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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자서전영화와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전하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영화를 찍는 작가로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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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작 빼고는 영화 다 챙겨보는 감독이다보니 영화의 뒷 이야기들이 궁금해 집어든 책. 그런데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보다 다큐를 찍으면서 느낀 취재의 자세나 생각, 태도들을 적은 부분에 더 오래 머물렀다. 특히 양비론을 다룬 이야기는 나도 항상 머릿속에 넣어다녀야 할 것 같다는 다짐(?)도 하게 됐다.  

 

이것도 제주여행하면서 동네책방에서 산 책이다. 숙소 근처에 있던 무명서점이라는 책방에서 샀다. 

 

-  요컨대 우리 세대는 세상에 대한 위화감을 어쩔 수 없이 느끼고는 있지만 새로운 가치관도 불안을 해소할 방법도 찾지 못한 채 그저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 법률로 벌을 받는 것과 사회가 그들을 언젠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모순 없이 양립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에 대한 성숙한 사고방식이 정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법률밖에 없어서 법률과 모순되는 윤리관이 생겨나지 못하는 편향된 사회라면,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불균형을 조장할 뿐이지 않을까요.  

 

- 전쟁을 기억하는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비碑에는 전승 기념으로 세우는 '기념비'와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비'가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군인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는 기념시설이고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은 추모 시설입니다. 

 

-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베트남 참전 용사 추모 조형물'은 그야말로 추모비입니다. 벽 가득히 전사한 병사의 이름이 5만8000개 이상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그 압도적인 수의 이름을 보고 이만큼 많은 인생이 없어졌으며, 또 그것을 애도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시설은 아주 공적인 동시에 아주 사적이기도 합니다. 

 

- 헌법 제9조는 대담하게 말하자면 성서에서의 '원죄'가 아닐까요. 요컨대 '가해'를 망각하기 쉬운 국민성에 대한 일종의 쐐기로, 우리가 항상 죄의식을 자각하며 전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이 조항은 미국이 부여했다 할지라도 일본인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요. 

 

- 종교학자 야마오리 데쓰오씨는 책에 "일본인은 죽으면 모두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죽은 인간을 벌하지 않는 그 감각이 중국이나 한국과는 명백하게 다르다"고 썼습니다. 확실히 일본에서는 죽은 자를 채찍질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그르다고 여깁니다. '죽으면 어떤 악인이든 부처님'이라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이른바 A급 전범이라도 '영령'으로서 다른 전사자와 한데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 본디 양론 병기란 보는 사람의 사고를 그다음으로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해 그다음을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제작자가 다음 단계로 사고를 진전시키지 못하므로, 보는 살마도 마찬가지로 누구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 검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순간순간의 감정으로만 움직이니 매우 위험합니다.  

 

- 다케카와 단시의 <당신도 라쿠고가 될 수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단시 씨는 "인간은 도망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쪽이 더 많답니다"라며 도망간 쪽을 그리는 것이 라쿠고라고 명확하게 썼습니다. '원수 따윈 갚기 싫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야말로 지혜와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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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SF와 판타지, 미스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신인 작가 문목하의 놀라운 데뷔작촉망받는 신입 수사관 윤서리, 하지만 부패경찰을 도와 일하게 된 그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범죄조직을 건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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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까 제목의 의미가 와닿는다. 테드창으로 SF소설 처음 읽고, 김초엽 그다음에는 문목하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앞의 두 작가 책과 비교하면, (테드창과 김초엽 작가 SF 소설은 모두 단편집이었고) 호흡이 길고 중간에 늘어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나름 재밌었다. 영화화한다는 데 기대가 되기도, 소설 속 나오는 초능력 같은 애매한 부분은 어떻게 표현할까 괜한 우려가 되기도. 강풀 작가 만화도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 대재난 때문에 사람들이 특별히 잔인하게 변모한 건 아니었다. 그저 4만 명 넘는 유령의 무게를 감내하고 걷기엔 삶이 너무 험준한 탓이었다. 

 

- 사근사근함을 가장하길 거부하는 말투도, 상사를 대하는 것 같지 않은 오묘한 태도도 아마 신입답지 않은 명철함이 없었다면 조직에서 진즉에 사장됐을 게 뻔했다. 

 

- 권력자가 권력을 잃는 것을 바깥세상에선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비원에선 죽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 가을의 끄트머리는 저 멀리 사라져있었고 싱싱한 꽃잎은 내년을 기약한 채 모습을 감춘 뒤였다. 

