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다녀오고 저녁에도 일할 거리가 있음에도 밤 여덟시 넘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나면 열시가 넘을테고 그때부터 일을 시작하면 새벽에나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영화를 취소할까, 고민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대책없이 일을 미뤄둘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영화를 봤다. 그렇게 본 영화가 그레타 거윅이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레이디버드>다. 

1.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영화 가운데 내가 본 영화는 단 두편 <프란시스하>와 <매기스플랜>이다. 두 영화다 너무 취향저격이라 외국 배우 이름을 한번에 잘 기억 못하는 내가 '그레타 거윅'의 이름은 단번에 외웠다. 특히 <매기스플랜>은 영화의 웃음포인트가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서 영화관에서 입을 틀어막고 웃은 기억이 아직까지도 날 정도. 

<레이디버드> 역시 그레타거윅이 출연하진 않아도 그녀가 극본, 감독을 맡은 영화라기에 신뢰감이 갔다. 더군다나 평도 꽤 괜찮아서 바로 택했다.

2.

<레이디버드>는 18살 소녀의 성장영화인데 10대라면 누구나 겪었던 감정들을 세밀하게, 그러면서도 너무 각잡거나 진지하게만 다루지 않는다. 크리스틴이란 이름을 가진 캘리포니아의 세크라멘토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도시에 사는 소녀는 자기가 가진 평범성을 싫어한다. '평범'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을 어른들은 이해하지만 십대라면 '평범'은 재미없고 따분하게만 느껴지는 단어일테니까. 이건 크리스틴을 포함한 모든 십대들이 겪는 감정일테다.

그래서 크리스틴은 자기 스스로가 부여한 이름 '레이디버드'를 자기 이름으로 소개하고 세크라멘토를 떠나 늘 뉴욕이나 미국 동부 도시로 떠나고 싶어한다. 학교에서도 늘 주목받는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려하고 싶어해 친한 친구와 멀어지기도 한다. 

3.

내가 이 영화에 반한 이유는 딸-엄마의 모녀관계를 다룬 부분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무도회에 가기 위해 드레스를 고르는 레이디버드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엄마와의 대화 장면이다. 

레이디버드는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엄마는 "널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레이디버드의 반격,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날 좋아하진 않잖아!"

부모-자식의 관계는 당연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묶여져 있을테지만 과연 '사랑'이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상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무감이 들 때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식 모습, 부모 모습을 좋아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싶었던 것. 

나의 케이스를 이야기해보면,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엄마 역시 자식인 언니와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 '부모의 사랑'에 대해선 의심해본 적 없이 자라났다. 하지만 가끔, 내가 열심히 살지 않고 게으르고 나약한 모습일 때도 엄마는 지금의 나를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자식이 늘 최고이길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바람이라지만, 나는 사실 자식이 가장 초라할 때 그 사람을 곁에서 지켜주는 사람이야말로 부모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자식 낳아본 적 없는 사람의 철 모르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저 장면을 보면서, 대체적으로 유쾌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가 사실 얼마나 세밀한 포인트를 잘 짚고 있어 내고 있는지를 알았고 그때 이 영화에 완전히 반했다. 

4.

저 장면 외에도 레이디버드가 엄마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나, 레이디버드를 공항에서 떠나보낸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의 우는 씬은 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꼽을 명장면일 듯. 


이번주에 극장에서 영화 2개나 봤다. <마더!>는 즉흥적, <여배우는 오늘도>는 미루고 미루다 본 것.

 

먼저, <마더!>는 보기 전부터 겁났다. <블랙스완> 감독 작품이라는 데서 호기심이 끌렸지만 그래서 이 감독의 묘사가 보기 버거울 거란 생각부터 들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누구와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블랙스완 보고 충격적인 묘사와 영화 자체가 주는 분위기에 완전 쫄보가 돼 나왔던 기억이 선명한지라..ㅠ-ㅠ 그런데 내공이 는 것인지(는 아닌거 같고) 나 같은 겁보도 보기에 충분히 괜찮았다.

 

1.

기독교적 은유가 한 가득이다.

