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2일 첫째날

통영 사량도에 다녀왔다. 7년 전, 비슷한 계절에 연화도에 갔던 친구 두명과. 원래 6월 마지막 주에 가기로 계획했는데 장마기간과 딱 겹쳐서 일주일 미룬 게 7월 2-3일.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통영 부근에 위치한 수많은 섬 가운데 하나.

서울(남부 기준)에서 통영까지는 4시간, 통영 가오치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40~50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야 사량도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남부터미날발 아침6시40분 버스를 미리 예매해뒀는데 이 버스는 통영 가기 전 고성을 경유하는 버스였다. 전날 급하게 짐싸고, 월요일 마감할 거 챙기느라 네 시간 아주 푹잤다. 거의 통잠이었던 듯.. 책 읽을 거라며 야심차게 책 챙겼는데 (역시나) 가져간 고대로 들고 옴.

버스에 내려 친구들과 만나고 곧장 터미널과 가까이 있는 이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자취생인 나와 달리 가족들과 같이 사는 친구들은 감자며 양파며, 마늘이며 바리바리 싸와 덕분에 마트 장보기는 간단하게 끝났다. 난 그대신 비장의 무기! 마라샹궈 소스와 옥수수면, 콴면을 준비해 갔지ㅎ_ㅎ

장을 보고 나와 택시를 타고 가오치터미널로 향했다. 시내버스도 있는 것 같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혼자도 아니고 세명이 함께 하니 택시비가 덜 부담스러워서 택시가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가오치에 도착한 게 오전 11시 45분 쯤이었는데, 12시 배가 바로 있어서 속전속결, 표를 사고 배에 탑승했다.

사량도로 향하던 날, 날씨는 아주 기가막혔다. 장마를 피해 일주일 미뤘을 때는 뭔가 아쉬웠는데 잘 미뤘다 싶었음. 배에 사람도 비교적 적은 편이라 소란스럽지 않아 더 좋았다.

잘 먹는 셋이 모이면 끼니 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점심을 못 먹어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먹으려다가, 마땅한 식당이 없어 이마트에서 닭강정을 샀다. 버스에 (거의) 타자마자 비닐을 뜯고 흡입... 아 존맛...

딴 소리지만 요새 식이 진짜 거의 손놓은 사람이었군ㅎ_ㅎ 불과 한두달 전만 해도 닭강정 먹을 때 양심이가 좀 찔렸는데 저때 그저 먹는 데 정신팔림.

사량도에 도착해 민박 아저씨께 친구가 전화를 드리니 픽업을 해주시러 오셨다. 민박집과 콜밴을 함께 운영하고 계셔서, 픽업 가능하냐는 물음에 그리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셨다는데 그래도 나와주셨다. 첫날, 민박집에 갈 때만 해도 이 아저씨 밴을 더 타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여행 내내 진짜 우연히 만나 잘 얻어탔다.

민박집은 옥동이라는 마을에 위치해있는데, 정말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2층에 위치한 우리 방은 방에서 나오면 바다가 보이는 뷰였다. 밖에 테이블도 있어 저녁은 나와서 먹기도 했다!

대중교통이 편하다고 말할 순 없어도 나름 규칙적으로 운영되는 버스가 있다. 위 시간표는 우리가 머문 상도 버스시간표이고, 하도 역시 다른 버스시간표가 있었다.

첫째날엔 대항해수욕장에 가보기로 해, 옥동에서 대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시간이 마땅치 않아 진촌까지 나가 그곳에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티머니로 결제가 가능하고, 비교적 정확한 시간에 오는 편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예정시각보다 되레 5분 정도 빨리 왔으니 배차간격이 큰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일찍 나가는 게 최선인 듯 싶다.

종점인 진촌에서 내렸더니 대항해수욕장까지는 걸어갈 수 있다고, 편의점 주인분이 말씀해주셨다. 그 말만 믿고(?) 처음엔 걸어가려 했다.

진촌에서 대항으로 걸어가던 길에 만난 짖지 않는 개들. 개를 무서워하지만 나에게 오지 않는 개는 귀엽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개가 두마리  더 있었는데 다섯마리 개들이 낯선 사람들을 보고도 짖지 않고 흥분하지 않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도 사람이 좋은지 계속 우리 쪽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곤 했다. 몸을 일으키려 할 때면 멀찍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귀여워서 거리를 유지한 채 사진을 찍었다.

개를 이내 뒤로하고, 대항해수욕장으로 걸어가는데 우리가 다음날 가려던 옥녀봉에 관한 표지판을 봤다.

"옥녀봉은 '매우 위험하오니~~'...." 응? 그냥 위험도 아니고 매.우.위.험? 산에 관한 안내 가운데 '매우'라는 부사까지 써가며 강조한 것은 처음 봐 당황했다. 얼마나 위험하길래... 하며 얘기하던 순간, 아저씨 한 분이 차를 태워주셨다. 대항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이니 데려다주신다면서. 세명이니 뭐, 위험하겠나 싶어 탔더니 내 귀가 위험해졌다. 아저씨는 온갖 섹드립을 치면서 자기 나름의 농담이랍시고 껄껄대는데 흐르는 물에 귀를 씻고 싶었음^_^...

차를 타고 대항으로 가니, 진촌에서 대항은 그렇게 멀지도 않지만 또 간단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짐이 많거나 신발이 편하지 않다면 걷는 게 쉽진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도착한 대항해수욕장은 사실 바다 근처에서 자란 우리 셋에겐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아, 바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큰 선박이 아닌 산 능선이 보인다는 건 완전히 달랐다. 중공업의 딸들.. 해수욕은 생각지도 않고 온 터라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 물이 깨끗하고 얕아 놀기에 딱 좋았을 텐데. 발만 담그다가 돗자리에 누워 의도치 않게 살을 태우고 쉬다가 다시 민박집으로!!