 

- 그 사람한텐 선의를 믿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해야하나요. 어쩌다 받는 호의에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란 걸, 짧지 않은 삶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 비극의 원인은 두 사람이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어떤 공통된 생각 하나 때문이에요. '세상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 그것이 생존자들이 공통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최소한의 인륜이었다. 

 

- 초능력자들조차 조종하지 못하는 인간의 의지를, 당신은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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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대한민국 대표 작사가 김이나가 일상의 언어들에서 포착한 마음의 풍경매 순간 결핍과 고독감에 흔들리는 ‘보통의 우리들’을 위한 책이번 책 『보통의 언어들』은 김이나 작가가 그간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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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서 보는 짤막한 글로도 사람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데. 한 권으로 풀어낸 책을 읽고 나니 작가의 내공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ebook으로 읽었다. 

 

-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 아주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달'처럼 존재할 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단면을 보여줄 줄 안다는 말이다. 

 

- 때로 기대는 실망을 낳고, 오해나 편견이 호감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오래된 관계는 이 두 감정이 교차, 반복되다가 찾은 평균점 같은 것이 아닐까. 

 

- 생긴 대로 살아가다 거름망에 걸러지는 내 사람들은 사금처럼 귀하다. 

 

- 사랑하기에 좋은 사람은, 이 사람과 함께할 때 나의 가장 성숙하고 괜찮은 모습이 나오는 사람이다. 

 

-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 아쉬운 건 다정한 사람들은 말수가 적다는 거다. 말을 하기보다 듣는 게 익숙한 사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풀어헤치기보다는 품어 버릇하는 사람들. 이는 다정한 이들이 가진 특성이다. 

 

- 윤종신은 스스로를 '찌질한 가사의 대가'라 기꺼이 칭한다.(★반가운 종신찡,,,)

 

- 배려라는 것은 어쩌면 피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감각이다. 

 

- 낯가리는 이들이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사소하고 고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왁자지껄한 회식자리나 MT 같은 곳에서 겉도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용히 다가가 앉는 풍경.

 

- 수줍음이 있는 어르신이 된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 나는 세상은 방구석에서 뭐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모든 걸 바치는 덕후들과 무리에서 늘 튀어가며 소리쳐준 나대는 이들로 인해 변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 시대가 어렴풋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에 제목이 붙여지면 그 단어는 한동안 수많은 문화를 지배한다. 요즘 그런 단어가 바로 '자존감'이다. 

 

- 저는 항상 행복은 막 까먹는 스낵처럼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느껴야지만 그것이 진짜 행복이고,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설렘이라는 것은 지나고 보면 앞면만 생각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 뒷면은 수없이 불안한 밤들, 입맛이 떨어졌던 저녁 식사들, 이런 게 분명히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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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그에게 걷기란,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계속해보는 것배우 하정우의 에세이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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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고 나면 당장 걸으러 나가고 싶어진다는 책. 나 역시 그랬다. 단순히 걷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배우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걷기로 풀어내는지를 찬찬히 풀어내 주어 좋았다. 

 

ebook으로 읽었다. 

 

- 사회적 정서와 맞물려 영화에 대한 호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부분까지가 다 관객들의 선택이고 영화가 당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영역인 것이다. 

 

- 나는 예술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때로는 두렵고 또 때론 지루한 이 모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일로 함께 웃을 일이 많기를 바란다. 

 

- 삶의 곳곳에 놓인 맛있고 즐거운 일들을 잘 느끼는 일. 그게 곧 행복이 아닐까 하고 나는 하와이에서 생각했다. 

 

- 힘들 때 자신을 가둬놓는 것, 꼼짝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감옥의 수인이 되는 것, 이런 것도 다 습관이다. 

 

-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팔과 다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온몸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귀찮음을 탁탁 털어내본다.

 

- 나는 한 사람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능력을 일생에 걸쳐 끄집어내고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본다. 그런 과정이 결국 나를 완성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 말이란 개인의 습관, 출신지, 성별, 세대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한 사람이 평가할 경우 그 사람의 언어 습고나에 치우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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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자 보통 운동

일하는 여성 열 명이 들려주는 운동의 지속 가능성“힘들다. 시간도 없다. 그런데 그만둘 수 없다.”일하는 여성 열 명이 어떻게 각각의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다룬다. 어떻게 시간을 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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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제주 휴가 마지막 날 동네책방에서 산 책이다. 제주공항 근처, 버스로 15분이면 도착하는 서점 '미래책방'에서 샀다.

