잔혹할 수도 있다.

 

6.

다윈 영은 니스 영처럼 한평생 자신이 저지른 죄에 짓눌려 살아갈까, 아니면 러너 영처럼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우며 살아갈까. 책을 덮는 순간엔 전자였으나 포스팅을 하는 지금은 후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7.

후드 집업 못 입겠다. 앞으롴ㅋㅋㅋㅋㅋ

 

도서관마다 예약이 꽉 차 있어 포기했다가 겨우 빌릴 수 있었다.

99년 4월 20일, 콜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의 범인 가운데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란 책이다.

원제는 <A Mother's Reckoning>임을 고려해봤을 때, 한국책 제목이 뭐랄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자극적인 제목에 나도 눈길이 간 건 사실이나 이 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떠올려본다면 살짝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 책 앞부분에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이 적은 해설도 참 좋다. 책을 전부 읽지 못해도 이 해설만으로 책 전체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고, 또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에 대해서도 거칠게나마 알 수 있다.

 

-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큰 충격을 주는 범죄가 두 가지 있다. 아이들이 희생자인 범죄와 아이들이 가해자인 범죄다. 첫 번째 경우에 우리는 순진한 아이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슬퍼한다. 두 번째 경우에는 아이들이 순진무구하다고 착각했던 것을 슬퍼한다.

- 장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악은 현상이 아니다" 또 "악의 원인을 안다고 물리칠 수 없다"

- 아들의 죽음, 내가 생각하던 아들의 모습에 대한 상실, 아들의 어두운 면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져버린 자기방어,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낙인을 제외한 모든 정체성의 상실, 삶이 이치에 따라 돌아가고 옳은 일을 하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피할 수 있다는 근본적 신념의 상실

- 클리볼드는 '악'과 '병' 사이의 확정할 수 없는 경계를 명료하게 밝히려고 애쓰지 않는다.

- 이 책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는 충격적이다. 내 자식을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것.

- 살인자를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를 원망하면 좋을지 찾으려고 한다.

 

1.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내 손을 떠난 순간 완전히 나와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을(그녀 혹은 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착각이다. 책에도 수 클리볼드가 군데군데서 얘기하지만 자식들은 부모를 쉽게 속인다. 어쩌면 부모를 제일 쉽게 속일지도 모른다. 딜런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일들을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않는 게 정말 어렵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2.

그렇다면 아이의 내면을 관찰하기 위해선 부모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책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에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저자는 딜런의 일기장을 보거나 침대 뒷 수납장을 미리 열어봤어야 했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이 방식이 옳은가? 아이가 부모와는 완전히 별개의 독립된 인간임을 이해하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모순된 일이 아닐까 싶다.

 

3.

'병'과 '악'

이 책 내용의 핵심이 아닐까. 딜런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반사회적 성향의(사이코패스적인) 친구 에릭과 만나 총기사건을 일으킨다. 처음 온갖 전문가, 언론은 이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서두른다. 긴 추적이 필요한 일에 서둘러 답을 내리려 하니 답들은 단편적일 뿐 전체 큰 그림을 완전히 채울 수 없었다. 범인 두 명이 악마였다거나, 사이비 종교에 홀렸다거나, 인터넷의 폭력성에 물들었다거나, 부모의 방관이나 엇나간 훈육 때문이라거나, 콜로라도의 총기사용허용 때문이라거나.....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지만 딜런의 부모 수 클리볼드는 미국 평균 중산층의 부모들 이상으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열성적이었다. 콜로라도가 총기사용을 허용하지만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 모두 친구들을 향해 총을 사용하진 않는다. 부모의 훈육 잘못이라기엔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총기를 사용해 친구들을 죽이진 않는다. 발생한 결과를 두고 추측하는 원인들은 추측일 뿐이기에 정확한 해답이 될 순 없다. 조각조각을 찾아 맞춰야 한다. (그런데도 언론은 쉽고 빠르게 답을 찾고, 그 답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에 열중한다. 그러나 잘못된 답은 끔찍한 결과를 막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딜런은 우울증이었고 약을 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이 딜런의 범죄를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이 점은 수 클리볼드도 책 전반에 걸쳐 누차 반복하고 있다. 왜냐하면 딜런의 범죄 요인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한 게 결국 우울증이란 '병' 때문이라고 하면 피해자 가족 입장에선 우울증이란 병이 변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악해서가 아니라 병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딜런을 무조건 악마라고 몰아가고 결론을 내버리기엔 어딘가 찜찜함이 남는다. 우울증을 겪는 10대 청소년은 미국에나 한국에나 점점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딜런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결심하다가 남들까지 죽여버리는 선택을 하게 됐는데, 딜런과 같은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들이 극단까진 가지 않더라도 적절한 대처가 취해지지 않으면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과 '악'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엔 어렵고, 또 치우치기엔 위험하다.

