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부터 5월2일까지, 2박3일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작년에 무주산골영화제 경험이 무척 좋아서 부국제에 이어 국내 영화제 가운데 규모 2위라는 전주국제영화제도 궁금했다. 

 

티케팅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부국제랑 달리 JIFF는 널럴 하다더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영화 선정부터 난관에 부닥쳤는데 낯설디 낯선 영화 가운데 뭐가 괜찮은지 알아볼 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펴보려면 해외 평단의 평가부터 봐야한다지만 너무 구찮은 게 아닌가? 제발 나 좀 떠먹여줘...흑... 

 

겨우 겨우 티케팅 며칠 전에 상영작을 좀 살펴보고, 같이 갈 친구랑 우선순위 몇개를 정했다. 

 

그러나

당초 예정된 티켓오픈 시간 직전에 갑자기 서버 불안정해서 오픈시간 연기된다는 공지가 나와서 대혼란. 마감 때문에 맘 졸였던 난 오히려좋아..상황이었지만 ^_ㅠ 영화제 티켓 예매 매번 왜이러나 싶다. 

미뤄진 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도 난 서버 터짐.. 예매창에 아예 접속이 안돼 멘붕이었는데 다행히 친구는 서버 접속이 되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 거의 다 예매 성공함. 

 

1. 

4월30일 일요일

 

오전 10시 샤센카 예매했지만 전주에 10시에 도착하려면 언제 출발해야 할 지 두려웠다. 전날 울산 장거리 운전도 이미 한터라 기운이 조금도 없었다. 친구랑 고민고민하다 여유있게 보자고 했다. 샤센카는 취소하고 오후 늦게 영화를 보기로 함. 

 

시릴 루티 <고다르 시네마>, 아녜스 바르다 <1967-뉴욕의 파솔리니>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고 단순하게 영화 2개니까 하나는 실패해도 하나 집중해서 보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1967~>은 5분짜리였다. ㅎ..

 

<1967~>은 바르다 감독이 뉴욕에서 만난 다른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얼굴과 뉴욕의 거리를 비추며 나눈 대화로만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단편은 존재조차 몰랐다가 최근에서야 발견됐다고 한다. 시대 배경을 모르니 주고받는 티키타카 대부분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기억에 남는 부분도 있었다. 

 

- 뉴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가난

 

<고다르 시네마>는 아주 영화를 얕게 아는 나조차도 익숙한 감독 '장 뤽 고다르'에 관한 전기영화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의 영화를 거의 본 게 없어서 이 전기영화는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사회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영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68년 2월혁명 이후 고다르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고다르는 국가에, 체제에 반기를 드는 영화도 그 어디까지나 권력이 허용해낼 수 있는 선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2. 

5월1일 월요일

 

하루를 통 영화제에서 보내는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숙소를 나섰다. 

 

롤라 키보론 <로데오>

 

여성, 모터사이클, 아웃사이더.. 

 

이런 키워드를 읽고는 영화 <와일드>를 생각했다.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하는 여성이 남성 라이더 사이에서 겪는 분투..? 이 예상은 영화 첫장면부터 바로 깨진다. 첫장면의 카메라가 정말 예술이다. 이 영화 전체가 어떤 리듬으로 흘러갈지 보여주는 장면과도 같달까.. 주인공 줄리아가 모터사이클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는 게 아니라 모터사이클 그 자체에 열광하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줄리아 역을 맡은 배우는 피부와 머리카락, 체구 등 모든 게 이 역할에 찰떡이었다. 같이 본 친구는 영화 <티탄>의 순한맛 같다고 평했다. 

 

JIFF 홈페이지에 영화 소개와 함께 짤막한 리뷰가 들어가는데 <로데오> 리뷰의 첫문장이 진짜 너무 구리다. '길들여지지 않는 여성은 늘 매력적이다. ...' 라뇨.. 이런 영화에.. 이런 영화가 말하는 지점에서 몇단계나 후퇴한 문장인가.

 

 

데보라 스트라트맨 <마지막 것들> + 감독님 GV

 

순전히 친구의 픽. 친구의 취향과 안목을 믿는 편이라 예매한 영화 다 좋았는데 이것만은 '이게 뭐야?' 했다. "이 영화 암석만 계속 나오는 거 아녀?(농담)" 했는데 진짜로 그러하였다! 이렇게만 말하면 뭔 영화인가 싶지만 이 영화는 인류가 중심이지 않은 지구를 그린다. prehistoric + prehistoric + prehistoric 몇억년 전 암석을 시작해 다양한 존재의 진화를 다룬다. 눈이 감기는 순간이 많았으나 (감독피셜) 에얼리언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음악들이 겨우 눈을 뜨게 해줬다. 영화 전반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영화가 끝난 후 바로 감독님과의 GV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여러분은 50분 동안 수십억년(?)을 체험하신 겁니다~~'라고 말한 모더레이트의 말 한마디로 이 영화의 의미가 살아난 느낌. 

 

조한나 <퀸의 뜨개질>

 

한국 단편 영화 4개를 묶어서 상영했는데 그 중 하나였다. 이 단편선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뜨개를 다룬 영화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뜨개에 푹 빠져 살고 있다보니 JIFF 상영작을 살펴보다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는 한참을 웃고 친구에게 보자고 했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코바늘 끝판왕 '만다라 매드니스'를 만드는 니터의 수행기(?) 같은 건가 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봤는데 웬걸. 이 영화 너무 좋았다. 

 

주인공은 바로 감독 '한나'. 할머니에게 어릴 적 코바늘을 물려 받은 이후 15년 넘게 니터로 살아온다. '뜨개=여성의 취미'라는 인식에 반기를 드는 감독은 뜨개에 씌워진 편견 만큼 여성에게, 한나 자신에게 씌워진 편견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반문한다. "뜨개는 여성 고유의 취미인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그리고 "사람은 이성만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만다라 매드니스'를 만드는 과정과 교차한다. 만다라 매드니스는 코바늘로 만드는 담요의 한 종류다. 

 

갑자기 딴 길로 새서 만다라 매드니스 이야기를 하자면 

https://itsallinanutshell.com/2016/07/14/mandala-madness-crochet-video-tutorials-yardage-color-list/

 

Mandala Madness – all video tutorials, colors list and yardage

Mandala madness crochet along designed by Helen Shrimpton is completed. In a long journey over 18 weeks that took us through a few bumpy bits and sharp turns we all came out reasonably unscathed th…

itsallinanutshell.com

위 링크에 만다라 매드니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만다라 매드니스는 Helen Shrimpton 작가가 만든 것으로 완성하는 데 18주가 걸린다고 소개한다. (영화 속 한나는 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원래 '하루만에 다 뜨는 OO'라는 말로 현혹하는 뜨개 도안을 실제로 떠보면 그의 곱절이 걸린다) 링크에서 만다라 매드니스를 소개한 니터도 완성하는 데 180일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코바늘 편물을 선호하지 않아서 대바늘을 주로 잡는데 코바늘을 했다면 위시리스트에 'Mandala Madness'를 넣었을 거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보면

 

한나는 자신과 똑 닮은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만다라 맨드니스를 완성해가며 과거에 있던 일들을 홈비디오 영상을 통해 풀어내기도, 뜨개 인형으로 1인인형극을 하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질문은 가볍지 않은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치있다. 모두가 그럴테지만 압권은 영화 막바지의 노래다. 노래 너무 중독적인데 유툽으로 올려주면 안되나ㅠㅋㅋ 다른 니터의 뜨개를 보고 싶어 봤던 영화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더 큰 걸 받고 돌아왔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한나 감독님

영화 끝나고 감독 및 출연배우와의 GV도 있었다. 

 

왜 본인의 이야기를 첫 영화에 풀어냈냐는 관객석의 질문에,

한나 감독이 '내 이야기를 먼저 풀어야 타인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라고 한 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다음 작품이 정말 기대된다. 