휴가 내내 '돌아가면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눈에 띄인 책이다. 표지도 맘에 들었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의 운동 모두가 흥미로웠다. 스쿼시가 없는 건 아쉬웠지만, 따릉이 타기를 운동의 범주에 넣은 것도 재밌었고, 풋살이나 스윙댄스처럼 내가 할 법 하지 않은 운동이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은 나같은 보통의 직장여성이 어떻게 삶 속에 운동의 한 카테고리를 마련해두는가를 다룬다. 개개의 여성들이 운동을 소중히 하는 태도들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경험이었다. 

 

*

- 그 뒤로 더 많은 친구를 만나 책을 만들면서 왜 여성의 운동을 말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살을 뺀다"는 표현이 운동을 말하는 모든 여성 열정가로부터 나왔고, 대다수가 묻기도 전에 체중에 대한 강박을 먼저 말했다. 체중의 변화를 겪고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있었고, 운동의 효과를 체중 감량과 동일시했던 사례도 있었다. 운동과 다이어트가 어떻게 다른지 다들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둘을 묶어 생각했던 시간이 길었다. p.15~16 

 

- 대다수가 해당 운동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몸을 말했다. 동시에 몸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이상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수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p.16

 

- 직장인이 운동을 하면서 삶을 문제없이 유지한다는 건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p.52

 

- 지도자에 대한 애착은 운동을 지속하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다. p.132

 

- 이제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신 있기 말할 줄 안다. 나아가 어떻게든 삶에서 운동을 떼어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p.164

 

인덱스를 해두지 않고 읽다보니 눈길이 머문 문장을 다시 찾기가 쉽지 않네. 제주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에게 더 잘 읽히길 바라며 보내야지. 

문학동네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임현 작가의 작품. 작년에는 <고두>라는 작품으로 상을 받으시더니, 올해도 이렇게. 작년에도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을 잡아끄는 소설이 임현 작가의 글이었는데, 올해도 왠지 그럴 것만 같다. <그들의 이해관계>까지 읽고 바로 블로그를 켰으니 말이다. 

1. <그들의 이해관계>

2015년 중국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달 가량 혼자 배낭여행을 했었다. 중간중간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대개는 혼자였다. 동행이 없어 외로운 적은 있었어도 딱히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무섭지는 않았다. 나를 더 두렵게 한 건 좁은 2차선 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해 가는 고속버스에 내가 타고 있다는 사실,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성도 시내에서 400km 떨어진 구채구를 갈 때가 대표적이다. 구채구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9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내가 가기 전날 그곳에 이미 다녀온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길이 얼마나 험하고 운전기사는 얼마나 차를 빠르게 모는지 따위를 알게 됐다. 시쳇말로 나에겐 TMI였다.. 굳이 다음날 그 버스를 타고 그 길을 달려야 하는 나에게 왜 굳이?라는 말을 겨우 삼켰는데 잠드는 내내 불안했다. 

결과적으로는 큰 사고는 없었고, 구채구 관광은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했다. 다만 사전에 들은 말대로 레미콘 차가 반대편에서도 오고 있는데도 운전기사는 앞 차가 조금만 느리다 싶으면 그 가파른 길에서 앞차를 추월했다. 또 잠자다 눈을 떠 창밖을 내려다 보면 바로 엄청난 물살의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TMI이긴 했지만 과장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나, 아니면 중국 여행을 하다 들었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들 몇명이 백두산 여행을 가다 버스 사고로 전원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행시 합격이라는 아마 그들 인생에 있어 손에 꼽는 행복을 만끽했을 이들이 교통사고로 죽다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왜?" "왜 그들이어야 했지?" 

어떤 교통사고나 재난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 그들의 이름이 담긴 보도나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 저런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왜 이번엔 저들이어야 했는지, 등의 물음등이 꼬리표처럼 계속 생겨나다 결국 도달하는 질문은 "나도 저런 불행을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것들. 

<그들의 이해관계>는 이런 질문을 소설로 풀어냈다. 

어느 한쪽이 자꾸 좋아진다라는 것은 누군가 나쁜쪽을 떠안게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래는 공평하게 나눠서 나쁜 일을 상쇄시킬 수 있는 문제인데도 누군가 한쪽만 너무 갖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을 더 가지려 하고, 웬일인지 신호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로 뒤따르는 누군가가 줄곧 신호에 걸리고 있다는 말인데,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급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것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냥 좋은 일을 좋아하더라, 이 말입니다.