첫 장면부터 제니퍼 로렌스가 머리를 풀고 흰 잠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속으로 '되게 마리아 같다'고 생각했는데 트루..ㅋㅋㅋㅋ 그 장면의 피부, 머릿결 표현도 뭔가 그런 분위기를 많이 부여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익숙한 서구인 마리아상의 그 마리아다. 지금은 안나가지만 매주 성당에 다니던 시절 성당 앞 마리아상을 보며 머릿속에 입력된 모습은 엄청난 힘을 지님을 또 한번 깨달음.

 

그 다음부턴 더 노골적이다.

아담과 이브, 갈비뼈, 카인과 아벨, 동방박사가 건네주는 바구니, 죽은 후에도 인간을 위해 뼈와 살을 희생하는 예수 등등,, 나같은 허접이도 영화 첫부분부터 눈치를 챌 만큼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은유를 깔아두었다.

 

2.

이런 기독교적 은유를 통해서 감독이 주려는 효과가 무엇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보다 마더(자연)의 공간을 침입하는 인류 역사 전체를 요약해 보여주는 장면이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제니퍼 로렌스가 손수 하나하나 만든 공간을 아무 의식 없이 파괴하는 인간들. 특히 장례식 장면에서 군소 집단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뻔뻔함과 무례함을 보면서도 마더의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그 이후 미친듯이 좁은 공간(자연)에 밀려드는 인간들의 모습엔 공포감이 느껴졌다. 물론 나도 그 인간들 가운데 하나지만. 전쟁과 파괴, 동족상잔의 비극 등을 빠르게 담아내는데 인간들의 잔악한 모양새는 인류 역사 가운데 최근 몇백년 안에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서 여러모로 의미심장했다.

 

3.

그럼 영화 결말대로 이 파탄난 자연과 인류를 구원할 방법은 정녕 완전한 파괴 이후의 재생 뿐인가???????? 흠..

 

 

문소리가 쓰고 촬영하고 출연한 <여배우는 오늘도>

 

1.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조조로 보면 4000원이라 얼마나 많이 노렸는데 매번 귀찮음과 게으름으로 실패. 결국 제값주고 봄. 근데 제값주고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다.

 

2.

영화 자체가 전반적으로 유쾌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사실 러닝타임도 71분밖에 안되긴 함)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도 무언가 느껴지는 씁쓸함 모두를 잘 잡아낸 것 같다. 1부는 여배우로서, 2부는 여배우이자 여성 생활인으로서, 3부는 배우로서 문소리가 그간 배우 경력에서 쌓아온 감정들과 에피소드를 잘 각색한 것 같았다.

 

3.

3막에서 아이와 영상을 보다 갑자기 문소리가 울컥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울컥할 뻔. 그 짧은 찰나에 감정을 만들고 그걸 연기한 문소리가 진짜 대단했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라도 제 가족에겐 자신의 능력으로 만든 작은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다는 게 슬펐다. 어설픈 재능은 치명적이라고 또 한번 느끼면서.

타고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묘한 질투와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요즘인지라, 더 감정이입.

 

갓 개봉한 영화를 이렇게 바로 보다니. <남한산성>은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도 없었는데 삼촌이 보자해서 얼떨결에 봤다. 원래 제사 끝나고 바로 집에 올 계획이었는데ㅠ-ㅠ 어쨌든 명절날 엄빠, 삼촌&사촌동생이랑 영화보는 것도 처음이라 색달랐다. 좀처럼 친하지 않은 친척사이라서 더욱.

 

설마 그 김훈 <남한산성>인가 했는데 맞았다. 감명깊게 읽었던 것 같은데 어떤 인상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독후감이나 짧은 메모, 아니면 이렇게 블로그에 남기는 거 제발 습관들이자. 책 읽는 거 아깝지 않게!

 

1.

마치 책의 장처럼 총 10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다. 그래서 책의 소제목을 그대로 따왔나 했는데 또 그건 아니다. 무슨 효과를 주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이런 영화 잘 안보는 아빠는 10개장으로 나뉜 것에 영화가 너무 길다고 느끼셨다고.