 

<퀸의 뜨개질>은 한국 단편에서 대상도 받았다! 내가 영화볼때도 다른 단편들 중에 독보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싶었는데 역시는 역시. 대상받은 작품을 보고와서 뿌듯했다. 

 

3. 

5월2일 화요일

 

전날 영화 강행군 + 전주 여행으로 녹초가 됐다. 

 

 

우무트 수바셰 <가벼운 재앙>

 

4명의 젊은 남녀가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첫 부분부터 4명의 주인공들이 깨발랄한 음악에 울부짖는 장면이 차례로 나온다. 이 청춘들은 각자가 처한 '가벼운 재앙'에 억눌려있다. 취업이 안되거나, 돈이 없거나, 친구가 없거나... 누군가는 젊었을 때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겐 그 무게가 어찌 가볍기만 할까. 이 영화 역시 음악이 좋았고, 굉장히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 후 이어진 GV에서 감독님 답변 스타일을 보니 왜 영화가 '은근히 웃긴지 알 거 같았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감독님, 세번째가 프로듀서

 

 

 

마지막 영화는 미하일 보로딘의 <불편한 편의점>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온전히 집중해서 봤다. 그만큼 좋았다. 초반부부터 감정적으로 휘몰아치게 만드는 영화인데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늘 무표정한 상태의 주인공이 웬만해선 감정을 쏟아내는 법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동명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여서 제목이 익숙한 인상을 주는데 사실 원제는 <편의점(convenience store)>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편의점에서 고용된 외국인들이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하고 고용주에게 학대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말은 편의점이지만 우리나라 편의점과는 완전히 달라보였고 24시간 운영되는 작은 마트에 가까웠다.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라 그런지 올초 읽었던 <깻잎투쟁기>도 생각이 났다. 자국에서 일거리가 없어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한다는 것부터가 약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말 먹고 살기 위해 끝없이 평생을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일생이 참으로 고단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엄마가 갑자기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주인공이 그 절단한 다리를 돌아가신 아빠 무덤에 묻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조차도 인부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 사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았다.  

 

4. 

전주에서 먹고 보고 간 곳들 

https://map.naver.com/v5/search/%EB%AA%A9%EB%A1%9C%EA%B5%AD%EB%B0%A5/place/1477802979?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중화산동 목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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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끼는 '목로국밥'의 한우시래기탕.

가격이 꽤 있었으나 맛이 깔끔하고 고기가 실했다. 백김치를 사이드 반찬으로 추가해서 먹었다. 

원산지=목로국밥 주인장 엄마

 

영화 강행군이었던 둘째날 영화거리에서 간단하게 먹을 음식점을 찾았다. 

https://map.naver.com/v5/search/%ED%98%95%EC%A0%9C%EB%A9%B4%EC%86%8C/place/1749922884?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형제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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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면소'라는 식당으로 영화제 기념 할인도 됐다. 대만식 마제소바를 시켰다. 맛있었음. 

 

구워먹는 닭갈비집 '계륵사지'

https://map.naver.com/v5/entry/place/1955529528?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계륵사지 삼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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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와 익산에 지점이 여러곳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에는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차타고 좀 가야 했다. 다 구워줘서 너무 편했다. 기본 반찬으로 계란찜과 묵사발이 나오는 것도 좋앗당. 

 

 

마지막날 식사는 전주한옥마을 숙소 바로 근처에 있던 '강촌떡갈비'

https://map.naver.com/v5/search/%EA%B0%95%EC%B4%8C%EB%96%A1%EA%B0%88%EB%B9%84/place/16808444?c=12,0,0,0,dh&placePath=%3Fentry%253Dbmp

 

네이버 지도

강촌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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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 가고 싶었지만 재료 소진으로 마감시간도 전에 문을 닫았다ㅠ 

게하 사장님도 추천했을 정도로 이미 소문난 맛집. 네이버 평 등을 보면 친절도에서 평이 안좋던데 맛만 좋으면 됐다 주의라서 매우 만족했다. '떡낙정식'(2인 이상)이라고 해서 떡갈비+낙지볶음+파전을 1인분에 1만5000원에 파는데 진짜 배부르게 먹었다. 

 

강촌떡갈비 떡낙정식을 시키면 나오는 낙지볶음
떡갈비

 

강촌떡갈비 바로 옆에는 '살림책방'이라는 동네책방이 있다. 

https://map.naver.com/v5/search/%EC%82%B4%EB%A6%BC%EC%B1%85%EB%B0%A9/place/103394150?c=15,0,0,0,dh&placePath=%3Fentry%253Dbmp

 

네이버 지도

살림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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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바로 이 근처라 일요일부터 노리다가 화요일 오전에야 갈 짬이 나서 인스타를 봤더니 매주 화요일이 휴무일이었다. OMG... 나 책에 과소비하는 거 젤 조아하는 친구가 엄청 아쉬워했다. 나도 당연히 아쉬웠음. 떡갈비 먹고 나오면서 "아 살림책방 오늘왜 휴무야!?!!" 하고 냅다 소리지르면서 책방앞을 지나쳤는데 책방이 열려 있었다. 머쓱하게 들어가서는 책과 문구류를 구경했다. 영화제 기간이어서 휴무일이지만 여셨다고. 

 

살림책방 강아지

살림책방에 강아지가 있는데 정말 얌전하다. 귀엽고 우아해. 강아지 무서워하는 나지만 가만히 앉아있길래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완산공원
완산공원
완산공원의 삼나무숲
영화의거리를 3일 내내 누볐다
경기전과 정동성당도 갔다
꿀밤고구마...

 

지난해부터 구독하고 있는 영화 계간지 <프리즘오브>에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한 음악콘서트 초청권 이벤트를 열었다. 프리즘오브 정체성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벤트였다. 생각보다 세종에서 제천이 멀었다만은, 다음날이 광복절 연휴라 맘편히(사실 그 다음날부터 휴가였음) 신청했다. 이 포스팅을 적는다는 건 = 당첨됐다! 는 뜻이겠죠? 헤헿..

그렇게 또, 무주산골영화제 때 체력 없어서 끙끙 앓았으면서도 또 또 또! 영화제 체험을 떠나는 나와 친구..

초청권 이벤츠에 당첨된 건 14일 일요일 저녁 스필버그 감독의 <E.T>의 음악콘서트였다. 음악이 좋은 영화를 골라 상영과 동시에 영화에 삽입된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영화에 맞춰 연주해주는 방식의 콘서트다.

그래도 이번엔 무주영화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무리해서 영화를 보지는 않기로 했다. 음악콘서트가 예정된 날에도 일찍부터 제천을 찾지 않았다. 음악콘서트는 저녁 8시에 비행장 무대에서 열리는데 그에 맞춰 제천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기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군침 싹 돌쥬(루피버전)
크으..

제천 맛집에서 저녁을 먹어야죠ㅎㅎㅎ
'고향이야기'라는 식당이다.
https://map.kakao.com/

 

카카오맵

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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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바로 옆에 주차장이 꽤 크게 있다. 못보고 그냥 길거리에 차를 댈 뻔...

곤드레 솥밥 2개와 감자전을 시켰다. 식당 후기에 감자전 극찬글이 꽤 많다. 금방 부쳐 바삭바삭한 감자전이 맛없기도 또 쉽지 않잖아요? 실제로도 굉장히 맛있었다.
곤드레 솥밥도 다양하고 맛있는 반찬과 함께 먹으니 꿀맛. 신기했던 건 솥밥인데 솥밥 그대로를 내 주지 않고 주방에서 솥밥의 밥을 미리 덜어내 준다는 점이다. 뜨거운 국물 부어 숭늉먹는 게 솥밥의 맛인데 솥밥 안주니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밥을 다 먹어갈 쯤 곤드레가 동동 떠다니는 숭늉 그릇을 건네주신다.

