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거상 수상했다는 연합기사 읽는 순간 갑자기 뭐에 동했는지 ebook으로 구매해서 바로 읽기 시작. 역시 상받은 책은 체고다,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다. 스릴러 소설로서의 재미도 충분한데 소설이 주는 메시지 또한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터라 책을 덮고 나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흡인력이 엄청나서 책 제목이 미처 입에 붙지 않았을 때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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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 YES24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윤고은이 펼치는 전혀 새로운 상상력‘재난 여행’ 상품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의 기상천외하고 스펙터클한 재난 사용법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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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하면 정말 책이 가진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요나라는 주인공이 재난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의 프로그래머라는 정보 하나만으로도 구미가 당겼는데 뒤 줄거리는 상상 이상.. 

 

2. *스포 있음*

- 재난여행의 프로그래머인 요나가 맞닥뜨리는 재난은 문자 글대로 온갖 재해가 발생한 곳에 있지 않다는 점이 책 초반부터 뒷골을 서늘하게 한다. 재난은 요나가 다니는 회사에도 있었다. 요나가 조직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부분을 읽을 때, 아마 회사에 속해 있는 모든 독자들이라면 심장이 덜컹 했을 것이다. 

 

- 여행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반가운데, 요나의 무이 여행은 섬뜩했다. 후반부의 핵심 줄거리가 나오기 전부터. 

요나가 기차에서 낙오되는 장면의 묘사들이 너무 생생해서, 지갑도 여권도 중요한 물건이 잔뜩 든 가방도 잃어버린 그 순간의 막막함이 주는 두려움이 잘 묘사돼 있다. 관광객에 익숙하지 않은,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의 낯선 마을에 혼자 떨어지면 어떻게 헤쳐 나와야 하나. 

 

- 요나가 다시 돌아온 무이에서 사랑에 빠진 장면들이 모두 좋았다. 인적 없는 모래사장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 모습들이 너무 찬란해서 뒤에 올 비극과 더욱 대조됐다. 

 

-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아마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작가가 주인공인 요나마저도 죽였다는 것이다. 주인공에 감정을 동일시하면서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려던 바를 생각해보면, 재난 시나리오에서 희생될 이름없는 사람들과 요나가 다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감했지만 수긍이 갔던 대목이었다. 

 

- 분업화의 시대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시작과 끝일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의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목에 칼끝을 겨누는 일도, 촘촘하게 분업화돼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일의 결과를 자각하지 못하게 되는데 나는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 좋은 문장들 

-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 곧 개통될 노선들이 점.점.점. 숨을 옥죄어 왔다. 이미 달리고 있는 노선들은 점점 더 길어졌다. 요나는 지하철 끝을 불로 지지고 싶었다. 헝겊의 끝을 불로 지지듯이, 더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 

 

- 도시가 몸을 불리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의 품 안으로 꾸역꾸역 파고들었다. 

 

- 욕심도 관심과 비례해서, 어떤 지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지도를 눈으로 훑기 전에는 콩알만 하던 욕심도 일단 관심을 갖고 알아 가기 시작하면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마을에 다다를 때 후각이 자극을 받는 순간은 처음 한순간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낯설어지지 않는 한, 처음 접한 그 순간의 후각적 자극을 매 순간 인식하기란 어렵다. 

 

-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 순으로 진행되었다. 

 

-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걸 요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여행했던 곳은 최소한 관광에 필요한 간단한 영어는 통하는 지역들이었던 것이다. 

 

-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동정하고 주목해 준다 그겁니다. 세상이 너무 자극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관심이란 건 정직한 거니까요. 

 

- 그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렇지만 누가 소수가 되려고 하겠는가. 

 

-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요나는 가만히 있었고,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이 일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둔감해졌다. 

 

- 진짜 공포는 내 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당신을 잃는 것임을 아는 순간, 진짜 재난이 기획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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