2. 7월3일 둘째날

전날, 마라샹궈에 막걸리 먹고, 와인먹고, 과자먹고 식욕에 있어 누구 하나 뒤지지 않는 애들 세명이 모여 엄청 먹었다.(하...)

그리고 대망의 등산. '옥녀봉 매우 위험' 표지판 보고 등산화도 없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인지, 세상 모든 겁은 다 갖고 있는 내가 갈 수 있는지 불안했는데 등산으로 유명한 사량도에 와서 아무것도 안 보기엔 아쉽다며 길을 나섰다.

등산코스는 우리가 머문 민박의 뒷길로 들어가 성자암을 들러, 출렁다리까지 보는 것으로 정했다.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에 정말 엄청엄청엄청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숨이 탁탁막히고 등산하면서 흘린 땀의 절반을 십분도 안되는 이 구간에서 다 흘렸다. 경사가 너무 급해 차도 진입 금지를 한 오르막길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포기하고 싶은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길 구간이 끝나니 나타난 성자암과 연꽃. 오르막길이 힘들긴 했지만 나는 차라리 힘든 구간이 나았다 엉엉ㅠ_ㅠ

고소공포증이 있어 놀이기구를 못타는 나여도 등산을 하면서 고소공포증을 고려해야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량도의 여러 봉우리들은 그냥 봉우리가 아니라 '바위산'이었는데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한 거다. 나는 컨버스화에, 친구는 샌들에 미끄러운 신발(샌들 신고 봉우리 오른 친구는 내친구지만 리스펙..)도 큰 장애요소였지만 서있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들을 기어 오르는 게 나한텐 더 어려운 점.. 중간에 내려가는 길만 있었어도 먼저 가라하고 혼자 내려왔을 텐데. 높은 봉우리 올라가서 멋진 풍경을 봐도 잘 와닿지가 않고 그저 내려가고만 싶었음.

이런 풍경 보고도 감탄 잘 안나오는 사람?은 나..

바위산 다신 안가야지 생각했던 하루였다ㅋㅋㅋㅋㅋ... 가마봉을 지나 출렁다리까지 갔는데 사실 내가 아니었으면 친구 두명은 옥녀봉까지 깨고 내려왔을텐데 표정관리 못하는 나 때문에 중간에 엄청 험한 길로 대항으로 내려옴.ㅎ.... 민폐되는 거 젤 싫어하는데 민폐되고 있다는 걸 느껴서 표정 더 안좋아졌을 거다,는 무슨. 그냥 안 좋았다는 걸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가마봉은 물론, 사량도에서 가장 유명한 옥녀봉까지 보통은 산악회에서 등산스틱, 등산화까지 제대로 갖춰서 다녀오는 바위산이다. 생각보다 꽤 위험하고 가파르고, 물론 예전과 달리 우회로도 생겨서 나같은 사람도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고소공포가 있는 사람은 다메요... 스스로 가학을 가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다른 산을 가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이날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산을 오르며 공포를 느꼈던 장면장면들이 계속 생각나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한편으론, 고소공포증은 단순히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상상을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한다는 게 문제란 걸 깨달으면서 나의 공포에 대해 한걸음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 계기였달까.(뭔소리지)ㅋㅋㅋㅋㅋ

어쨌든 거의 3시간에 걸친 산행을 하고 내려와서 대항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트럭카페에서 빙수를 먹었다. 젊은총각이 하는 트럭카페라는 컨셉으로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하신다고 친구가 말해줬는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길에 카페 트럭만 덜렁 있어 신기했다. 왜 카페를 하게 됐는지, 왜 사량도였는지, 성수기가 아닌 기간에는 수지가 맞는지.. 등등의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으나 응, 세상에서 제일 낯가리는 사람~은 빙수만 먹었다.

팥빙수를 먹고 있다가 우연히, 또! 민박집 아저씨를 만나(전날에도 음료먹다가 마주침) "니네는 먹기만 하냐?"는 팩트폭력을 당했다..ㅠㅠ 아조씨, 등산다녀오는 길이라고요, 라고 셋 다 찔려서 대답함. 그래도 아저씨가 또 한번 차를 태워다 주셔서 여객터미널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통영 가오치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정말 셋 다 곯아떨어졌다.

울산으로 가는 친구들은 나보다 50분 빠른 차를 예매해 점심을 빨리 먹고 버스를 타야 해 마음이 급했다.(끼니를 건너뛰는 건 아예 선택지에도 없었음) 가오치에서 터미널로 오는 택시에서 택시아저씨께 여러 추천 식당을 받았지만 다 시간이 오래걸리는 거라, 결국 전날 봐뒀던 이마트 근처 중국집에 갔는데...

대.존.맛.

탕수육에, 짜장 둘에, 찐만두를 먹었는데 바로 튀겨 나온 탕수육은 말할 것도 없고 찐만두가 진짜였다. 육즙 좔좔.. 진짜 숨쉬지 않고 다 먹고 여유롭게 버스터미널로 걸어가니, 우리 애들 안죽었네(물론 나도~)..라는 생각이 ㅎ_ㅎ

3.

셋이 함께 한 여행은 7년만이어서 그 자체로 좋았다. 10대와 20대 초반에 보낸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은 그 이후의 나이대에 만난 사람들과는 역시나 무언가 결이 다르다. 직업도, 관심사도, 취향도 다 다른데 그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1년에 얼굴 한번 못볼 때도 많은 우리가 오랜만에 여행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

우리가 10대에 함께 한 시간들만 너무 믿지는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을 들이지 않은 관계가 예전과 변함없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