사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걱정은 쓰레기같은 체력보다는 폭우였다. 바로 전주에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난 잔뜩 쫄보가 돼 있었고, 운전해서 제천까지 가는 길에도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어쩌지? 걱정을 했다. 다행히도 제천 가는 길에는 잔뜩 흐렸지만 비가 안와서 안심했는데 문제는 저녁밥을 다 먹어갈 즈음 창밖을 내다보니 꽤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흑...

비행장무대에 설치돼 있던 조형물

음악콘서트는 지정좌석제가 아니었기에 일찍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시간이나 일찍 비행장무대에 갔다. 그런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것이 아닌가.... 티켓 수령할 때 '이렇게 비가 오는데 공연 진행하나요??'라고 물어봐도 '폭우가 아니면 킵고잉~~(이런 워딩은 아니었음 당연)' 이래서 불안한 맘을 잔뜩 안고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근데요.. 폭우 잖아요.. 선생님들..

영화제 측에선 우비를 하나씩 나눠줬고, 공연장 안에서 우비를 입고 있어도 의자에 깔라며 또 우비를 하나씩 건네줬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무대 앞이라고 해도 위에 천막 없이 버틸 재간이 없어서 무대 중간 쪽 천막 밑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제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빗줄기는 정말 점점점점 거세지고.. 천막 위에 고인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려 등을 흠뻑 적시는데도 이미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별로 동요하지도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제 공식 인스타 댓글을 통해 이 공연이 계속 진행되는지를 체크했지만 비가 시간당 20mm 이하로 올 경우엔 계속 한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흠..
시시각각 변하는 영화제 상황을 인스타를 통해 공지하는 것도 맘에 안들었는데 -인스타 안하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나요?- 비가 무서울 정도로 내리는 와중에도 공연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아서 의아했다. 결국 예정된 8시가 되자 우천으로 인해 공연 시작 시간을 30분 늦추겠다는 공지가 나왔다. 이렇게 또다시 30분 비맞는 수행 시작..

근데 웬걸, 30분이 될 무렵 비가 거짓말같이 그쳤다.
천막에서 나와 공연장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진에 보이는 저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면 가운데 화면과 좌우 작은 화면 2개에서 영화를 송출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말입니다. 가운데 화면의 자막은 오케스트라 위에 설치한 천막으로 아예 보이질 않고 좌우 영상은 자막 크기가 작아서 답답했다. 원래라면 더 짜증날법도 했겠지만 한시간 넘게 비를 맞고 앉아있다 보니 이 상황에서 공연을 하는 게 어디냐 싶었다.

그러나, 하지만, however, 可是,,,,

영화 상영 한시간이 지날 무렵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기다리는 동안 내렸던 비처럼 엄청나게 쏟아졌고, 갑자기 지휘자가 냅다 마이크를 잡고 "쏘리~" 하더니 공연이 중단됐다. "???????" 관객들 모두가 박수를 쳤고 하나둘 공연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한시간이나 공연을 끌어온 연주자 및 지휘자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갑작스러운 취소 결정은 십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또 악천우라는 게, 특히 요즘처럼 한시간 후 일기예보조차 틀리는 상황에선 영화제 측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 진행방식이 너무 하나같이 별로여서 화가 많이 났다 ^_^;

그렇게 허탈하게 공연장에서 빠져나왔고 다음날 기약.. 

 

2.

15일 월요일 아침! 

친구 고모가 만들어주신 아침

이날은 원래 영화 한편 정도 보고 돌아가려고 했다. 전날 음악콘서트가 어영부영 취소되지 않았다면 계획대로 했을텐데. 음악콘서트를  제대로 못 봤다는 아쉬움 때문에 다른 영화라도 제대로 챙겨봐야지 싶었다. 그래서 이번 제천영화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서 진작에 매진이 됐던 영화들의 취소표를 줍줍하기 위해 예매페이지를 무한 새로고침하고...

 

소나타

첫번째 영화는 바르토슈 블라스케 감독의 <소나타>

 

폴란드 영화고, 우리나라에서는 개봉한 적이 없는 영화다. 

 

주인공 그레고리(Grzegorz)는 자폐 판정을 받고 자폐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그곳에서마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레고리 부모는 아들에게 개인 교사를 붙여가면서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새로운 개인교사는 그레고리의 행동 패턴을 통해 그레고리가 자폐가 아닌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눈치챈다. 부모에게 그레고리의 자폐진단이 제대로 된 것인지 다시 한번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선 그레고리가 자폐가 아닌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지만 청각장애에 맞는 양육과 교육을 놓쳐온 그레고리는 어느 학교에 다녀야할 지부터 막막하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음악, 피아노다. 

 

실화 기반 영화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실제 인물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나오는데 소름이 돋는다.

처음엔 청각장애를 자폐로 진단한 어처구니 없는 오진이 그레고리에게 앗아간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그레고리를 둘러싼 가족들(특히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레고리의 동생), 음악교사들의 존재가 대단해 보였다. 

 

웃겼던 장면

청각장애 판단 이후 자신이 모든 것(언어습득부터 해서)에서 뒤처졌다고 느낀 그레고리가 아빠를 원망하는 장면.

이렇게만 보면 무거운 장면일 것 같은데 그레고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꺼내는 장면이고, 아빠의 어버버 답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그런데 어떻게 극장에서 상영 도중 스크린을 찍을 수 있었나????

ㅎ....

<소나타> 상영이 한시간쯤 지났을무렵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처음엔 오작동이겠지, 곧 꺼지겠지,, 싶었는데 비상벨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관객들도 웅성웅성대기 시작. 실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를 포함 관객들 하나둘 밖으로 쏟아져 나오니 상영장 밖은 더 아수라장. 

스탭들도 상황 인지가 전혀 안되고 있어서 난리통이었다..어휴..ㅋㅋㅋㅋㅋ 

실제 상황은 아닌듯해 다시 상영관 안으로 들어와 앉아 기다리니 영화관이 있는 건물 공사 중에 문제가 생겨 비상벨이 오작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틀 연속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해프닝을 겪고, 영화는 멈춘 시점에서 다시 시작됐다.

 

 

<소나타>가 끝나고 본 다음 영화는 <나씽 컴페얼즈>였다. 

 

영화제의 이름에 걸맞게 이 역시 음악영화였고, 신기하게 이것도 실화 인물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였다. 

시네이드 오코너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를 다룬다. 가수로서의 시작 이전부터 어떻게 가수로서 성장을 거뒀고, 또 어떤 일을 계기로 대중들에게서 멀어졌는지를 기록했다. 

내 세대의 가수가 아니라 사실 노래도 잘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가수였는데 그녀가 2000년대 초반에 겪은 일들의 패턴은 그렇게 새로워 보이지 않았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 어떤 부메랑이 돌아오는가. 또 그게 여성이었을 때는? 

 

영화가 끝나고는 영화 제작PD가 참여하는 GV가 있었다.

질문을 정말 제한적으로만 받았는데(오직 영화 제작에 관한 것만 물어달라는 사전 주문이 있었다) 제작 과정에서의 일화들은 풍부하게 대답을 해줘서 좋았다. 왜 질문을 엄격하게 골라내려고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https://place.map.kakao.com/10554861

 

송어골

충북 제천시 청전대로 148 (청전동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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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편을 기분 좋게 보고 저녁을 먹으러 송어회로 유명하다는 송어골로 왔다.

도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가게인데 오픈시간에 맞춰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는데 회를 몇 점 먹다보니 손님들이 꽤 들어왔다.

송어회는 1.5kg을 주문했고(메뉴판에는 1kg 단위 뿐인데 이렇게도 주신다) 회와 곁들일 비빔야채도 따로 주문을 해야 해서 비빔야채도 2개를 시켰다. 사실 주인아주머니께서 "2명이면 이렇게 이렇게 주문해서 먹어~~" 라고 해서 그대로 주문했다. 또 아쉬울 거 같아서 매운탕도 함께 주문. 