알맞게 불행하고 적당하게 행운을 누리다가 누군가를 위해 휘청거려주는 것. 

2. <고두>

<고두>는 너무 좋았어서 당시 스터디할 때 언니들에게 마구마구 추천해주고 잘 읽었다며, 칭찬받았던 작품. 

메모장에도 인상 깊은 구절들을 기록해두었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선한 사람이 가진 무지같은 것. 그런데도 자기만 옳다고 믿는 무서운 확신 같은 것.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다고. 더구나 적극적인 혐오를 통해 자기는 그런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하거든.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그런 세계에 사는 자들의 전형이 있고 그것은 자기와 다르며 그러므로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너라면 다를 줄 아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다른 게 아니란다. 다만 그런 상황이 너에게 없었을 뿐.

작가노트

나를 무섭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틀렸다고 확신한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세계가 끝나고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같은 것이다.

공중도덕이라는 신념이 사람을 저리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나, 무서웠던 적이 있다. 

만약 이 세계가 그토록 분명하고 확정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래서 무엇도 의심할 필요없이 믿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소설은 세간의 떠도는 말처럼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49번째, 아니 48번째 면접을 본 남자 M에 관한 이야기다.

1.

제목을 보자마자 빵 터졌다. MAN을 WOMAN으로 바꾼다면, 줄곧 면접에서 미끄러진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책을 펼치기 전에 생각해봤다. 내가 근 2년 동안 면접을 총 몇 번 봤더라..? 필기 시험 이후의 전형, 그러니까 현장 취재나 토론 등도 일종의 실무면접이니 그것들을 모두 포함해보면 15번. 면접관과 서로 대면해야 했던 면접은 11번. 주인공 M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숫자인 것처럼 보여도 내가 지망하는 직무가 1년에 채용하는 횟수와 비교해보면 꽤나 처절한 숫자다. 스터디원들이 내게 '너는 이제 곧 붙을거야'라는 말을 종종 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항상 마지막 관문에서 고꾸라지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이 책을 연수원 가는 기차에서, 연수원 숙소에서 읽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름이 돋았다...... 충성^^7을 강요하는 기업문화에 넌더리가 나고 있어 연수원 생활을 그다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찰나에 이 책을 읽으니 '사실 난 최종합격이 된 게 아닐지도 몰라!!!'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리 없지만. 멘탈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연수원에서 읽지 말아야 한다.

3.

마음에 들었던 구절

-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자동차 바퀴를 조이는 데 들어갈 것인지, 전화기 칩에 쓰일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뇌를 열어 볼 때 쓰는 의료 로봇팔의 나사인지. 전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까진 신경 쓸 것 없다. 제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순정 부품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작은 부품의 생산성, 대수롭지 않은 운명이다. 그 대수롭지 않은 운명을 위해 마흔여덟 번의 면접을 봤다.

-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최소한 우리 자신은 알아야 하잖아요. 우린 그렇게 작은 존재는 아니니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느낀 답답함이 있었다. 단순히 합격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답답함은 아니었다. 그나마 주체적인 일을 하고 싶어 기자 준비를 했지만, 이상과 달리 기자 역시도 '글쓰는 샐러리맨'일 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기업에 소속되는 순간 개인의 개성이나 특성은 사라지고 철저히 부품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리 작가의 비유처럼 나는 '부품'이 되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취준 기간에 간혹 찾아왔다. 그 부품이 되기 위해 나는 11번의 면접을 본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각을 해나가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영향력이 어떤 방향인지 등에 대해 관습에 젖지 말고 계속 상기했음 하는 바람. 내 최애 드라마로 등극한 <비밀의 숲>에서 배두나가 분한 한여진 경위의 대사 중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인식이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다보면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대사였다. 그래서 '친구'의 대사처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최소한 나 자신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4.

글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희곡처럼 서술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고, M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연수원 생활 부분 역시 M의 사고 변화를 바로 알 수 있어 효과적인 서술 방식이었다. 등장인물 모두 이름 없이 서술된다는 점, 후반부로 갈수록 조여오는 긴장감 등이 책의 가독성을 높였다.

5.

