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아, 슬픈 소식을 전한다. 둘째 고모가 오늘 돌아가셨단다. 

 

엄마가 전해온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 고모와의 대화가,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고모는 오랜 세월 의식 없이 누워 계셨다. 그의 안부는 간간이 간병에 지친 얼굴을 한 고모부가 전해 줄 따름이었다. 고모부조차 얼굴을 본 지 오래니, 병중의 고모 얼굴은 기억도 안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고모는 아빠와 같은 병을 앓고 쓰러졌는데, 아빠는 쓰러지기 전에 병을 발견해 힘든 수술을 하셨어도 의식을 잃지 않았지만 고모는 달랐다. 이따금씩 보는 고모부나 그보다도 더 자주 보지 못하는 사촌오빠들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엄마와 언니와 나를 대입하곤 했던 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가족이 아프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 그 가족 곁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로 된 일상은 어떤 모양일까. 

 

친척은 무엇일까. 생면부지의 남에게는 주지 않을 용돈을, 시간을, 정성을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줄 수는 있지만 잠깐 뿐이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쏟을 수 있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인간관계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는 고모가 누워계실 때 위로의 말 한마디 보태는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명절 때 고모부의 얼굴을 볼 때 가끔 영원히 잠을 자는 고모를 떠올렸을 뿐, 내 일상에 그 어떤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사실조차 아마 잠깐 슬플 뿐이라는 게 더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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