이제 막 영업 시작이었는지 음식 나오기까지는 한참 기다렸는데 공복을 반찬 삼아 더 맛있게 먹었다. 연어 빛깔과 비슷한 송어회는 연어보다는 더 투명하고 영롱한 색이었는데 민물고기 특유의 맛이 나는 게 신기했다. 비빔야채를 돈 주고 먹어야 한다는 불만섞인 리뷰도 꽤 봤는데 양이 꽤 많고 맛있어서 돈 주고 시킬 만하다. 그냥 송어회만 먹는 것으면 너무 밋밋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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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무주산골영화제 마지막날!

고백하자면 전날 집에 돌아와 다음날 무주에 다시 갈 것인지 고민을 꽤나 진지하게, 길게 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영화제 후기에 피곤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적는다, 나참)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시 돌아오는 길, 또 그다음날 출근 가능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가기로 결심.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단편을 여러 개 묶어 상영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 그렇게 긴 고민 끝에 다시 아침 일찍부터 무주로 향했다!

1.

캘러미티 제인
캘러미티 제인

마지막날 첫번째 영화는

<캘러미티 제인>이라는 애니메이션.
미국 개척시대,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조차 사회통념상 허락되지 않은 시절 남성과 어깨를 견주며 서부 개척에 힘을 쏟는 실존인물 '캘러미티 제인'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작화가 멋있고 무엇보다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성장기 답게 크고작은 고난을 주인공이 거뜬히 넘어가기 때문에 답답함 없이 볼 수 있다. 캘러미티 제인이란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영화 감상 후 검색하다 처음 알았다; ㅎ 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이미 꽤 많더라.

+) 캘러미티 제인을 보기전,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현장예매를 위해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 손녀와 함께 영화제에 온 할머니 한분 계셨다. 무주군민이신 듯한데 동네에서 시끌벅적한 영화제를 하니 손녀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줄 마음으로 오셨는데, 영화가 워낙 낯설다보니 직원에게 추천을 받고 싶어 줄을 서신 것인데.. 이런 예매창구에서 영화 추천을 과연 해줄까? 반신반의했는데, 담당 직원분이 너무나 친절하게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영화(-> 캘러미티 제인이었음)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걸 보고 괜히 갬덩이었음...

2.

캘러미티 제인을 보고 점심먹으러 가는 길. 비가 그친 후 날씨가 무척 좋았다.
콩국수와
모두부
유정언닌 들깨순두부찌개

점심은 영화제가 열리는 곳과 엄청 가까이 있는 식당 '콩수레두부'에서 먹었다.
첫날부터 오고 싶었던 곳인데 줄이 줄이,,, 너무 길어서 이내 포기했는데 마지막날에는 다행히 별로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식당 안쪽까지 자리가 꽤 있었다. 밀린 주문들이 좀 많아 기다리다가 맛있게 먹었다. 모두부 엄청 맛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음
왕크니까 왕멋있다
전여빈 배우 향수
오오~ 나도 이 브랜드꺼 쓰는뎅~

점심을 먹고 나서 다음 영화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주말에 둘러보지 못한 전시공간을 둘러봤다. 이번 영화제 넥스트배우로 선정된 인물이 전여빈 배우여서 지금까지의 필모와 사진들, 촬영현장에서 쓰는 소품, 의상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었다. 전여빈 배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멜로가 체질?이 나에겐 대표작인데. 상견니 한국판에도 황위쉬안(이자 천윈로)로 나온다고 하니 아마 이 작품도 챙겨보지 않을까.

3.

하마구치 류스케 시네마토크
하마구치 류스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하마구치 류스케 단편선 시간이 왔읍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풀타임만큼 기대됐던 영화였다. 하마구치 류스케를 그렇게 잘 아느냐?하면 그건 아니지만,, 최근 그의 작품들을 꽤 봐서 기대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원래 사람이란 단독상영, 특별상영 등에 끌리는 법이니.. 쉽게 볼 수 없는 하마구치 류스케 단편작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티케팅할 때 1순위로 했었다.

6일에 상영한 하마구치 단편선은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 <천국은 아직 멀어> 순으로 보여줬다. 한달 지났다고 제목 기억안나서 프로그램북을 다시 폈넹 ㅎ

<우연과 상상>도 단편 3개를 이어 보여주는데 이건 감독이 단편을 묶어 하나의 영화에 '우연과 상상'이라는 제목을 붙여줬지만, 이건 독립된 영화 각각을 영화제가 골라서 보여준 것이니 좀 다른 맥락이기는 하나 <우연과 상상>을 볼 때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왜냐?! <우연과 상상>도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 가장 첫 단편인 <마법>이었고, 가장 마음을 울린 건 마지막 단편 <한 번 더>였는데 이번에도 첫번째 작품이 재미로는 최고였고, 마지막이 찡했다.

가장 재밌었던 작품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캐릭터 간 긴장감이 팽팽하고, 대화도 찰져서 지루할 틈이 없다. 아 근데 단편이긴한데 58분임 ㅎ..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는 솔직히 이해 못했다. 대체 이게 머고,, 이것도 54분에 달했는데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서 보기 힘들었음. 심지어 이 영화가 끝나면 이 영화는 <홍수>로 이어진다는 자막이 뜨는데 문제는 <홍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라는 것..

<천국은 아직 멀어>는 마음을 울렸다. 우연과 상상에 나왔던 배우가 이 영화에도 나와서 재밌기도 했다.
어릴 적 살인사건으로 언니를 잃은 동생이 사건 이후 시간이 한참 흘러 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언니의 주변인물들과 접촉한다. 그 가운데 언니와 전혀 연이 없는 독신남을 찾아가는데, 알고 보니 이 독신남은 죽은 언니의 영혼과 함께 살고 있고 가끔 이 남자의 몸에 언니가 들어가기도 한다. 동생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독신남의 몸으로 들어간 죽은 언니의 혼과 대화를 나누는데, 남자의 말을 믿지 못하면서도 언니에 대한 그리움에 언니와 대화화며 울음을 겨우 참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자기 인장 뚜렷한 감독의 단편을 보게 되서 무척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류스케 관련 책도 팔았는데 그 중 한권을 샀다.(물론 아직 안읽음;)


류스케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고, 힘들고, 지쳤지만 또 언제 이렇게 3일 내내 영화를 보겠어~ 것도 양질의 영화를~ 하는 마음에 뿌듯했던 연휴였다.

+) 산골프로그래머의 마지막 편지
- 영화제 전부터 프로그래머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이 짤막한 글이 좋았는데 영화제가 끝나고도 마지막 편지라는 이름으로 적어주었다. 마지막 편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7년간 계속해 온 '프로그래머의 편지'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은 아쉽지만 다 뜻이 있겠쥬?

http://mjff.or.kr/kor/artyboard/mboard.asp?Action=view&strBoardID=FVMI_0UK8&intPage=1&intCategory=0&strSearchCategory=|s_name|s_subject|&strSearchWord=&intSeq=5770

무주산골영화제

영화제, 무주, 산골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mjff.or.kr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알고 있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점점 더 많은 젊은 관객들이 찾는 젊은 영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외지의 자식들이 명절이 아닌데도 영화제 기간이 되면 무주에 오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난생처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았다는 무주 군민도 생겨났다. 무주의 젊은 공무원들과 청년들은 영화제를 기다린다고 했고, 무주에 오는 젊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영화제에 오는 주민들도 많다고 했다. 영화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애정하는 주민들도 점점 많아졌다. 영화제가 개최되면 무주 읍내와 무주군의 주요 공간들은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졌고, 그들의 열기로 들썩거렸다. 재료가 떨어져 저녁 장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식당과 페스트푸드점들에 대한 소식도 들려왔다. 볼 때마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던 먹거리 부스 운영자들도 말과는 달리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무주는 정말 작은 지역이고, 작년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무주산골영화제는 가고 싶어도 가기가 엄두가 안나는 공간이었는데 이 곳에서 10년째 영화제를 이끌어온 분들이 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제 곳곳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보면, 이런 행사가 지역주민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석해야지!