 

4.

수 클리볼드는 딜런이 저지른 사고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 아침에. 총기사건 당일 자신의 아들이 사건에 연루돼 있단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아들은 살아있길' 바라며 당연히 아들은 피해자 위치에 있다고 여겼다. 애초 딜런이 가해자일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총을 든 가해자가 딜런이란 사실을 듣고는 '더 이상 남들을 다치지 않게 하고 아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 이 상황 자체가 클리볼드에겐 얼마나 가혹하고 끔찍한지. 사건 이전의 딜런의 가정과 클리볼드의 평범성은 누구나(자식을 둔 부모라면) 어느날 갑자기 이런 끔찍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사건 당일을 복기하는 책 앞부분은 정말 감정이 이입돼 괴로웠다.

 

아마도 저자가 책을 쓰면서 가장 조심했던 부분은, 책 내용이 총기사건 피해자들을 다시 괴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책 내용이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아들을 조금이라도 감싸는 뉘앙스로 비춰진다면 피해자 가족들을 두번 죽이는 일일테니 말이다. 다행히 이 점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클리볼드는 몇 번의 반복을 통해서, 참회를 통해서 자신의 집필 의도를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나, 내가 읽으면서 불편하게 느꼈던 점은

수 클리볼드는 아들이 총기사건 가해자가 되었던 이유를 추적하는 지점에서 다른 한명의 가해자 에릭의 동기는 너무 쉽게 결론지었다는 것이었다. 딜런은 우울증을, 에릭은 사이코패스 기질을 갖고 있고 이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줘 그런 끔찍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인데 에릭에 대해선 '사이코패스' '반사회적' '폭력적 기질' 등의 설명만으로 그의 동기가 설명돼 있어 아쉽고 찜찜했다. 에릭의 가족이 이를 읽는다면, 자신의 아들은 결국 괴물이었기 때문에 이 범죄를 일으켰다는 결론을 재차 확인하게 될 것만 같았다.

 

 

문장 매끄럽고 내용 좋은데 진도가 너무 안나가는 책....ㅠㅠ 결국 또 빌려야 할 듯

 

1.

양당제 국가의 선거정치 결과는 통상 중산층 유권자들이 보수파와 진보파 정당 중 어느 쪽에 표를 더 많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표는 어차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진보파 정당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중산층 표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양당제 국가의 진보파 정부들이 기껏해야 중도정책들을 양산해내는 까닭이다.

 

2.

미국인들이 영국산 원본에 수정을 가한 부분, 즉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꾼 방식은 그대로 들여왔으나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최소화하기 위한 삼권분립제, 상하 양원제, 연방제 등은 도입하지 않았다.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개념은 미국 학자들이 자국의 대통령제를 평가하면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러한 제왕적 권력의 소유자를 중심에 놓고 펼쳐지는 미국의 대통령제를 그 제도의 필수 구성요소인 권력 견제들은 대부분 빼버리고 도입했다. 그 결과 다수제 민주주의의 특징인 승자독식과 패자배제의 현상이 정당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지도자 개인의 차원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른바 '위임대통령제'가 고착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대통령은 마치 국민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것처럼 정당정치와 의회정치, 심지어는 사법부마저 쥐락펴락할 정도의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3.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구심력은 이념과 정책을 초월할 만큼 강력"하다

 

4.