한국 사회에서 '면접' 한 번 보지 않고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긴 쉽지 않다. 면접은 곧 옆에 앉은 경쟁자를 이겨야 하는 일종의 싸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주인공 M 만큼은 아니더라도 면접장에서의 절박감과 간절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가 읽어도 다가오는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양칭샹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인상깊었던 문장들

- 절대다수의 실패는 소수의 성공을 의미한다.

 

- 역사와 개인의 삶이 동떨어져 있고 역사에 참여하려는 일시적 열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보편적인 역사 허무주의를 유발한다. 이러한 허무주의의 전형적인 징표는 거의 교활함에 가까운 태도로 삶과 타자를 대하는 것이다.

 

-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아의식과 정신적 가치에 바탕을 둔 역사적인 자아에는 눈 뜨지 못하고 있었다.

 

- 발전은 물질적 번영을 가져다 준 동시에 주체적 자아를 파괴했다.

 

- 농민공은 자본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집단이다. 그들은 소농의 대뇌와 노동자의 신체 에너지를 갖추고 있따. 이처럼 기계적으로 이윤을 생산하게 된 그들은 계급의식이나 주체성을 형성하지 못하며 새로운 혁신의 역량이 되지도 못한다. 절반은 노동자이고 절반은 농민인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계급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럽고 의기양양하게 그들의 곳간을 채워갈 곳이다.

 

- 표면적인 단어의 조합으로만 봐도 농민공은 이상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도 아니고 농민도 아니라 '농민+노동자'인 것이다. 이러한 명명을 통해 두 가지 계급이 동시에 와해되고 만다. 노동자 계급은 주체의식을 상실했고, 노동자 계급의 최대 동맹군인 농민 계급도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활력을 잃었다.

 

- 매체와 문화적 글쓰기는 이들 집단(농민공)을 한데 묶어 농민공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명명은 강렬한 차별과 편견을 동반한다. 농민공 집단에 속한 이들이 실제 자신들에 대한 이러한 일방적인 인식과 표현을 인정하는지는 묻지 않은 채.

 

- 어느 세대, 어느 지역이건 간에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는 자기 기만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실패감 역시 역사 허무주의, 거짓과 허장성세가 사회와 역사로부터의 일탈의 구실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 각 세대마다 그 세대만의 잔혹함이 있다.(오, 완전 좋은 문장이었다. 심지어 작가가 아닌 작가와 바링허우 인터뷰집에서 인터뷰이가 한 말)  

 

*감상평

 

1. 바링허우에 속하는 작가가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한 분석을 한다. 글은 자신이 베이징에서 겪은 부당한 일에서부터 시작해 쉽게 따라갈 수 있으나 글 중간중간에 중국어를 직역한 듯한 번역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꽤 된다. 한국어와 정확한 매칭이 되는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특히 글 중반부에 등장하는 샤오즈(小资)는 역자의 설명이 더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글의 절반을 관통하는 핵심어인데 샤오즈가 뜻하는 바가 정확히 와 닿지 않는다.

 

사전에는

小资 : 일정 정도의 학력과 경제력을 지니고 있으며,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생활을 추구하는 젊은층.

라고 나오긴 하는데 이 한 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적 맥락이 담긴 용어라, 읽으면서 갑갑함을 느낌.

 

2. 어쨌든 제 세대를 평가하는 작가의 통찰은 좋았다. 사실 바링허우를 포함한 중국의 자본주의를 체득한 모든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게 역사허무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 반년 밖에 거주하지 않았지만, 가끔 중국인을 대하면서 제일 무서웠던 건 돈을 향한 무서운 집착이나 맹목적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물렀던 학교의 특성 탓도 있겠지만, 뉴스나 신문을 진지하게 읽는 젊은층은 극히 드물었고 그만큼 사회를 향한 관심도 적었다. 당연히 심각한 빈부격차, 권력층의 부패 등에 대해선 외국인인 나보다 잘 알고 있지만 작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매체가 만들어낸 공간 딱 그만큼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적으면 한국도 그렇지 않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질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거리의 상인들, 빠오쳐를 모는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 심지어는 학교 행정실 직원들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의 큰 목표가 없으니 오로지 목표는 돈인 느낌이 드는? 왕칭샹은 이를 이 세대들이 살아오면서 역사의 주체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 지적했는데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촛불시위는 바링허우와 비슷하게 흘러갈 지도 모를 우리 세대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3.

글 막바지엔 다양한 바링허우들을 인터뷰 한 글이 실려 있다.

굉장히 다양한 부류의 인터뷰이를 구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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