6월5일 일요일, 폐막일 전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영화제를 찾은 두번째날.
무주에 숙소를 잡은 덕분에 아침에 여유롭게 눈을 떴다. 하지만 영화를 집중해 보는 건 정말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 나이의 실감) 숙소를 나왔다.

1.

일요일에 예매해둔 첫번째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유명한 감독이 만든,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그 유명한 영화!! 지만 친구와 나 둘다 안봐서 별 이견도 없이 예매했다.

PTA 감독의 &lt;마스터&gt; 상영후 이어진 시네마토크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피곤해서 그런건지 영화의 강도가 강강강강강의 연속이어서 그런건지, 체감상 시간이 빨리 가는 영화는 아니었다. 보기에 힘든 영화라는 표현이 내게는 더 잘 맞는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연배우의 열연과 영화가 주는 줄거리의 강렬함은 정말 엄청나다.

주연배우인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정반대되는 연기톤을 보여준다. 호아킨 피닉스는 영화 <조커>에서 분했던 역할의 일부를 이 영화에서 먼저 보여준건가? 싶을 정도로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온몸과 얼굴을 다 써가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 역할인데 보는 사람도 이렇게 체력적으로 힘든데 연기를 하는 당사자는 어떨까 궁금했다. 반대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차분한 역할이지만,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프레디를 기로 눌러야 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결코 만만치 않은 연기를 했다고 봐야 한다.

줄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일부러 조금의 스포도 피하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영화 제목이 주는 의미에 무릎을 탁 침ㅋㅋ 사실 랭케스터(세이모어 호프만)가 일종의 사이비 교주의 교단이라는 점도 영화가 한참 흘러서야 눈치챘다. 그 전까지는 프레디의 기행과 엽기적인 언행 등에 더 포커스가 가다보니 랭케스터가 왜 프레디를 자기 무리(?)에 자꾸 낑겨넣으려는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시네마토크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영화보느라 지치기도 했고 연기보다는 각 장면장면에 대한 해설과 설명을 듣고 싶은 영화였어서 그런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ㅠ 풀타임보다 더 해설이 필요한 영화였는데 너무 오래된 영화라 그런지 나처럼 영화 해설에 대한 수요는 별로 없어서 연기를 주제로 잡았나?는 생각도 들었다.

+) 그리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을 PTA로 약칭해서 부르는지도 이날 첨 알았다 ㅎ

2.

이날 점심은 롯데리아 ^_^;

무주까지 가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한끼 식사로 먹는 사람이 있다???흑....

이날 영화제 부근의 식당이 죄다 문을 닫아서(일 휴무인 식당들) 겨우겨우 문 연 곳을 들어가면 재료소진, 아니면 겁나 긴 웨이팅...으로 어쩔 수 없이 롯데리아에 갔다. 햄버거 자체도 오랜만인데 롯데리아는 정말 더 오랜만..

3.

꺄~ 이 사진속 모든 분들이 좋았다
프로그래머님(젤 왼쪽), 어제 풀타임 상영 전에 보고 두번째
아 진찌 너무 좋았다고요..

권하정, 김아현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친구가 먼저 보자며 예매를 하기도 했지만, 다영이가 좋아한다고 열변을 토한 가수 이승윤씨의 이름이 영화 줄거리에 있길래 나도 엄청 궁금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이 영화처럼 덕질을 주제로 한 영화 <성덕>도 끌렸지만 그건 다른 영화와 시간이 겹쳐 아쉽게도 못보기도 했고..

다큐멘터리 줄거리는 이러하다. 사진속 젤 오른쪽(내 기준)이 권하정 감독, 가운데에 앉아계신 분이 김아현 감독.

영화를 전공한 권하정 감독님은 졸업 후 전공과는 상관없는 직장을 다니는데 여러가지 힘든 일이 겹쳐 침체기를 겪다가 김아현 감독이 알려준 이승윤씨의 노래를 들으며 큰 위로를 받고 회복한다. 그러던 중 이승윤씨의 노래에 맞춰 뮤비를 제작하기로 결심, 그에게 이를 제안하기 위해 먼저 기발매된 곡인 '무명성 외계인'의 뮤비를 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명성 외계인' 뮤비와 제안서를 이승윤씨에게 전달하고,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두 감독님(+ 친구분들)에게 이승윤씨는 본인이야말로 큰 감사와 영광이라고 답장한다.(정확한 워딩 아닐 수도 있음)

뮤비를 찍을 노래는 바로 당시 기준 곧 발매를 앞두고 있던 '영웅수집가'. 그때만 해도 이승윤씨는 영웅수집가가 담긴 앨범이 성공하지 못하면 가수로서의 꿈을 접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싱어게인 출연 전)
가수의 승낙과 함께 본격적인 뮤비 제작이 들어가고, 뮤비 제작을 하면서 이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도 만들 계획이 있던 이들은 한편의 뮤비와 함께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영상도 함께 찍는다. 하지만 영화를 전공했어도 뮤비 제작 경험이 처음인 그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내게 이 영화의 출발점은 이승윤씨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뮤비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 마음에 남는다. 영화는 코믹과 감동을 함께 가져가는데 코믹은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감독님들 매력 자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내 나이 또래들(선생님 양심 있으세요?)이라 그런지 코드가 맞아서 더 웃길 수도 있지만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많이 웃음을 터뜨린 영화였다. 무명성외계인 뮤비 찍는 장면부터 웃김ㅠ_ㅠ

감동 코드는 사회초년생들의 고군분투기에 있다. 나는 대학 때문에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서울이라는 넓디넓은 공간에서 무서운 공간을 꼽아보라면 동대문 밀리오레를 하나로 들 수 있다. 옷장사 경력만 수십년인 분들과 아직 고등학생티를 벗어나지 못한 내가 흥정을 하면서 옷을 사는 일이란 내 돈 쓰면서 기 눌리는 일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감독님들은 어린 얼굴로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과 몇번이고 마주하며 실랑이를 해야 하고 협상을 해야 했다. 예의있게 대하면 상대방도 예의를 다해주면 좋을텐데 그 기대는 번번이 벗어나기 마련이고.. 하지만 꿋꿋이 이겨내고 원하는 결과물을 손에 얻어 낸다!

뮤비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 장면 하나하나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큐를 통해 보고나니 영화가 끝난 후 찾아본 뮤비에서의 모든 장면들이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이승윤씨의 말대로 '이 정도의 퀄리티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도.

영웅수집가 뮤비를 찍고 난후에 이승윤씨는 싱어게인이라는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게 된다. 나 역시 싱어게인을 통해 이승윤씨를 알게 된 사람 중 한명이라 그런지 그 전부터 이렇게 다양한 스토리를 쌓아온 그에게 놀라게 된다. 그런 사람을 알아본 두 감독님들도 대단하고.

감독님은 이 영화가 이승윤씨의 이름에 기대지 않길 바란다고 했는데, 영화는 정말 이승윤씨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서 있다. 내년에 정식 개봉한다고 하는데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좋았는데 끝나고 이어진 감독님들과의 대화가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영화 자체가 워낙 유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관객들에게도 유쾌한 감정이 번져서인지 감독님들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가 예쁘고 상냥하고 따뜻했다. 무엇보다 이 GV를 이끌어간 평론가님의 진행솜씨가 엄청나서 감탄에 감탄을..

결국 한달이 지나서 쓰는 뒤늦은 무주산골영화제 후기.

6월초, 사흘간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았다.

 

지난해에도 가고 싶었던 영화제였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표를 제한적으로 팔다 보니 티켓팅에서 광탈하고는 맘을 바로 접었었다. 올해는 다행히 거리두기가 많이 풀려 작년보다는 훨씬 예매가 쉬었다. 