한국 대통령의 책임성과 관련해서는 애초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 과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주지하듯,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위 "바람의 효과"가 매우 크다. 이 인기 영합주의적인 분위기로 인해 후보에 대한 충분한 검증 과정 없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곤 했다.(너무 팩트폭력...)

 

5.

대의제는 정당을 매개로 하여 작동하는 민주체제이다. 따라서 정당정치의 활성화는 대의제 작동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조건의 충족과 그에 따른 대의제 민주주의의 순작동은 정당의 구조화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다종다양한 구성원들의 선호와 이익은 지향하는 가치, 이념, 또는 정책기조 등의 측면에서 상호 차별성을 갖는 여러 정당들이 다당체계를 형성하여 각자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과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결국 약자 집단들에게 남아 있는 비정당 채널은 '강압적 채널'뿐이다. 정당, 행정부, 의회 등을 상대로 하는 의사소통이 '합헌적 채널'의 활용이라고 할 때 데모, 시위, 파업, 파괴, 폭동, 테러 등과 같이 물리적 힘 혹은 폭력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이익을 표출하는 행동은 강압적 채널의 이용에 해당된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이러한 강압적 채널이 더욱 빈번하게 가동됐다.

 

p.153~

조지 오웰의 작품에 푹 빠져있다. 소설이야 말할 것 없이 대작인 건 그렇다치고, 에세이집도 대단하다.

면접 끝나면 각잡고 읽어야지.

 

1. <스파이크>

그들 사이엔 대화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 거창한 주제다. 다음 끼니가 확실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건 다음 끼니뿐이다.

 

그의 몸은 스파이크에 있을지 몰라도 정신만은 멀리까지 날아올라 중산층의 순전한 정기 속에 있는 셈이었다.

 

2. <코끼리를 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자기 마음이지만, 백인 나리라는 상투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가식적인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3. <마라케시>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체로 눈에 잘 안 띄며, 중요한 일을 할수록 눈에 덜 띄는 경향이 있다.

 

열대의 풍경에선 이상하게 사람만 빼놓고 모든 게 눈에 잘 들어온다. 말라붙은 땅도, 석류도, 야자수도, 먼 산도 눈에 잘 뜨인다. 그러나 밭에서 괭이질 하고 있는 농부만은 꼭 놓치게 된다. 그것은 그의 피부색이 흙색과 같으며, 그래서 보는 재미가 훨씬 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4. <좌든 우든 나의 조국>

그날 밤 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중산층에게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으며 영국이 심각한 궁지에 빠지면 나로서는 애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 여기서 오해는 없도록 하자.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 변하고 있되 신비롭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무엇에 대한 헌신이다.

 

5. <영국, 당신의 영국>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당신'의 문명이요,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아무리 혐오하거나 조롱해도, 그것을 떠나서 결코 오랫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하든 악하든 그것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그것에 속한다. 그리고 이승에 있는 한 당신은 그것이 당신에게 남긴 흔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조국)

 

