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작품에 푹 빠져있다. 소설이야 말할 것 없이 대작인 건 그렇다치고, 에세이집도 대단하다.

면접 끝나면 각잡고 읽어야지.

 

1. <스파이크>

그들 사이엔 대화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 거창한 주제다. 다음 끼니가 확실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건 다음 끼니뿐이다.

 

그의 몸은 스파이크에 있을지 몰라도 정신만은 멀리까지 날아올라 중산층의 순전한 정기 속에 있는 셈이었다.

 

2. <코끼리를 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자기 마음이지만, 백인 나리라는 상투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가식적인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3. <마라케시>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체로 눈에 잘 안 띄며, 중요한 일을 할수록 눈에 덜 띄는 경향이 있다.

 

열대의 풍경에선 이상하게 사람만 빼놓고 모든 게 눈에 잘 들어온다. 말라붙은 땅도, 석류도, 야자수도, 먼 산도 눈에 잘 뜨인다. 그러나 밭에서 괭이질 하고 있는 농부만은 꼭 놓치게 된다. 그것은 그의 피부색이 흙색과 같으며, 그래서 보는 재미가 훨씬 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4. <좌든 우든 나의 조국>

그날 밤 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중산층에게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으며 영국이 심각한 궁지에 빠지면 나로서는 애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 여기서 오해는 없도록 하자.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 변하고 있되 신비롭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무엇에 대한 헌신이다.

 

5. <영국, 당신의 영국>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당신'의 문명이요,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아무리 혐오하거나 조롱해도, 그것을 떠나서 결코 오랫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하든 악하든 그것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그것에 속한다. 그리고 이승에 있는 한 당신은 그것이 당신에게 남긴 흔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조국)

 

영국의 반군국주의 정서를 외국의 평자들이 역겨워하는 것은, 그런 정서가 대영제국의 존재는 모르는 체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를 순전히 위선으로 보는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튼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지구 땅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어찌 감히 돌아서서는 전쟁이 나쁘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모든 허상은 절반의 진실이 될 수 있으며,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 바뀔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똑같다'거나 '똑같이 나쁘다'고 하는 익숙한 주장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들은 전부 결국엔 방 반 덩어리는 빵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정의니 자유니 객관적 진실이니 하는 개념들을 아직도 믿고 있다. 그것들은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때문에 국민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대체로 계급 간 반목보다 강하며, 어떤 유의 국제주의보다 언제나 강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과 습성이 노동계급으로 확산되는 일이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이제 거의 모든 면에서 30년 전에 비해 형편이 좋아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공로이고, 어느 정도는 자연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한 나라의 생활수준이, 그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상승 없이 소폭이나마 올라간다는 건 늘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문명은 어느 정도는 제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의 효과는 사람들의 태도가 대체로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산업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근육 쓸 일이 줄어들어 일과가 끝나도 에너지가 꽤 많이 남는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 취향, 습성, 태도 그리고 관점에서 노동계급과 중산층은 서로 비슷해져가고 있다. 부당한 차별은 남아 있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시와 마이크>p.163~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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