무엇보다 올해는 무주산골영화제가 10년차를 맞은 해. 기념비가 되는 해이다 보니 볼거리가 더 풍부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고, 5월부터 하나둘 올라오는 영화 라인업을 보면서 이번엔 꼭 가봐야지 싶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프로그래머가 영화제 시작 전에 정기적으로 올해 영화제에 관한 글을 써 홈페이지에 올리고 뉴스레터로도 보내준다. 그 글을 보니 무주산골영화제는 원래 무료로 진행됐는데 올해부터 유료로 전환됐단다. 영화제 규모가 커지거 이를 찾는 관객들이 많아졌고, 영화제 방향성을 새로 잡아가야 할 시기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에 맞물려 영화제 측에서도 올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GV에 평론가나 작가, 기자 등을 불러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킹시네마가 그것이었다. 

영화별로 예매를 진행하다보니 어느 요일에 관객일 몰릴지도 영화제 측에서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새로웠다. 유료 전환이 단순히 수익 측면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점에서! 프로그래머는 나와 친구가 영화제에 간 첫날인 4일 영화 예매율이 가장 높다고 했는데,  4~6일을 참석해보니 역시 4일이 관객들이 가장 많았다.

 

무주산골영화제는 4일부터 6일까지. 3일을 연달아 갔다. 30대의 체력을 무시한 과한,,, 스케줄이었다는 건 6일 밤에 집에 돌아와 깨달았다..ㅎ

 

1.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은 첫날, 처음 본 영화는 에리크 크라벨 감독의 <풀타임>이다. 국내에선 내년 개봉 예정이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영화제를 찾은 관객 모두에게 나눠주는 이 프로그램북이 매우 알찼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숨가쁘다. 파리 근교에서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엄마 쥘리가 철도 파업이 한창인 시기에 파리 시내에 있는 일터로 나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새벽 여명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시간대에 알람 소리 한번에 눈을 뜬 주인공은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웃집에 가 애들을 맡긴 후에 바로 미친듯이 기차를 타러 달려간다. 영화가 시작된 지 10분도 안되는 순간에도 쥘리의 고단함이 느껴지는데 사실 파리에 기차를 타고 무사히 갈 수 있는 영화 초반부가 쥘리에게는 그나마도 평온한 시절. 

 

파업으로 파리 시내와 근교를 오가는 열차들이 다 끊기고, 대안을 마련할 수 없어 발을 동동거리는 쥘리의 모습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벅찰진대, 아이 둘을 케어해야 하는 엄마인 그녀에겐 너무 버겁기만 한 상황. 게다가 쥘리는 호텔 청소일을 하고 있는데 출산 전 하던 직무로 직장을 바꾸기 위해 없는 시간조차 쪼개 면접을 보러 다닌다. 

 

하지만 쥘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파업으로 지각을 일삼는 쥘리가 업무 시간에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다니자 그녀를 해고하려는 직장 상사, 약속된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지 않자 더이상 애들을 봐줄 수 없다고 선언하는 이웃집 할머니, 양육비를 보내지 않으면서 전화를 피하는 전 남편, 대출금 상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독촉전화를 거는 은행,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이 모든 악재들 속에서도 쥘리는 아들의 생일선물을 준비하고, 파티를 열고, 원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다니며 애를 쓴다. 

 

영화가 끝나고는 정희진 작가와 김혜리 기자의 GV가 한시간 이어졌다. 두분 다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이번 영화제에서 참여한 GV 중에서 가장 좋았다 흑흑ㅠㅠ 특히 정희진 작가님은 한창 한겨레 토요판에 칼럼 연재하실 때 글에 반해서 책도 사서 읽고 했는데, 말씀하시는 건 처음 봤다. 생각보다 훨씬 유쾌한 성격인데, 그 유머러스함마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향하고 있어서 내공이 느껴졌다. 혜리기자님의 글쓰기가 우주최강이라고 칭찬하시는데, 옆에 계신 혜리기자님 무척 쑥스러워하심ㅋㅋㅋㅋㅋㅋㅋ

 

정희진 작가는 <풀타임>을 여성영화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의견을 내셨다. 이건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현 시대 노동자의 영화에 가깝다는 게 작가님의 생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간 이동이 매우 손쉬워진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를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졌다는 뜻이기 때문. 

게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의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이건 세대차이가 아니라 각 세대가 겪는 자본주의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지금 겪는 자본주의와, 내 윗세대가 겪었던 자본주의, 그리고 미래 세대가 겪을 자본주의가 다르다보니 이게 겉보기에는 세대차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상 자본주의가 안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쥘리가 여러 고난에도 자기 연민이나 슬픔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거다. 쥘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마지막 장면 제외) 잔고가 없어 딸의 저금통에서 돈을 빼낸 다음 화장을 하면서 눈물을 훔치는 부분이 유일했다.  

 

아, 영화 외적인 문제지만 영화 상영 10분만에 송출의 문제로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봤다. "필름클럽 사연 단골소재인 영화 송출 사고를 드디어 나도 겪는가???!!!"라는 생각에 마스크 안에서 입꼬리를 올렸지만... 영화 자체가 관객에도 쉽지 않다보니 또 숨가쁘게 영화를 다시 봐야 해 힘들긴 했다.. 

 

어탕수제비

영화를 보고 한시간 가까이 GV를 듣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 영화제가 열린 곳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무주어죽'에서 어탕수제비를 먹었다. 어죽국수를 먹을까도 고민했지만, 옥천에서 한번 맛을 봤기 때문에 이번엔 수제비를 골랐다. 2명이서 중(中)자를 먹었는데 배부르게 잘 먹었다. 반찬도 맛있었음. 

 

다시 영화제로
등나무운동장

저녁을 먹고 와서는 등나무운동장으로 향했다. 등나무운동장에는 이번 영화제에 참여한 여러 브랜드들의 스토어가 있었는데 맙소사.. 운영시간이 저녁 6시까지인 걸 전혀 모르고 뒤늦게 들어왔다. 쓰던 헌 칫솔을 가져가면 새 칫솔로 바꿔주는 행사를 하는 곳이 있어서 칫솔까지 챙겨갔는데 ㅠㅠ 

 

4일 등나무운동장에선 10cm의 공연이 있었다. 역시 이런 페스티벌에 강한 솨람.... 나도 참 옛날 사람이라 느낀 게 최신 노래는 잘 모르다가 공연 뒷부분에 불러준 '아메리카노', '사랑은 은하수다방에서' 에 몹시 흥이 났다 ㅎㅎ

 

이어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키드>와 선우정아의 콜라보. 영화에 맞춰 선우정아가 노래를 부르는데 영화와 노래가 너무 근사하게 잘 어울렸다. 영화는 기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봐도 재밌게 느껴질 만큼 재밌었다. 찰리 채플린,, 당신 정말 천재...

 

아쉬운 점이라면 등나무운동장은 영화 보기에 그렇게 최적의 장소는 아니라는 점. 기본적으로 돗자리 깔아두고 먹고 마시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란스럽고, 입장권도 인원 제한 없이 팔아서 사람수 자체도 무척 많았다.. 그래도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인 6월 초에 선선한 공기를 맡으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예, 이것이 무주산골영화제의 꽃 '덕유산대집회장'

무주는 동네가 굉장히 작다. 그렇다보니 영화제 장소 부근의 숙소 자체도 별로 없거니와 그마저도 발빠르게 사람들이 예약을 했다. 그래서 매일을 무주-세종을 오갈까도 고민했는데, 그렇게되면 덕유산대집회장에서 영화를 볼 시간이 안난다는 게 아쉬웠다. 

차선으로 택한 게 무주 구천동의 펜션의 숙소. <키드>를 본 후에 숙소로 이동해 - 숙소 가는 길 정말 어두컴컴합니다.. 무서워- 잠시 쉬었다가 대집회장으로 갔다.