영국의 반군국주의 정서를 외국의 평자들이 역겨워하는 것은, 그런 정서가 대영제국의 존재는 모르는 체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를 순전히 위선으로 보는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튼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지구 땅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어찌 감히 돌아서서는 전쟁이 나쁘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모든 허상은 절반의 진실이 될 수 있으며,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 바뀔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똑같다'거나 '똑같이 나쁘다'고 하는 익숙한 주장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들은 전부 결국엔 방 반 덩어리는 빵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정의니 자유니 객관적 진실이니 하는 개념들을 아직도 믿고 있다. 그것들은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때문에 국민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대체로 계급 간 반목보다 강하며, 어떤 유의 국제주의보다 언제나 강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과 습성이 노동계급으로 확산되는 일이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이제 거의 모든 면에서 30년 전에 비해 형편이 좋아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공로이고, 어느 정도는 자연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한 나라의 생활수준이, 그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상승 없이 소폭이나마 올라간다는 건 늘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문명은 어느 정도는 제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의 효과는 사람들의 태도가 대체로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산업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근육 쓸 일이 줄어들어 일과가 끝나도 에너지가 꽤 많이 남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취향, 습성, 태도 그리고 관점에서 노동계급과 중산층은 서로 비슷해져가고 있다. 부당한 차별은 남아 있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시와 마이크>p.163~ 읽기

 

책 본문 중-

 

1.

소설가 김훈은 기자 시절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육하원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팩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까지 육하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기사의 구성요소에는 육하원칙 외에 '맥락'이라는 요소가 추가돼야 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라 함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권력의 콘테스트일 것이다.

 

2.

언론이 '팩트를 추구해야 한다'는 명제와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 다른 말이다.

1.

출간된 지 한참이나 됐지만 뒤늦게 이런 보물같은 시리즈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김영사 출판의 <지식인마을>이 그것인데, 평소 궁금하지만 범접할 수 없었던 철학자, 심리학자, 과학자들의 세계를 쉽게 소개한다.

각 사상가, 철학가들의 전문가들이 나서 집필을 해서인지 한권에 녹아있는 내용들이 이해하기는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2.

이번에 읽은 건 <부르디외&기든스>, <홉스&로크> 편이었다. (물론 논술에 필요해서 읽었다ㅎ.ㅎ;;)

작가의 생애-사상전반, 두 인물의 사상 비교 등을 순서로 소개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많아 옆에 포스트잇을 두고서 읽었다.

좋은 부분은 스캔도 하고!

 

3.

인문학이 어렵다, 철학이 어렵다, 순수과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알토란같은 책을 볼때면 결국 개인이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가 무언가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또 깨닫는다.

 

4.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

책은 기본적으로 유명 사상가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고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다양한 책 이름이 나오지만 고전의 내용 전부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지식인마을> 한 권을 읽으면 읽고 싶은, 읽어봐야 할 책들이 또 엄청 리스트업된다. 확장성이 어마어마하다. 책을 덮으면 당장 홉스와 로크, 나아가 루소 책까지 모조리 섭렵하고 싶지만(실천에 옮기는 닝겐이라면 난 이미..) 책을 덮는 순간 의욕 증발 ㅎㅎㅎㅎㅎ.....

 

1. 최장집, 김우창 교수의 대담 - 더 많은 혹은 더 작은 민주주의를 찾아서

 

- 다른 대안적인 가치를 좇게 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의 지금의 결과가 됐다. 신자유주의가 들어와 민주화되는 시점과 만나면서 나쁜 방향으로 가속화됐다.

- 국민 위에 군림하고 싶고, 전체를 대표하고 싶어하고, 자신을 지지했던 정당의 정책 프로그램이나 방향을 신경 쓰지 않고 대통령 자신의 이해와 의지를 일방적으로 전체 국민의 것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인다면, 그건 전체주의에 가깝습니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국가와 역사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전체 국민과 역사를 대표한다고 말하면서 정책을 풀어나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국가의 이익을 강조하지요. 신문도 부문 이익들이 표출되고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도덕적인 질타를 많이 하지요.

- 냉전 반공주의의 가장 큰 유산은 노동 세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는 자본이었고, 한국 사회의 시민성이 시장화된 시민성으로 재조직되는 과정에서 부동산이나 투기에 대한 열망이 확산되었습니다.

- 독일에선 토론이 한없이 진행됩니다.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극히 작은 세부의 문제에 대한 토의지요. 신문에 그 퇴의 진행 과정이 자세히 보도됩니다.

