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부터 5월2일까지, 2박3일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작년에 무주산골영화제 경험이 무척 좋아서 부국제에 이어 국내 영화제 가운데 규모 2위라는 전주국제영화제도 궁금했다. 

 

티케팅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부국제랑 달리 JIFF는 널럴 하다더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영화 선정부터 난관에 부닥쳤는데 낯설디 낯선 영화 가운데 뭐가 괜찮은지 알아볼 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펴보려면 해외 평단의 평가부터 봐야한다지만 너무 구찮은 게 아닌가? 제발 나 좀 떠먹여줘...흑... 

 

겨우 겨우 티케팅 며칠 전에 상영작을 좀 살펴보고, 같이 갈 친구랑 우선순위 몇개를 정했다. 

 

그러나

당초 예정된 티켓오픈 시간 직전에 갑자기 서버 불안정해서 오픈시간 연기된다는 공지가 나와서 대혼란. 마감 때문에 맘 졸였던 난 오히려좋아..상황이었지만 ^_ㅠ 영화제 티켓 예매 매번 왜이러나 싶다. 

미뤄진 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도 난 서버 터짐.. 예매창에 아예 접속이 안돼 멘붕이었는데 다행히 친구는 서버 접속이 되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 거의 다 예매 성공함. 

 

1. 

4월30일 일요일

 

오전 10시 샤센카 예매했지만 전주에 10시에 도착하려면 언제 출발해야 할 지 두려웠다. 전날 울산 장거리 운전도 이미 한터라 기운이 조금도 없었다. 친구랑 고민고민하다 여유있게 보자고 했다. 샤센카는 취소하고 오후 늦게 영화를 보기로 함. 

 

시릴 루티 <고다르 시네마>, 아녜스 바르다 <1967-뉴욕의 파솔리니>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고 단순하게 영화 2개니까 하나는 실패해도 하나 집중해서 보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1967~>은 5분짜리였다. ㅎ..

 

<1967~>은 바르다 감독이 뉴욕에서 만난 다른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얼굴과 뉴욕의 거리를 비추며 나눈 대화로만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단편은 존재조차 몰랐다가 최근에서야 발견됐다고 한다. 시대 배경을 모르니 주고받는 티키타카 대부분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기억에 남는 부분도 있었다. 

 

- 뉴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가난

 

<고다르 시네마>는 아주 영화를 얕게 아는 나조차도 익숙한 감독 '장 뤽 고다르'에 관한 전기영화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의 영화를 거의 본 게 없어서 이 전기영화는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사회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영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68년 2월혁명 이후 고다르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고다르는 국가에, 체제에 반기를 드는 영화도 그 어디까지나 권력이 허용해낼 수 있는 선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2. 

5월1일 월요일

 

하루를 통 영화제에서 보내는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숙소를 나섰다. 

 

롤라 키보론 <로데오>

 

여성, 모터사이클, 아웃사이더.. 

 

이런 키워드를 읽고는 영화 <와일드>를 생각했다.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하는 여성이 남성 라이더 사이에서 겪는 분투..? 이 예상은 영화 첫장면부터 바로 깨진다. 첫장면의 카메라가 정말 예술이다. 이 영화 전체가 어떤 리듬으로 흘러갈지 보여주는 장면과도 같달까.. 주인공 줄리아가 모터사이클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는 게 아니라 모터사이클 그 자체에 열광하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줄리아 역을 맡은 배우는 피부와 머리카락, 체구 등 모든 게 이 역할에 찰떡이었다. 같이 본 친구는 영화 <티탄>의 순한맛 같다고 평했다. 

 

JIFF 홈페이지에 영화 소개와 함께 짤막한 리뷰가 들어가는데 <로데오> 리뷰의 첫문장이 진짜 너무 구리다. '길들여지지 않는 여성은 늘 매력적이다. ...' 라뇨.. 이런 영화에.. 이런 영화가 말하는 지점에서 몇단계나 후퇴한 문장인가.

 

 

데보라 스트라트맨 <마지막 것들> + 감독님 GV

 

순전히 친구의 픽. 친구의 취향과 안목을 믿는 편이라 예매한 영화 다 좋았는데 이것만은 '이게 뭐야?' 했다. "이 영화 암석만 계속 나오는 거 아녀?(농담)" 했는데 진짜로 그러하였다! 이렇게만 말하면 뭔 영화인가 싶지만 이 영화는 인류가 중심이지 않은 지구를 그린다. prehistoric + prehistoric + prehistoric 몇억년 전 암석을 시작해 다양한 존재의 진화를 다룬다. 눈이 감기는 순간이 많았으나 (감독피셜) 에얼리언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음악들이 겨우 눈을 뜨게 해줬다. 영화 전반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영화가 끝난 후 바로 감독님과의 GV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여러분은 50분 동안 수십억년(?)을 체험하신 겁니다~~'라고 말한 모더레이트의 말 한마디로 이 영화의 의미가 살아난 느낌. 

