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히치콕 감독 영화보기. 히치콕 감독은 영화를 수십편 찍었는데 그 가운데서 한국 자막이 달려 볼 수 있는 영화라면 최소 중박 이상은 친다.  금같은 주말, 영화 선택도 신중해지는데 히치콕 영화라면 시간 날릴 위험 부담은 던다. 

1. <오명>

첩보물인척하는 로맨스 영화. 

나치 첩자인 아버지를 둔 앨리시아 후버만과 미국 정보요원인 데블린이 임무 수행을 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영화..라고 설명하면 되게 뻔한 영화인 것 같지만 '첩보물' 성격이 짙기 때문에 쫄깃쫄깃하게 볼 수 있다. 특히 금발 머리 여주인공과 진하게 생긴 남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앞세우는 특유의 히치콕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후버만이 미국에서 임무 명령을 받기 전, 데블린과 호텔 룸에 들어가 나누는 키스신은 정말 기가막힘.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버만은 데블린에게 키스를 '퍼붓는'데 데블린이 전화를 받는 중에도, 문을 나서기 전에도 계속 품에 안겨서 얼굴을 부비는데 노출 하나 없이 굉장히 끈적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또다른 베스트씬은 아무래도 마지막 계단씬. 데블린과 세바스찬, 그리고 세바스찬 어머니의 오고가는 대화가 주는 긴장감이 엄청났다. 특히 마지막에 데블린이 세바스찬을 차에 태우지 않고 떠나는 장면은 세바스찬 일당이 영화가 나온 시기 미국의 분명한 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속임을 당하는 세바스찬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인데 나치 일당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관객의 감정은 세바스찬에 완전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 (극중에서 세바스찬 일당이 보여주는 악행이 전혀 없음에도) 


2. <레베카>

소설이 원작이고 히치콕이 이 소설을 두고 영화로 각색한 것. 뮤지컬로도 유명하다고. 

여주인공이 맨들리 저택에 입성해 주눅들고 전 주인인 '레베카'에 묘한 열등감을 느끼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런데 영화 비하인드를 읽어보니, 여주 역에 비비안리를 추천한 로렌스 올리비에(맥심)가 자신의 추천과 달리 조안 포테인이 낙점되자 촬영장에서 엄청 쌀쌀맞게 굴고.. 이걸 지켜본 히치콕은 이런 상황이 여주의 캐릭터 설정에 더 부합하는 것 같아 제작진에게도 조안 포테인에게 쌀쌀맞게 굴어라고 지시했단다. ㅋㅋㅋㅋㅋ(미쳣나 히치콕..)

그리고 문제의 '댄버스 부인'.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맨들리 저택과 레베카에 대한 미스테리함을 더한다.  

레베카가 영화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아도 그 어떤 캐릭터보다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이 (특히 해변가에 위치한 집에서 맥심이 자레베카와의 사고를 털어놓는 장면에선 레베카가 실제로 등장한 느낌을 줄 정도)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치켜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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