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 말, 지리산 둘레길을 또 다녀왔다. 코스를 다 깨면(?) 상품같은 걸 줬으면 싶을 정도로 코스를 하나씩 정복하는 맛이 생긴다. 이번에 간 코스는 3코스(인월-금계)로 둘레길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겼고, 또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곳이라고 한다. 총 구간은 20km 가까이 되는데 친구와 나는 이틀을 잡고 가기로 했다.

2.

저번처럼 이번에도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숙소만 예약해두면 '미리' 해야할 일은 없다. 물론 이번에 나는 등산화도 사고, 등산용 가방도 사고... 돈을 쓰며 준비를 했지만ㅋㅋ 

아, 물론 하나의 준비를 더 해야 했다. 바로 '버스 예매'. 동서울에서 인월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가 원래는 없었다가 지리산 둘레길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구간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플로 표를 예매하려고 보니, 타야할 시간대에 잔여 좌석이 2개뿐이었다. 일주일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번 둘레길 여행에서 하동에서 서울에서 오는 버스 역시도 온라인 예매는 두 좌석밖에 없었는데 막상 터미널에 가니 자리가 널널했었다. 그래서 난 이번에도 온라인 예매로 풀어두는 좌석은 한정적이구나,라고 아주 나이브하게 생각했다^_^;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 주에 김제 출장이 있어서 난 동서울 터미널에 방문을 했었다는 점.. 물론 그때도 간 김에 현장에서 표를 미리 사둬야지~했지만, 김제로 갈 때는 시간에 촉박해서, 동서울에 도착해서는 진이 빠져서 그냥 바로 지하철을 탔었다. 

3.

그렇다..... 당일에 강변가는 지하철에서 나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챘을 때, 강변역 2번출구에서 나와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단 걸 알았을 때, 터미널 안에는 정말 많은 등산객이 있다는 걸 봤을 때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직감은 완전히 들어맞았다...ㅠㅠㅠㅠㅠ 

원래 타려고 했던 8시대 표는 매진, 더 최악은 그 다음 시간대인 10시대도 매진.. 그 다음은 13시였는데 탑승시간이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속으로 "뭐 됐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으나, 이내 침착하고(?) 인월 직통이 생기기 전에 남원에 가서 남원에서 인월로 갔다는 블로그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마저도 찾아보는 시간에 남원표마저 매진될까봐 확신도 없으면서 매표소에서 남원표를 샀다. 그렇게 8시 약간 넘어 터미널에 도착했던 나는 9시에 출발하는 남원행 버스표를 샀고, 표를 사고서 폰을 켜서 남원까진 몇시간이 걸리는지, 남원에서 인월까지 가는 버스 시간대를 찾았다. 

대충 소요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여덟시 반이었나? 정신을 차리고 김밥 한줄을 사먹고, 신문 두 부를 편의점에서 샀다.(전날이 남북정상회담) 남원에서 인월가는 버스 시간표가 찾는 데마다 다르게 나와서 불안했지만, 어쨌든 버스를 탔다.

4.

서울에서 남원까지는 4시간. 남원까지만 도착해도 13:00로 이미 친구는 인월에 와 있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하... 그런데 버스를 타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사아저씨가 "토요일에는 밀리는 거 아시죠~ 평일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라고 하는데 아니, 아저씨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자신감 없는 소리 하실 거예요? 아저씨 경력 많아보이는데 제시간 맞춰 달릴 수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ㅠㅠㅠ

하지만 아저씨의 경력은 시간이 지연될 거라는 예언이 사실로 판명났을 때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원래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려 14시쯤에 나는 남원에 도착했고, 14:15에 인월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없었다면 택시라도 타야했지만, 그래도 버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원역에서 버스 기다리다가 찍은 사진인데, 세월호 노란 리본을 버스 앞 유리창에 붙여놓은 게 마음이 울컥해서..

남원에서 인월까지는 30분. 14:45분에 인월터미널에 내리니 친구가 벤치에 (아마 오랜시간) 앉아 있었다. 핳... 

저번 둘레길 여행때도 갑자기 잡힌 카테때문에 일정을 줄여 미안했는데, 이번에는 3시간을 기다리게 해서 더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 나는 평소에 약속 늦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왜 가끔씩 한번 늦을 때 정말 어마무시하게 늦는다..; 정신 챙겨야지.. 

5. 

첫날만 해도 10km 가까이 걸어야 하는데다, 내가 왕지각을 해서 해가 질 것에 대비해 친구와 만나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3코스 시작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찍은 사진. 저번 둘레길을 다녀왔을 때는 둘이 찍은 사진이 셀카빼고 별로 없어서 아쉬웠는데, 마침 집에 언니가 사온 블루투스 삼각대?가 있어서 빌려왔다. 사실상 내가 첫 개시를 했는데, 조만간 그냥 언니한테 싼 값에 넘기라고 할 것 같다.

