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에게. 2002. 겨울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라는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데기를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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