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가득해요*)

 

http://v.media.daum.net/v/20170923142224112

 

1. 시사인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였다. 마침 재밌는 책을 찾고 있었다. 둘레길 갈 때 버스에서 지루함을 달랠 만한 책으로. 제목과 책 표지를 봤을 땐 취향에 안 맞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으나.. 어쨌든 학교에 약속 있어 들리는 김에 도서관 가서 빌렸는데 생각보다 너~어무 두꺼운 것이 아닌가. 850페이지에 달하는..?

 

지리산 둘레길 가기로 한 당일 새벽에 일어나 짐을 꾸리는데 책을 들고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포기. 읽지도 않고 짐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한참을 책상위에 방치해두었다가 연휴를 핑계삼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줄곧 달렸다. 800페이지가 아니라 1600페이지가 되더라도 이정도의 스토리와 전개라면 쉬지 않고 읽었을 것이다.

 

 

 

2.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소감, '박지리 작가 책 다른 거 뭐 있지?'

25살에 등단한 박지리 작가는 지난해 생을 마감했다고 뉴스기사를 통해 접했다. <다윈 영>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고. 대부분의 서평에서 그의 모든 작품이 대단하다고 하니 거꾸로이긴 하지만 마지막 작품을 계기로 하나하나 거슬러 가면서 읽어봐야 겠다.

 

3.

러너, 니스, 영, 루미, 레오 등 등장인물의 이름 모두 서양식이라 읽다 보면 가끔 한국작가의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 책에서 그려내는 사회가 한국과 접점이 많아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 작가임을 다시금 느끼곤 했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철저하게 계급화된 사회, 프라임스쿨로 대표되는 학교별 위계, 자신들만이 최고의 선이라 믿는(소설에 따르면 사과의 핵) 위선에 가득찬 최상류층 사람들 등.. 내가 속한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는 다른 국가의 독자들이 읽어도 아마 제가 속한 사회 혹은 곧 다가올 사회의 미래라 여길지도 모른다.

 

4.

벌어진 특징 사안에 대한 진실을 저마다 다르게 정의내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 러너-니스, 니스-영의 부자관계도 그렇고 니스-루미 사이도 그렇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만만했던 루미가 마침내 진실이 삶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면서 진실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역시 인상적이었다. 루미라는 등장인물 자체가 사실 굉장히 유약하다는 것은 중간 부분부터 알수 있었긴 하다.

 

5.

좋은 점이 한 두개가 아닌 소설이지만 하나씩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자면,

 

- 1지구에 살면서 아버지가 '고작' 7급 서기관이나 하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는 루미가 여학생으로서 갈 수 있는 최상위 학교 학생임을 내보일 수 있는 프리메라 교복을 '언제나' 입는다는 점. 또 상대가 자신의 우월한 점을 인정해줄 때는 상대에게 너그럽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직업, 거주지 등을 추측하며 한없이 열등한 존재로 정의내리는 점. 루미의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아주 잘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또 학교 이름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 등을 신분증마냥 들고 다니는 걸 자주 목격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익숙한 인물 군상이기도 했다.

 

- 악마로 변하기 전, 다윈 영이 천성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선함과 해맑음. 극복해야 할 열등감이나 트라우마가 없는 인물에게서만 볼 수 있는 유함, 세상을 바라보는 지극히 순수한 시선들이 현실에선 불가능한 성질일지라도 소설에서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으로 한 사람에게 열등감이 미치는 파장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인 것 같다.

 

- 위선적인 어른들 가운데서 그나마 가장 정직해보인 인물인 피터 마샬조차 자신만의 열등감이 있다는 점 역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아저씨가 마치 성인 버전의 다윈 영처럼(아버지 니스 영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의 다윈 영을 말한다) 그려졌다면 너무 판타지스러워서 실망할 뻔했다..ㅎ

 

- 살인자인 니스 영을 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소설은. 열 여섯 이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아버지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바쳐온 니스가 떠맡은 죄의 무게와 아들 다윈을 향한 너무나 큰 사랑이 잘 묘사되어서 그런 것일까?

 

- 보이지 않을 뿐 우리도 소설보다 더 촘촘하게 갈라진 계층 사회에서 살고 있다. 보이지 않아서 더 잔혹할 수도 있다.

 

6.

다윈 영은 니스 영처럼 한평생 자신이 저지른 죄에 짓눌려 살아갈까, 아니면 러너 영처럼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우며 살아갈까. 책을 덮는 순간엔 전자였으나 포스팅을 하는 지금은 후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7.

후드 집업 못 입겠다. 앞으롴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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