- 하버마스가 현대 산업사회의 한 효과로서 '일상생활의 식민지화'라는 말을 쓴 일이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의 큰 조직이 보통 사람의 삶을 잠식해 들어가는 현상을 말하지요. 그간의 급격한 변화들이 사적인 삶의 영역을 완전히 없애버렸어요.

- 국가 일등, 아니 세계 일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세계에서의 인간적인 관계, 평등하면서도 구체적인 의미에서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제가끔의 업적을 지닌 , 그러한 인간 관계의 사회를 찾아야 한다.

 

2. 김두식 교수 -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 추억이란 늘 양날의 칼과 같아서,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만큼,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벽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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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에 대한 공부겸, 김종인이란 인물을 알고 싶은 호기심 해소 겸 선택한 책.

4.13 총선 전, 이 인물의 행보를 두고 얼마나 말들이 많았나. 일부에선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비판을 했지만

김종인이란 인물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국가의 방향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헌법 119조 2항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사람.(이 조항의 별칭자체가 김종인 조항이니...)

 

3월부터 읽어보려고 메모장에 적어놨다가, 이제서야 읽게 됐다.(제발, 은정아ㅠ)

 

책을 펼친 순간, 오잉@-@ 본문 글씨가 여타 서적들보다 커서 기분이 좋았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고, 책 중반부에 나오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얽힌 이야기들이 꽤 흥미롭다. 당시에도 경제정책에 있어 일조하셨던 분이 2016년 지금에도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랍다.(이 분의 생각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점 & 체력관리 등등..)

 

 

1.

우파적 성향과 좌파적 성향을 동시에 드러낸다.

 

우파적 성향이 있다고 느낀 이유는 이 분은 확실히 '엘리트주의'를 믿는 듯한 느낌. 대중, 민중, 시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을 최악의 상황이라 가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민중봉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에서 먼저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굉장히 우파적 색이 짙다.

 

언뜻 드러나는 대의제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좌우파사전>에서 우파들이 대의제를 바라보는 생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민이 다음 선거에서 최종 의사를 표현하기 전까지는 정치 엘리트 다수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선거에서 당선된 엘리트는 자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확인된 민의를 반영할 책임이 있다. 선거 이후의 직접적인 시민 집단 행위는 국민주권의 대표자들에 대한 업무 방해라 여긴다" 이 책에서 김종인 씨가 직접적으로 대의제에 대한 의견을 이렇다고 제시한 건 없지만 전반적으로 위에 언급한 논조 그대로를 따른다.

 

그렇다고, 완전히 보수적 성향의 인물도 아닌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 '정규직 과보호'를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과보호'가 비정규직의 근본 원인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딱 잘라서 성향을 정의하기 어렵다.

 

2.

경제민주화를 재벌해체, 재벌개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재벌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상생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나는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재벌해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재벌이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따르려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도 적은 지분으로도 전체 계열사를 손에 쥐려 하기 때문이고 이는 즉 대를 이어 기업을 소유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김종인이 말하는 '공정거래법만 잘 지켜도 경제민주화는 이뤄지는 것이다'는 장기적으로 경영과 소유의 분리를 의미하고, 이는 곧 재벌의 해체와 이어진다. 경제민주화가 재벌해체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재계의 반발 회피용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

 

3.

이 분도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 좋은 모범 사례로 독일을 자주 언급한다. (독일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정말 선진적이다. 독일어를 배워 독일로 이민을 가고 싶어지는 요즘@.@)

 

4.

보육&교육 정책을 복지 정책이 아니라 경제 정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2016년인 지금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5.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책을 읽으며 지은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방향에 굉장한 자신감과 믿음, 어떤 부분에선 고집까지 느껴지곤 했다. 신문에서 접하는 김종인의 이미지와 참 잘 맞는다는 생각;;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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