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을 다시 찾았다. 6월, 초여름에 둘레길을 가는 건 처음이다.

어떤 코스를 갈까 친구와 계속 고민하다 처음엔 운봉-주천, 주천 구룡폭포 순환코스를 가기로 결정. 운봉에서 출발하려면 결국 인월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인월은 3코스의 출발지로, 우리가 처음 둘레길을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월에서 운봉까지는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인월에서 둘레길을 시작하기로 했다.

2년 전, 인월까지 가는 버스가 매진이라 친구를 4시간(사람이냐..)이나 기다리게 한 전적이 있어 이번엔 출발지가 정해지자 마자 바로 예매했다. 꽤 여유를 두고 예매를 했는데도 표를 구매할 당시 자리가 꽤나 많이 나갔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인월행 버스는 함양을 들러 인월을 가는데 인월처럼 큰 도시가 아닌 지역을 가는 버스가 있는 것만으로 감동이었다.

다만 버스는 2+2 좌석. 중간에 팔걸이가 없어서 가는 내내 불편했다.

인월의 출발 지점. 둘레길 표지판 상태가 이제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우리는 거꾸로 2코스. 인월에서 운봉까지 9.4km
무인 상점. 결제든 뭐든 셀프.

 

둘레길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길따라 피어있는 들꽃이다. 계절마다, 지역마다 많이 피어있는 꽃이 달라 눈이 재밌다. 인월에서 운봉으로 가는 역코스의 초반부를 장식했던 건 바로 이 노란꽃. T20으로 사진을 계속 찍는 바람에 모야모 어플을 쓰기 번거로워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얘랑
이 계란후라이는 특히
가는 길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번 구간에선 정말 이앙을 끝낸 논을 실컷 보았다. 내가 일하는 영역이 같이 간 친구가 굉장히 호기심있어 하는 분야라 알아도 쓸데없는 지식.... 알려주고..

쉼터에 앉아 조개껍질 묶어~ 부르시던 어르신들.
동편제 마을을 지나
계란후라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다른 이꽃도 보고

 동편제마을까지도 오르막길이 하나 없이 논을 따라, 강을 따라 걷는 평지였다. 요새 운동을 못해 체력이 달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평지만 이어져 큰 무리가 없었다.

사실 첫날 일기예보가 불안해서 계속 걱정이었다. 다행히 초반부에만 비가 흩날리다가 그쳤는데 먹구름이 계속 우리를 따라오는 모양새였다. 앞을 보면 맑디 맑은 하늘이, 바로 뒤돌아보면 사진과 같은 풍경이.

 

이날 논을 얼마나 많이 봤냐면
논 사진이 인물보다 더 많을 정도..
가을에 와도 멋질 거 같다

이때가 거의 숙소를 800m 남짓 남겨뒀을 때였다. 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걷는데 너무 근사한 풍경이 이어졌다.

우연히 본 개 발자국
개(dog) 쫄보면서 귀여워하기
발자국의 주인공!

둘레길에서 한번 진돗개 2마리의 습격....을 받고는 둘레길 걸을 때면 어디선가 개가 튀어나올까 은근 겁나는데. 이 개는 멀리서부터 우릴 보며 짖더니 우릴 보고 뒷걸음질 쳤다. 날보고 뒷걸음 치는 개는 니가 처음이야... 목줄을 하고 있지 않아서 달려올까봐 멀리서부터 쫄보 다 돼서 친구 등 떠밀었는데 도망가다니.

겁은 나보다도 많은 이 개는 목청은 어찌나 좋은지 귀가 따갑도록 짖어댔다.

운봉에 도착했을 때 마트에 드러 산 운봉양조장에서 만든 '운봉막걸리'. 지리산둘레길이 걸처져 있는 지역이 다양한 만큼 간별로 사먹을 수 있는 막걸리가 다른데 우리는 이번에 첨 사먹었다. 막걸리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도 운봉생막걸리는 진짜 부드럽고 뒷맛이 텁텁하지도 않아 잘 먹었다. 과자는 전날 등산모자 사러 들린 무인양품에서 산 유통기한 임박 떨이 과자들. 센베에선 생강 맛이 진하게 났다.

원래 막걸리는 새벽 1시에 하는 U-20 결승을 보면서 먹자고 산 건데 평소에도 12시 넘어 잔적이 없는 인간이 하루종일 걸은 날 1시까지 깨있을리가 없었다...

이번 숙소는 운봉에서 2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노치마을 '둘레길민박'이었다. 한 방에 3만원, 식사 한끼에 6천원이었다. 예약은 미리미리 전화로 했고, 우리 말고도 둘레길 손님이 있었다. 나한테 둘레길의 묘미는 들꽃, 논밭의 풍경보다도 땀흘린 후 먹는 민박집의 맛있는 식사이기에 이번에도 엄청 기대를 했고, 역시나 삼삼한 나물과 버섯 된장국이 정말 환상이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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