 

조한나 <퀸의 뜨개질>

 

한국 단편 영화 4개를 묶어서 상영했는데 그 중 하나였다. 이 단편선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뜨개를 다룬 영화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뜨개에 푹 빠져 살고 있다보니 JIFF 상영작을 살펴보다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는 한참을 웃고 친구에게 보자고 했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코바늘 끝판왕 '만다라 매드니스'를 만드는 니터의 수행기(?) 같은 건가 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봤는데 웬걸. 이 영화 너무 좋았다. 

 

주인공은 바로 감독 '한나'. 할머니에게 어릴 적 코바늘을 물려 받은 이후 15년 넘게 니터로 살아온다. '뜨개=여성의 취미'라는 인식에 반기를 드는 감독은 뜨개에 씌워진 편견 만큼 여성에게, 한나 자신에게 씌워진 편견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반문한다. "뜨개는 여성 고유의 취미인가"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그리고 "사람은 이성만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만다라 매드니스'를 만드는 과정과 교차한다. 만다라 매드니스는 코바늘로 만드는 담요의 한 종류다. 

 

갑자기 딴 길로 새서 만다라 매드니스 이야기를 하자면 

https://itsallinanutshell.com/2016/07/14/mandala-madness-crochet-video-tutorials-yardage-color-list/

 

Mandala Madness – all video tutorials, colors list and yardage

Mandala madness crochet along designed by Helen Shrimpton is completed. In a long journey over 18 weeks that took us through a few bumpy bits and sharp turns we all came out reasonably unscathed th…

itsallinanutshell.com

위 링크에 만다라 매드니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만다라 매드니스는 Helen Shrimpton 작가가 만든 것으로 완성하는 데 18주가 걸린다고 소개한다. (영화 속 한나는 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원래 '하루만에 다 뜨는 OO'라는 말로 현혹하는 뜨개 도안을 실제로 떠보면 그의 곱절이 걸린다) 링크에서 만다라 매드니스를 소개한 니터도 완성하는 데 180일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코바늘 편물을 선호하지 않아서 대바늘을 주로 잡는데 코바늘을 했다면 위시리스트에 'Mandala Madness'를 넣었을 거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보면

 

한나는 자신과 똑 닮은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만다라 맨드니스를 완성해가며 과거에 있던 일들을 홈비디오 영상을 통해 풀어내기도, 뜨개 인형으로 1인인형극을 하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질문은 가볍지 않은데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치있다. 모두가 그럴테지만 압권은 영화 막바지의 노래다. 노래 너무 중독적인데 유툽으로 올려주면 안되나ㅠㅋㅋ 다른 니터의 뜨개를 보고 싶어 봤던 영화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더 큰 걸 받고 돌아왔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한나 감독님

영화 끝나고 감독 및 출연배우와의 GV도 있었다. 

 

왜 본인의 이야기를 첫 영화에 풀어냈냐는 관객석의 질문에,

한나 감독이 '내 이야기를 먼저 풀어야 타인의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라고 한 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다음 작품이 정말 기대된다. 

 

<퀸의 뜨개질>은 한국 단편에서 대상도 받았다! 내가 영화볼때도 다른 단편들 중에 독보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싶었는데 역시는 역시. 대상받은 작품을 보고와서 뿌듯했다. 

 

3. 

5월2일 화요일

 

전날 영화 강행군 + 전주 여행으로 녹초가 됐다. 

 

 

우무트 수바셰 <가벼운 재앙>

 

4명의 젊은 남녀가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첫 부분부터 4명의 주인공들이 깨발랄한 음악에 울부짖는 장면이 차례로 나온다. 이 청춘들은 각자가 처한 '가벼운 재앙'에 억눌려있다. 취업이 안되거나, 돈이 없거나, 친구가 없거나... 누군가는 젊었을 때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겐 그 무게가 어찌 가볍기만 할까. 이 영화 역시 음악이 좋았고, 굉장히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 후 이어진 GV에서 감독님 답변 스타일을 보니 왜 영화가 '은근히 웃긴지 알 거 같았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감독님, 세번째가 프로듀서

 

 

 