대집회장까지 차를 가져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집회장까지 가는 도로에 차를 진입하려면 덕유산 캠핑장 예약자여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다행히 셔틀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카>

우리가 영화제에 있었던 삼일동안 대집회장에서 틀어준 영화는 대부분 이미 봤던 것.(<노마드랜드> 하나 안봤다) 그 중에 끌리는 영화들이 마침 4일에 상영해서 타이밍이 좋았다. 대집회장에 도착하고 보니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 상영이 한창이었다. 사진 속 장면은 드마카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씬. 

 

밤의 덕유산대집회장은 역시 무척이나 추웠다. 블로그에서 일교차가 엄청나다는 후기를 봤었기에 담요며 핫팩이며 챙겨갔는데, 베개와 이불을 챙겨와 누워 보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부러웠다..흑... 베개 필수품인듯. 

 

<듄>까지 보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피곤해서 드마카가 끝날 때쯤 대집회장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보고 나올 때도 셔틀버스를 타고 차를 대둔 주차장으로 갔다. 후기 말미에도 적겠지만 무주산골영화제는 전반적인 행사 운영, 스탭분들의 친절도와 노련함이 정말 최고였다. 다소 번잡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 덕유산대집회장 셔틀버스 안내도 정말 매끄러웠다(최고최고bb)

1.

'완벽한 타인은 없다'라는 포스터 문구가 이 영화에 정말 잘 들어맞는다.

 

2.

에드워드 양 감독 <공포분자>를 봤다. 영화관에서 최근 재개봉한 영화인데, 무려 86년에 나온 작품이다. 하지만 돌고 도는 트렌드 덕분에 배우들이 하고 나오는 헤어스타일이나 착장 모두가 지금 우리의 눈에선 다 세련돼 보인다. 스마트폰 대신 커다란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장면에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바로 알아챌 수는 있지만.

 

3. 

에드워드 양, 양덕창 감독이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작품은 이번에 처음 봤다. 알고 있는 작품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타이페이 스토리>뿐이었지 <공포분자>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그런데 앞의 두 작품을 보기 전에 <공포분자>로 에드워드 양 감독을 접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으로 봤으면(고령가는 러닝타임 무려 4시간)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겠지.

 

4. 

도시에 사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들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엮이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초반부에만 해도 인물들은 접점없이 -창은 도박장에서 뛰어내리는 왕안의 사진을 찍는 건 영화 초반부이기는 하다-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거나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하는 등의 모습만이 나열된다. 하지만 한 통화의 장난 전화로 "완벽한 타인은 없게" 된다. 

 

5. 

마지막 장면을 두고는 같이 본 친구와 이런 저런 해석을 했다. 실제로도 영화 결말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오가는 듯. 

 

봐야 할 영화 목록이 있다면 항상 상위권을 차지했을 '패왕별희(1993)'를 감독판 재개봉에 맞춰 드디어 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에 개봉한 오래된 영화지만, 1993년 4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걸맞게 지금 봐도 영화가 주는 울림의 깊이는 여전했다. 

 

영화 '패왕별희'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 청데이가 연기한 우희의 모습. 

영화는 어느 빈 체육관(?)에 청데이(장국영)'와 단샬루(장풍의)가 경극 '패왕별희'를 연습하겠다며 들어서며 시작된다. 이곳의 관리를 맡고 있는 한 인물은 경극 분장을 한 청데이와 단샬루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극을 본 지도 정말 오래됐다는 말을 던진다. 이내 그는 무대 연습을 하려는 그들을 위해 조명을 켜주겠다며 자리를 뜨고, 이제 청데이와 단샬루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청데이(아명 두지)는 매춘부인 엄마가 베이징의 한 경극단에 자신을 맡기면서 경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청데이는 육손으로, 경극단의 사부는 처음 그의 외관을 보고는 무대에 서기엔 좋지 않다며 청데이의 입단을 거절한다. 하지만 아이를 매춘부 소굴에서 키울 수 없다는 엄마의 광기 어린 집념은 청데이의 여섯번째 손가락을 칼로 도려냈고, 그렇게 청데이는 경극단의 일원이 된다. 청데이 또래의 경극단원들은 청데이를 매춘부의 자식이라며 손가락질 하는데, 이때 그의 편을 든든히 지켜주는 이가 바로 단샬루(아명 시투)다. *아명(儿名): 중국에선 자녀가 어릴 때 호적상의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는데, 이를 '아명'이라 한다. 

 

경극단이 많아봤자 15살도 되지 않았을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다. 청데이 역시 이러한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억지로 다리를 찢고, 대사를 잘 외워도, 잘 외우지 못해도 손바닥을 맞고,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곧이어 온몸에 불이 나도록 맞는 지옥. 더군다나 청데이는 경극 배우라는 꿈을 자신이 정한 것이 아니다. 핏덩이같은 자식을 맡길 만한 곳으로 그의 어머니 눈에 든 곳이 경극단일 뿐이었다. 

 

그런 청데이가 경극 배우를 자신의 꿈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경극단에서 도망칠 목적으로 뛰쳐나와 본 경극 무대였다. 무대 뒤에서 겪는 참혹한 연습에도 불구하고 분명 무대 위에선 경극 배우의 목소리, 손짓 하나하나에 관중이 환호를 하니까. 이때 청데이와 함께 경극단을 뛰쳐나온 한 아이가 "저렇게 되려고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청데이는 그에 한발 더 나아가 고통의 연속인 연습을 끝내고 무대 위에 선 배우의 자리에 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으로 느껴졌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다시 경극단으로 돌아온 청데이에겐 하나 더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있었다. '패왕별희'에서 우희역을 맡은 그는 '나는 원래 계집으로 태어나서 사내도 아닌데'라는 대사를 좀처럼 외우지 못했다. 다른 대사는 막힘없이 술술 외워되던 데이가가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맞아도 이 대사만은 쉽사리 입에서 내뱉지 못했다. '본래 사내'로 태어난 그가 '우희'라는 경극 속 인물에 완전히 빠져들기까지의 마지막 관문이 아닐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관문은 경극단을 후원해주는 '장 내관'의 측근이 오는 날, 샬루의 도음으로 뛰어넘는다. 후원 여부를 고심해보겠다는 장내관 측근은 데이를 콕 집어 경극의 일부를 선보이게 했는데, 단샬루는 데이가 실수를 반복하면 정말 죽음에 이를 정도로 체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해 일부러 나서서 데이의 입에 담뱃대를 넣어 체벌을 가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는 틀리지 않고 경극 '패왕별희'의 대사를 왼다.

 

연습대로 장 내관 앞에서 훌륭하게 연기를 펼쳐 보인 청데이와 단샬루. 항우 역을 해낸 샬루에게는 촉망받는 경극 배우로서의 길이 활짝 열렸지만, 데이에게는 기쁨과 동시에 고통이 찾아왔다. 장 내관이 데이를 따로 불러내 그를 유린한 것. 경극단의 사부는 후원을 받기 위해 데이의 고통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장성한 데이와 샬루는 관중들의 환호와 기대를 받으면서 무대 위에 서는 경극 배우가 된다. 항우와 우희를 연기하는 둘은 서로를 신뢰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이 살던 시대는 20세기의 중국. 일본의 침략과 국공내전, 국민당에 이어 공산당, 또 문화대혁명까지 민중을 상대로 하는 경극 배우들이 시대에 비껴 나홀로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들도 자신의 모습을 바꾸거나 혹은 바꾸도록 요구받는다. 

 

데이와 샬루가 경극 배우로서 당당히 자리잡기까지의 과정도 영화적으로 꽤나 수많은 고난을 겪는데, 성인이 된 그들이 겪을 시련은 그보다 더하다. 이 영화는 20세기 중국의 현대사의 굴곡마다 구석으로 내몰리는 두 주인공, 그리고 샬루의 아내인 주샨(공리)을 처절하게 비춘다.