저번 코스보다는 둘레길에 사람이 꽤 있었는데 그마저도 앞서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 둘만 걷고 있었다. 또 3코스 난이도는 홈페이지 기준 '상'이라지만 초반부에 오르막길을 제외하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3코스의 대체적인 인상은 '철쭉'과 '연두'. 마을 인근에는 분홍색, 빨강색 철쭉이 곳곳마다 피어 있어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또 산 쪽으로 들어오면 여름을 알리는 나뭇잎의 선명한 연두색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데 너무 근사했다. 특히 오후 4~5시 무렵의 빛을 받은 나뭇잎 색이 너무 멋지다는 걸 처음 알게됐다.

내려오는데 근사한 나무를 보고 둘 다 소리를 내질렀다. 저 나무는 400년의 역사가 넘은 것이었는데 세월이 증명해주듯 정말 커다랗고 풍성했다. 또 나무 앞의 철쭉도 나무랑 어우러지니 너무 멋져, 저 철쭉 사이에 들어가서 '제주도 유채꽃 안의 나' 버전으로 사진을 서로 찍어주었다. 사진 다시 봐도 너무 좋다-

이앙기로 이앙작업하는 것을 본 때가 상황마을에 예약해둔 숙소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이때가 아마 오후 5시 무렵이었는데 해기 점점 지고 있는 찰나에 논에 댄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 너무 멋졌다.

이앙기를 보면서 자동으로 몇 평 하시는 걸까, 직파재배는 안하시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스스로를 보면서 =_= 새로웠다.. 작년 이맘 때, 논을 보면 그져 멋지다,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사람 앞길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구나...

6.

친구랑 나는 둘 다 잘 걷는 편이라 중간에 멈춰 사진찍을 때 빼고는 쉬지도 않고 수월하게 잘 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숙소찾기'였다.

인월-금계 코스의 중간이 상황마을이라 상황마을에 숙소를 잡기로 했는데 홈페이지에 나오는 상황마을 민박들이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 뜨질 않는다. 아마 등록이 안 되어 있어 그렇겠지만,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조금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약이야, 다른 블로그 포스팅에 나와 있는 명함의 전화번호로 하니 쉽게 할 수 있었지만 주소는..

아 적으면서 보니 명함에 있는 주소를 지도에 쳐보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지금 드네? 헐.

어쨌든..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상황민박의 '솔솔민박'이었다. 2명 기준 1박에 4만원이었고, 식사는 한 끼당 6000원이었다. 예약을 하려 전화하니 숙박비는 미리 입금을 해야 했다. 입금만 하면 예약 완료. 걱정이 드는 한편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미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와 통화를 한 데다 길을 모르면 전화를 해보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상황마을에 다 와보니 '솔솔민박'을 알리는 현수막도 없었고(저번 둘레길을 갔을 당시엔, 1km 전부터 우리가 잡은 숙소 방향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있었다) 아주머니 번호가 있는 내폰은 밧데리가 없어 꺼졌고... 전화번호를 친구 폰으로 블로그에서 다시 찾아 전화를 거니, 계속 부재중이었다..

게다가 마을은 축제를 하는 듯 멀리서 가요 소리,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데 그 덕분에 길은 사람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ㅠ-ㅠ 겨우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몇 차례 물었는데 그에 맞춰 따라가도 쉽게 나오질 않아 살짝 멘붕이 오던 찰나에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상황마을까지는 저녁 6시 반 무렵에 도착했는데, 숙소에 들어가니 일곱시가 넘었다. 숙소에는 이미 다른 팀(4명)이 도착해 식사 중이었고 너어어어무 배고팠던 우리는 가방 풀자마자 바로 식사에 합류했다. 역시나 꿀맛. 나물류가 정말 맛있었는데, 특히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채취한 버섯은 향이 너무 좋았다ㅠㅠㅠ

밥을 다 먹고, 중황마을 슈퍼에서 막걸리를 사온 우리는 주전부리가 필요했는데 숙소를 찾아오면서 주변엔 슈퍼가 전무하다는 걸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다. 모른척,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주변에 사는 친척에게 부탁할테니 같이 차를 타고 마트에 다녀오라고 했다. >_<  아주머니의 먼 친척 조카?였는데 그 차를 타고 10분을 넘게 가야 조금 큰 슈퍼가 나왔다. 과자 하나랑 아주머니 드릴 소라과자랑, 다음날 먹을 초코바 두개를 야무지게.. 사고 돌아왔다.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밖에 나가 잠시 달이랑 별을 보고 들어왔다.

미세먼지 속에서 살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맡는 밤공기는 정말 상쾌했다. 인공조명도 없어 달은 물론, 별도 잘 보이고.

친구랑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불을 끄자마자 역시나, 나는 바로 잠들었다(고 한다).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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