 

2.

나는 그래도(?) 사학과니, 더욱이 명청나라는 전공시간 때 꽤 다뤄서 그런지 흥미롭게 봤다. 혼자 흥미롭게 느낀 포인트가 여럿이었는데

 

대표적으로

- 청과의 화친에 반대하는 신하들이 임진왜란 때 우릴 도와준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하는데 당시 명나라 황제였던 만력제는 명나라 멸망의 초석을 깔았던 것으로 아주 유명한 왕이라는 점. 지금도 그렇지만 특정 국가 지도자를 바라보는 대내외 평가는 이렇게 다르다ㅎ_ㅎ

 

- 영화 내용 중, 새해가 되면서 전쟁통 중에, 것도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빌미로 남한산성을 둘러싸고 청나라 군대가 와있는 상황에서도 조선의 조정은 명나라를 향해 예를 올린다. 이것을 보고 있는 칸을 비롯한 청나라 신하들은 이를 매우 비웃는다. 물론 홍타이지는 인정해주는 척(?)하긴 하지만... 중화사상에 대한 예, 유교사상 등은 기마민족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가 어떻게 비극을 맞았는지 생각해보라. 정말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청은 명을 비웃었겠지만, 결국 자신들도 중화사상의 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끝내 그것을 이뤄냈다. 오랑캐라 비웃음 당하던 홍타이지가 왜 조선의 왕에게 예를 갖추라 요구했겠으며, 또 자신들 가운데 명문가를 찾아 서신을 보내려고 했을까. 무(武)로서의 강점을 갖고 문(文)으로 대표되는 명을 짓눌르지만 문을 무로 교체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 역시 문으로서 세상을 휘어잡고 싶었던 것이다. 문의 강점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3.

또 요새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를 읽고 있어서 그런지(아, 진짜 재밌는데 진짜 끝이 안보이는 책ㅋㅋㅋㅋ) 관련해서도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역시 현재 읽고 있는 레퍼런스는 어떻게든 내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유발 하라리가 여러 차례 반복하는 '상상의 질서'가 영화 보는 내내 떠올랐다. 상상의 질서는 특정 사회나 공동체를 유지하게끔 만드는 것으로 예를 들어 국가, 화폐, 종교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신분계급에 대한 믿음,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 등이다.

 

아마 남한산성이 배경이 된 조선시대의 '상상의 질서'는 '신분질서', '중화사상' 등일 텐데 조선 중후기로 내달을 즈음이니 이 상상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단서가 여럿 나온다.

 

- 대장장이로 나온 고수의 동생역을 맡은 인물이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에게 대드는 장면이 그 예인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역의 대사가 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로 전쟁통이고 왕과 사대부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일지라도 사대부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에게 당시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이가 얼굴을 맞대며 저항의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픽션아닌가? 갑오개혁에서 신분제가 없어진 후에도 노비들은 한동안 여전히 주인들을 주인으로 모셨다는 일화는 유명할 정도인데. 나라의 명운이 다해간다 할지라도 아직은 조선시대의 질서가 굳건한 상황일텐데 말이다. 좀 아쉬운 지점.

- 김윤석과 고수의 맞절 장면 * 이병헌(최명길 역)과 김윤석(김상헌 역)의 마지막 대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면 김상헌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이고 최명길은 주화파로 유연한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런데 남한산성에 갇혀 있으면서 변하는 시대와 미래를 제대로 꿰뚫어 본 것은 김상헌이라는 걸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최명길은 왕과 백성들이 함께,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청과의 수교를 외쳤다. 반면 나루와 대장장이 서날쇠, 그의 동생 등 병자호란이 아니었으면 그러한 신분과 대화조차 하지 않았을 김상헌은 남한산성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결국 기존의 낡은 것(명과 조선, 두 국가를 이어주었던 중화주의, 결국은 신분제까지 포함하는 모든 낡은 것)에서 벗어나야 함을 느꼈다. 이를 알지만 자신이 받아들이기엔 자신 역시 낡은 질서에 젖어있는 인물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지막에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느껴졌다.

 

4.