 

청데이의 어린 시절, '두지'라 불리던 그때. 아역배우의 연기도 무척이나 놀라웠다. 

이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콘텍스트가 무척 다양하다고 느꼈다. 

 

1. 시대상

수많은 사회변동에 휩쓸려가는 중국인 개인의 관점에서 봐도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 '마지막 황제'가 떠오른 이유도 청나라 말기(패왕별희에선 청나라는 이미 멸망한 국가로 나오지만)부터 시작해 일제시대, 국공내전, 공산당 집권까지의 엄청난시대의 굴곡에 개인은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이 비슷해서였다. '마지막 황제'에서는 무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주인공이었고, '패왕별희'에서는 시대를 호령했던 경극배우가 주인공이었음에도 시대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더 섬찟하기도 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자신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일반 민중들이 어떤 면에선 시대와 조응하기가 더 쉬웠을까 싶기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2. 예술 

관중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가는 결국 시대가 원하는 류의 예술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 처음 경극배우로 무대에 섰을 때와 달리 새로운 시대의 관중들은 점점 경극을 찾지 않게 되는데 관중이 외면하는 예술이란 전통으로서의 의미 외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온갖 체벌을 참아가며 경극이라는 문화예술에 자신의 생을 바친 데이가 시대의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경극의 의미를 무시하는 이들과 마주할 때 겪는 표정들에 마음이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예술은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가. 전통으로서의 명맥으로만 간신히 유지되는 그정도의 존재감만 가진 채? 

 

3. 희생 

데이와 샬루, 주샨 가운데 상대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버려가며 희생을 해 본 이는 '데이'와 '주샨'이다. 다시 말해 샬루는 사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인물. 물론, 극중 어린시절 데이를 위해 체벌을 자처해 받는 에피소드는 나오긴 하지만 상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 위험이 있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데이는 처음 본격적으로 경극 무대에 섰을 때부터(장 내관의 앞에서) 샬루를 위한 희생을 감내했다. (관점에 따라 자신의 꿈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을 거 같긴 하다.) 장 내관의 강간, 원 대인과의 관계, 일본군 앞에서의 경극 공연 등. 이 모든 일들은 일회성에 그치고 마는 행동이 아니라 남은 생 전반을 방향을 좌지우지하고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행동들이었다. 

주샨도 마찬가지. 주샨은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샬루를 위해 샬루가 경극배우로서 가진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니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안전한 일상을 그가 꾸려갈 수 있도록 적극 나선다. 연적으로서 다투던 데이를 마침내 품고 돌보게 되는 장면마저도 그 배경엔 데이가 샬루를 위해 감내했던 희생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얌체같은 샬루는? 데이와 처음 패왕별희 무대를 한 후 데이가 장 내관의 부름을 받고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데이가 일본군 앞에서 그토록 소중히 하는 경극 공연을 펼친 게 누구를 위해서였는지, 자신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부부의 관계에서 주샨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했는지 등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불균형한 셋의 관계는 문혁 때 비로소 외면적으로 폭발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데이의 행적을 고발하고 자신의 아내 주샨마저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부짖는 샬루. 이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주샨을 연기한 공리의 표정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화만루에서의 주샨. 공리의 젊은 모습을 영화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영화 속 좋았던 장면 

- 아기(?) 두지와 그의 엄마가 경극단원들의 공연을 보면서 얼굴을 맞대는 장면. 두지 엄마 역할의 배우의 얼굴이 너무 천연해서 슬펐다. 

- 두지, 시투와 같이 경극단원이던 한 소년이 경극단의 혹독한 체벌에 끝내 목을 매 달고 죽은 장면. 경극단의 훈련 방식이 두지와 시투를 희대의 우희와 항우로 만들었지만 그 뒤엔 이런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 두지가 입에 피를 가득 머금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면. 

- 샬루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 앞에서 경극 공연을 펼친 데이가 일본군 앞에서 경극을 했다는 이유로 샬루로부터 비난을 받고 돌아서는데,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끌고 와 총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장면. 같은 중국인이지만 처지에 따라 샬루는 일본인 앞에서 공연을 해 친구를 구해냈지만 누군가는 밤에 죽음을 당한다. 

- 아편을 끊기 위해 애쓰던 데이를 주샨이 이불을 덮으며 끌어안는 장면. 극 내내 반목하던 주샨과 데이의 관계가 전환의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 

- 홍위병의 추궁에 '매춘부인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뱉은 샬루를 보며 주샨이 세상의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 주샨이 너무 애처롭게 느껴졌고, 화만루를 떠날 때 그녀가 들은 한 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주샨, 샬루, 데이 

+) 

여담이지만 샤오로우를 '샬루', 디예를 '디예'로 표기한 자막이 거슬렸다. 중국어 표기법 어떻게 해야 한국인들한테 안 어색하냐구요ㅜㅜ 

 

 

 

오랜만에 히치콕 감독 영화보기. 히치콕 감독은 영화를 수십편 찍었는데 그 가운데서 한국 자막이 달려 볼 수 있는 영화라면 최소 중박 이상은 친다.  금같은 주말, 영화 선택도 신중해지는데 히치콕 영화라면 시간 날릴 위험 부담은 던다. 

1. <오명>

첩보물인척하는 로맨스 영화. 

나치 첩자인 아버지를 둔 앨리시아 후버만과 미국 정보요원인 데블린이 임무 수행을 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영화..라고 설명하면 되게 뻔한 영화인 것 같지만 '첩보물' 성격이 짙기 때문에 쫄깃쫄깃하게 볼 수 있다. 특히 금발 머리 여주인공과 진하게 생긴 남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앞세우는 특유의 히치콕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후버만이 미국에서 임무 명령을 받기 전, 데블린과 호텔 룸에 들어가 나누는 키스신은 정말 기가막힘.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버만은 데블린에게 키스를 '퍼붓는'데 데블린이 전화를 받는 중에도, 문을 나서기 전에도 계속 품에 안겨서 얼굴을 부비는데 노출 하나 없이 굉장히 끈적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또다른 베스트씬은 아무래도 마지막 계단씬. 데블린과 세바스찬, 그리고 세바스찬 어머니의 오고가는 대화가 주는 긴장감이 엄청났다. 특히 마지막에 데블린이 세바스찬을 차에 태우지 않고 떠나는 장면은 세바스찬 일당이 영화가 나온 시기 미국의 분명한 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속임을 당하는 세바스찬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인데 나치 일당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관객의 감정은 세바스찬에 완전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 (극중에서 세바스찬 일당이 보여주는 악행이 전혀 없음에도) 


2. <레베카>

소설이 원작이고 히치콕이 이 소설을 두고 영화로 각색한 것. 뮤지컬로도 유명하다고. 

여주인공이 맨들리 저택에 입성해 주눅들고 전 주인인 '레베카'에 묘한 열등감을 느끼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런데 영화 비하인드를 읽어보니, 여주 역에 비비안리를 추천한 로렌스 올리비에(맥심)가 자신의 추천과 달리 조안 포테인이 낙점되자 촬영장에서 엄청 쌀쌀맞게 굴고.. 이걸 지켜본 히치콕은 이런 상황이 여주의 캐릭터 설정에 더 부합하는 것 같아 제작진에게도 조안 포테인에게 쌀쌀맞게 굴어라고 지시했단다. ㅋㅋㅋㅋㅋ(미쳣나 히치콕..)

그리고 문제의 '댄버스 부인'.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맨들리 저택과 레베카에 대한 미스테리함을 더한다.  

레베카가 영화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아도 그 어떤 캐릭터보다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이 (특히 해변가에 위치한 집에서 맥심이 자레베카와의 사고를 털어놓는 장면에선 레베카가 실제로 등장한 느낌을 줄 정도)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치켜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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