마지막 영화는 미하일 보로딘의 <불편한 편의점>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온전히 집중해서 봤다. 그만큼 좋았다. 초반부부터 감정적으로 휘몰아치게 만드는 영화인데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늘 무표정한 상태의 주인공이 웬만해선 감정을 쏟아내는 법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동명의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여서 제목이 익숙한 인상을 주는데 사실 원제는 <편의점(convenience store)>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편의점에서 고용된 외국인들이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하고 고용주에게 학대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말은 편의점이지만 우리나라 편의점과는 완전히 달라보였고 24시간 운영되는 작은 마트에 가까웠다.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라 그런지 올초 읽었던 <깻잎투쟁기>도 생각이 났다. 자국에서 일거리가 없어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한다는 것부터가 약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말 먹고 살기 위해 끝없이 평생을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일생이 참으로 고단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엄마가 갑자기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주인공이 그 절단한 다리를 돌아가신 아빠 무덤에 묻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조차도 인부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 사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았다.  

 

4. 

전주에서 먹고 보고 간 곳들 

https://map.naver.com/v5/search/%EB%AA%A9%EB%A1%9C%EA%B5%AD%EB%B0%A5/place/1477802979?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중화산동 목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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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끼는 '목로국밥'의 한우시래기탕.

가격이 꽤 있었으나 맛이 깔끔하고 고기가 실했다. 백김치를 사이드 반찬으로 추가해서 먹었다. 

원산지=목로국밥 주인장 엄마

 

영화 강행군이었던 둘째날 영화거리에서 간단하게 먹을 음식점을 찾았다. 

https://map.naver.com/v5/search/%ED%98%95%EC%A0%9C%EB%A9%B4%EC%86%8C/place/1749922884?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형제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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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면소'라는 식당으로 영화제 기념 할인도 됐다. 대만식 마제소바를 시켰다. 맛있었음. 

 

구워먹는 닭갈비집 '계륵사지'

https://map.naver.com/v5/entry/place/1955529528?c=15,0,0,0,dh&isCorrectAnswer=true

 

네이버 지도

계륵사지 삼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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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와 익산에 지점이 여러곳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에는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차타고 좀 가야 했다. 다 구워줘서 너무 편했다. 기본 반찬으로 계란찜과 묵사발이 나오는 것도 좋앗당. 

 

 

마지막날 식사는 전주한옥마을 숙소 바로 근처에 있던 '강촌떡갈비'

https://map.naver.com/v5/search/%EA%B0%95%EC%B4%8C%EB%96%A1%EA%B0%88%EB%B9%84/place/16808444?c=12,0,0,0,dh&placePath=%3Fentry%253Dbmp

 

네이버 지도

강촌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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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에 가고 싶었지만 재료 소진으로 마감시간도 전에 문을 닫았다ㅠ 

게하 사장님도 추천했을 정도로 이미 소문난 맛집. 네이버 평 등을 보면 친절도에서 평이 안좋던데 맛만 좋으면 됐다 주의라서 매우 만족했다. '떡낙정식'(2인 이상)이라고 해서 떡갈비+낙지볶음+파전을 1인분에 1만5000원에 파는데 진짜 배부르게 먹었다. 

 

강촌떡갈비 떡낙정식을 시키면 나오는 낙지볶음
떡갈비

 

강촌떡갈비 바로 옆에는 '살림책방'이라는 동네책방이 있다. 

https://map.naver.com/v5/search/%EC%82%B4%EB%A6%BC%EC%B1%85%EB%B0%A9/place/103394150?c=15,0,0,0,dh&placePath=%3Fentry%253Dbmp

 

네이버 지도

살림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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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바로 이 근처라 일요일부터 노리다가 화요일 오전에야 갈 짬이 나서 인스타를 봤더니 매주 화요일이 휴무일이었다. OMG... 나 책에 과소비하는 거 젤 조아하는 친구가 엄청 아쉬워했다. 나도 당연히 아쉬웠음. 떡갈비 먹고 나오면서 "아 살림책방 오늘왜 휴무야!?!!" 하고 냅다 소리지르면서 책방앞을 지나쳤는데 책방이 열려 있었다. 머쓱하게 들어가서는 책과 문구류를 구경했다. 영화제 기간이어서 휴무일이지만 여셨다고. 

 

살림책방 강아지

살림책방에 강아지가 있는데 정말 얌전하다. 귀엽고 우아해. 강아지 무서워하는 나지만 가만히 앉아있길래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완산공원
완산공원
완산공원의 삼나무숲
영화의거리를 3일 내내 누볐다
경기전과 정동성당도 갔다
꿀밤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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