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독서모임 책 제레미 리크핀의 <육식의 종말>을 읽었다. 흔히들 종말 3부작으로, 이 책과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을 꼽는다. 부끄럽지만 이번에 읽은 책이 3부작 중 처음 읽는 것이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돼 소개된 게 2002년. 그런데 미국에서 출간된 건 그보다 훨씬 전인 1993년이다. 책이 세상에 나온지 30여년 가까이 지나서야 읽었는데도, 작가가 제시한 통찰이 여전히,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의미를 갖게 됐다. 훌륭한 책, 사회과학도서의 고전이란 이런 것일까? 

 

주석이 책의 한 챕터 분량 정도 될 정도로 촘촘하다. 그만큼 작가는 근거를 촘촘하게 쌓아올랐다. 그에 기반해서인지 책의 생명력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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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 YES24

저자에 의하면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식생활이다.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파생되기 시작한 문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한 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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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이 처한 현실과 사회에서의 인식을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는 회사에 다니는지라 책의 뒷부분은 사실 새롭진 않았다. 아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기반, 어쩌면 그에 대해 처음으로 물음표를 던졌던 작가가 제레미 리프킨이겠지. 그가 제기한 물음 덕분에 이미 많은 매체들이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많이 다루고 있다. 

 

내게 오히려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가 어떻게 세계사 속에서 움직이고, 인류 역사와 함께 했는지를 다루는 앞 부분이다. '축산업으로 보는 세계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소라는 한 종(種)의 역사가 살아남는 과정을 보면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내용 일부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오래 살아남은 종은 종 전체로 봤을 때 성공일지라도, 개별 동물에게 그것이 성공일까?하는 유발 하라리의 지적. 소는 축산업의 대표적인 축종으로 수백, 수천만마리의 소가 지구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살아남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FAO가 어떻게 대량 축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도 나온다. 국제기구가 이끄는 여러 논의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에 대해 다루는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최근에 봤던 영화 <퍼스트 카우>도 생각났다! 미국 개발시대, 아주 귀했던 소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이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

 

- 소는 가장 오래된 이동 재산이며 많은 서구 문화에서 교환의 매개물로서 이용되었다. 이와 같이 소가 신성한 위치에서 통화와 상품으로 이행한 것은 자연에 대응하는 인류의 변화와 역사적으로 일맥상통한다. 소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쓸모 있게 만드는 실용적인 동물이었으며, 세계 속의 자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정의하는 유용한 투명이자 상징이었따. 

 

- 간혹 항생 물질 잔유물이 사람들이 소비하는 쇠고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은 알게 모르게 질병을 유발하는 박테리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수천년 동안 다른 동물들을 통해 자아에 대한 우리 감각을 키워 왔다. 지구상의 풍부하고 다양한 동물들의 삶은 줄곧 인간 삶의 판단 기준이 돼 왔다. 

 

- (알쓸신잡1) 이탈리아인들은 소의 땅을 뜻하는 '이탈리아'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가져왔다.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이 로마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들은 소 숭배의식을 치르며 전투에 임했다. 

 

- 농경사회에서 방위는 대지에 대한 소속감 속에서 발견된다. 대지는 신의 보호와 조상의 감시를 받는 거룩하고 신성한 거주지다. 대지는 책임감을 낳고 그것은 각 세대를 신성한 의무와 책임의 복잡한 관계로 긴밀하게 엮는다. 농경 사회에서 소속감은 대지, 변화하는 계절, 탄생, 성장, 죽음, 재생의 연령 주기와 결부돼 있다. 

 

- (알쓸신잡2)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됐으며 그 옆으로 지위를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들 차지였다. 예컨대 사슴 고기가 나왔을 때 꼬리나 내장은 늘 가장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 지방이 많은 쇠고기를 즐기는 영국인의 입맛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가지 위대한 농업 전통을 하나로 합치도록 했다. 하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최초의 위대한 곡물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곡식 생산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유라시아 스텝 지방의 말을 탄 유목민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대한 목축 문화가 그것이다. 두 위대한 농업 시스템은 대초원의 울퉁불퉁한 방목지와 중서부의 평평한 농경지가 마주치는 미서부 평원에서 처음으로 결합되었다. 

