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무주산골영화제 마지막날!

고백하자면 전날 집에 돌아와 다음날 무주에 다시 갈 것인지 고민을 꽤나 진지하게, 길게 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영화제 후기에 피곤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적는다, 나참)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시 돌아오는 길, 또 그다음날 출근 가능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가기로 결심.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단편을 여러 개 묶어 상영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 그렇게 긴 고민 끝에 다시 아침 일찍부터 무주로 향했다!

1.

캘러미티 제인
캘러미티 제인

마지막날 첫번째 영화는

<캘러미티 제인>이라는 애니메이션.
미국 개척시대,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조차 사회통념상 허락되지 않은 시절 남성과 어깨를 견주며 서부 개척에 힘을 쏟는 실존인물 '캘러미티 제인'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작화가 멋있고 무엇보다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성장기 답게 크고작은 고난을 주인공이 거뜬히 넘어가기 때문에 답답함 없이 볼 수 있다. 캘러미티 제인이란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영화 감상 후 검색하다 처음 알았다; ㅎ 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이미 꽤 많더라.

+) 캘러미티 제인을 보기전,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현장예매를 위해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 손녀와 함께 영화제에 온 할머니 한분 계셨다. 무주군민이신 듯한데 동네에서 시끌벅적한 영화제를 하니 손녀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줄 마음으로 오셨는데, 영화가 워낙 낯설다보니 직원에게 추천을 받고 싶어 줄을 서신 것인데.. 이런 예매창구에서 영화 추천을 과연 해줄까? 반신반의했는데, 담당 직원분이 너무나 친절하게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영화(-> 캘러미티 제인이었음)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걸 보고 괜히 갬덩이었음...

2.

캘러미티 제인을 보고 점심먹으러 가는 길. 비가 그친 후 날씨가 무척 좋았다.
콩국수와
모두부
유정언닌 들깨순두부찌개

점심은 영화제가 열리는 곳과 엄청 가까이 있는 식당 '콩수레두부'에서 먹었다.
첫날부터 오고 싶었던 곳인데 줄이 줄이,,, 너무 길어서 이내 포기했는데 마지막날에는 다행히 별로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식당 안쪽까지 자리가 꽤 있었다. 밀린 주문들이 좀 많아 기다리다가 맛있게 먹었다. 모두부 엄청 맛있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찍음
왕크니까 왕멋있다
전여빈 배우 향수
오오~ 나도 이 브랜드꺼 쓰는뎅~

점심을 먹고 나서 다음 영화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주말에 둘러보지 못한 전시공간을 둘러봤다. 이번 영화제 넥스트배우로 선정된 인물이 전여빈 배우여서 지금까지의 필모와 사진들, 촬영현장에서 쓰는 소품, 의상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었다. 전여빈 배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멜로가 체질?이 나에겐 대표작인데. 상견니 한국판에도 황위쉬안(이자 천윈로)로 나온다고 하니 아마 이 작품도 챙겨보지 않을까.

3.

하마구치 류스케 시네마토크
하마구치 류스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하마구치 류스케 단편선 시간이 왔읍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풀타임만큼 기대됐던 영화였다. 하마구치 류스케를 그렇게 잘 아느냐?하면 그건 아니지만,, 최근 그의 작품들을 꽤 봐서 기대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원래 사람이란 단독상영, 특별상영 등에 끌리는 법이니.. 쉽게 볼 수 없는 하마구치 류스케 단편작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티케팅할 때 1순위로 했었다.

6일에 상영한 하마구치 단편선은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 <천국은 아직 멀어> 순으로 보여줬다. 한달 지났다고 제목 기억안나서 프로그램북을 다시 폈넹 ㅎ

<우연과 상상>도 단편 3개를 이어 보여주는데 이건 감독이 단편을 묶어 하나의 영화에 '우연과 상상'이라는 제목을 붙여줬지만, 이건 독립된 영화 각각을 영화제가 골라서 보여준 것이니 좀 다른 맥락이기는 하나 <우연과 상상>을 볼 때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왜냐?! <우연과 상상>도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 가장 첫 단편인 <마법>이었고, 가장 마음을 울린 건 마지막 단편 <한 번 더>였는데 이번에도 첫번째 작품이 재미로는 최고였고, 마지막이 찡했다.

가장 재밌었던 작품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캐릭터 간 긴장감이 팽팽하고, 대화도 찰져서 지루할 틈이 없다. 아 근데 단편이긴한데 58분임 ㅎ..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는 솔직히 이해 못했다. 대체 이게 머고,, 이것도 54분에 달했는데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서 보기 힘들었음. 심지어 이 영화가 끝나면 이 영화는 <홍수>로 이어진다는 자막이 뜨는데 문제는 <홍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라는 것..

<천국은 아직 멀어>는 마음을 울렸다. 우연과 상상에 나왔던 배우가 이 영화에도 나와서 재밌기도 했다.
어릴 적 살인사건으로 언니를 잃은 동생이 사건 이후 시간이 한참 흘러 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언니의 주변인물들과 접촉한다. 그 가운데 언니와 전혀 연이 없는 독신남을 찾아가는데, 알고 보니 이 독신남은 죽은 언니의 영혼과 함께 살고 있고 가끔 이 남자의 몸에 언니가 들어가기도 한다. 동생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독신남의 몸으로 들어간 죽은 언니의 혼과 대화를 나누는데, 남자의 말을 믿지 못하면서도 언니에 대한 그리움에 언니와 대화화며 울음을 겨우 참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자기 인장 뚜렷한 감독의 단편을 보게 되서 무척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류스케 관련 책도 팔았는데 그 중 한권을 샀다.(물론 아직 안읽음;)


류스케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고, 힘들고, 지쳤지만 또 언제 이렇게 3일 내내 영화를 보겠어~ 것도 양질의 영화를~ 하는 마음에 뿌듯했던 연휴였다.

+) 산골프로그래머의 마지막 편지
- 영화제 전부터 프로그래머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이 짤막한 글이 좋았는데 영화제가 끝나고도 마지막 편지라는 이름으로 적어주었다. 마지막 편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7년간 계속해 온 '프로그래머의 편지'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은 아쉽지만 다 뜻이 있겠쥬?

http://mjff.or.kr/kor/artyboard/mboard.asp?Action=view&strBoardID=FVMI_0UK8&intPage=1&intCategory=0&strSearchCategory=|s_name|s_subject|&strSearchWord=&intSeq=5770

무주산골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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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ff.or.kr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알고 있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점점 더 많은 젊은 관객들이 찾는 젊은 영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외지의 자식들이 명절이 아닌데도 영화제 기간이 되면 무주에 오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난생처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았다는 무주 군민도 생겨났다. 무주의 젊은 공무원들과 청년들은 영화제를 기다린다고 했고, 무주에 오는 젊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영화제에 오는 주민들도 많다고 했다. 영화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애정하는 주민들도 점점 많아졌다. 영화제가 개최되면 무주 읍내와 무주군의 주요 공간들은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졌고, 그들의 열기로 들썩거렸다. 재료가 떨어져 저녁 장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식당과 페스트푸드점들에 대한 소식도 들려왔다. 볼 때마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던 먹거리 부스 운영자들도 말과는 달리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무주는 정말 작은 지역이고, 작년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무주산골영화제는 가고 싶어도 가기가 엄두가 안나는 공간이었는데 이 곳에서 10년째 영화제를 이끌어온 분들이 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제 곳곳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보면, 이런 행사가 지역주민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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