 

- 자신들의 신분과 직책을 순전히 혈통에 의존하는 상류 계급의 경우, 그들이 소유한 우수한 소의 순수성에 관한 문제는 그 중요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열등한 혈통이 섞이지 않은 채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 혈통이 존속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순수성 문제에 대한 귀족들의 광적인 태도는 해외 식민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 오늘까지도 아메리카 버펄로의 멸종은 미국 생태계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일화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갑작스럽고도 단호하게 진행된 학살은 1만50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평원의 주인공을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끝장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 지방이 많은 쇠고기 부위를 선호하는 유별난 영국인의 취향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농업 역사상 유래 없는 새로운 상업적 관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1900년 이후로는 점점 더 많은 소가 옥수수에 의존하게 되면서 곡물 가격의 변동이 쇠고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거꾸로 연간 소 생산과 쇠고기 수요의 변화도 곡물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 현재의 등급 시스템은 은연중에 소비자의 입맛과 수요를 곡물로 기른 육우로 획일화하는 산업 구조를 강요하고 잇는 것이다. 

 

- 대다수의 경제역사학자들은 철강과 자동차 산업이 초창기 미국의 산업 천재에게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여기지만, 돋보이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처음 사용된 곳이 대부분이 다름 아닌 도축장들이었다. 

 

- 현재 LA 공립학교들의 대다수 어린이들은 히스패닉 계열이다. 미국 문화의 부분적 라틴화는 전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토지 활용 형태가 변화하는 데 기인한다. 그 지역들에서 기존의 생존을 위한 농업이 육우 사육과 사료 작물 재배로 대체되면서 대륙 전체가 국제 쇠고기 무역을 위한 방목지, 경작지, 가축 사육장으로 전환된 것이다. 

 

- 세계 농업이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 전환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인류 악을 나타내는데, 아마도 그 결과는 과거 인간 대 인간이 벌였던 그 어떤 폭력보다도 훨씬 장기적이고 심각할 것이다. 

 

- 다른 국가들에게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가도록 권유함에 따라 미국 농부들과 농산업계 회사들의 이익이 증진됐다. 

 

- 진보의 시대는 어디까지나 북반구의 좁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 진보가 기아와 질병, 그리고 날로 심화되는 자포자기와 절망감을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 현재 전세계 각국들은 지금 그들의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체험해온 기후 환경이 50년 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예상을 토대로 경제 계획을 결정하고 미래 개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 오늘날 빌딩, 교량, 댐, 도로, 하수 시설, 운하 및 각종 기계류는 향후 50~100년이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기후 압력 오차 허용도를 감안해 설계되고 있다. 

 

- 우리는 흔히 자연을 섭취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연을 이해한다. 먹는 행위는 인간과 환경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따. 그 경험이 생존과 보충의 행위이자 신성한 행위로, 또한 영적 교감으로 칭송받는 문화가 많은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 (알쓸신잡3) 육류는 단순한 음식을 뛰어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구 문화에서 얼마나 육식을 탐했는지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따. '문제의 골자(meat of the matter)' '내용이 충실한 질문(a meaty question)' '개선(beef up)' 같은 용어들이 그런 것들이다. 

 

- 날고기를 '힘, 남성 지배, 특권'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현대사회에서 종종 목격되는 가장 오래된 문화적 상징들 중 하나다. 

 

- 비어드는 당대의 각광받던 생물학적, 사횢거 개념을 고기를 먹는 민족들이 더 우수하다는 오랜 유럽의 선입견과 결합시킴으로써 정교한 인종 이론을 만들어냈다. 즉 성과 계급 차별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육류와 우월성, 식물과 열등성을 결합시켜 또 다른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백인 식민 세력과 다른 유색 원주민들과의 차별을 공고히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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