시국이 시국인 만큼, 어쩌면 지정학적으로 폴란드와 더불어 가장 불행한 나라로 꼽히는 한반도라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하는 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언제 보아도 강렬할 것이다.

 

5.

김상헌과 최명길의 긴 설전을 보여주는데도 관객의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게 그려낸 것이 좋았다. 강렬한 신념, 자기가 몸 딛고 선 사회(여기선 국가)를 위한다는 마음이 정치인의 기본 덕목인 것 같다. 말에 책임은 지지 않고, 자신의 목숨 하나 담보로 걸지 못하 캐릭터(정작 자신의 말 한마디에 수십, 수백이 죽는다)는 영화 후반부 내내 등장마다 관객의 (비)웃음을 샀다. 현실도 다르지 않겠지?

 

6.

박해일은 유약한 왕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이미지다.

박희순이 연기한 이시백은 뿌리깊은나무에서 조진웅이 맡았던 무관 느낌.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위해 싸우는 무관 역은 누가 맡아도 존멋..

 

 

 

1. 오랜만에 양조위 나오는 영화봤다♡ 근데 <비정성시>에서 양조위 목소리 못 듣는 거 실화냐...?ㅠㅠㅋㅋㅋㅋㅋㅋㅋ

 

2. 2.28사건 70주년을 맞아 한창 언론에서 많이 언급했을 때 함께 말하던 영화가 바로 <비정성시>. 양조위 나온다고 하니 보고싶은 뽐뿌가 아니올 수 없었는데 이 영화는 네이버 VOD에도, 왓챠에도, 넷플릭스에도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반쯤 포기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비정성시>를 홍콩반환20주년 특집으로도, 전쟁영화 특집으로도 꽤나 오랜 기간 상영하고 있길래 보러 갔다.

 

3. KOFA가서 영화본 건 처음인데 정말 특이한 게 자막이 오른쪽에 세로로 뜬다. 나 어릴 적에나 이런 것 같은데. 요새는 가운데 하단 자막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이런 건 생각도 못했는데 오른쪽 자막을 정말 오랜만에 보니 고개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게다가 앞좌석이어서 목 나가는 줄. 대만영화라서 그래도 중국어면 듣는 게 어느정도 되니 편할 줄 알았는데 이 드라마에 나오는 언어 가지 수가 몇개인지.. 일본어, 홍콩어,,,에다가 사투리 가득 대만어...ㅎ-ㅎ..

 

4.

대만 현대사의 비극을 임씨네 네 형제를 통해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는데 <자객섭은낭> 찍은 감독 다운 방식이다. 감독이 역사적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극의 역사 해석을 철저히 관객에게 맡긴다. 한번도 2.28사건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렌즈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라디오에서의 방송으로 주인공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만을 비춘다.

<군함도>가 극장독점 이외에도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많은 비평가들을 포함한 나는 이런 방식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5.

러닝타임 지독하다. 전 타임 영화를 안봤어야 <비정성시>에 더 집중했을텐데. 엉덩이 배기고 좀이 쑤셨다. 같이 보자고 내가 꼬신 친구가 시계보는 모습에 괜히 눈치보였다;(는 나도 시계좀 보고 싶었다)

중간중간, "아 이제 끝나려나"하는 장면과 음악이 종종 나오는데 그건 감독을 잘 모르고 하는 기대였다. ㅋㅋㅋㅋㅋㅋ 대체 포스터의 그 장면은 언제 나오는 것이며(히로미와 임청은 언제 결혼하고, 또 언제 애를 낳냐고오오) 영화가 주는 아픔이나 메시지는 충분히 느꼈으나 지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ㅠㅠ

 

6.

양조위는 최고다. 젊은 양조위는 더 최고다

1.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봤다. 매마수에 맞춰 대강~ 집앞 cgv에서 오천원 주고 볼라다가, 차라리 조조 아이맥스로 보라고 해서 솔깃.

사실 교통비 다 따져보면 굳이 궁상떨 거 없었지만 어쨌든...

 

<덩케르크>의 기본 틀은 2차대전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관한 전쟁영화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가 썼듯,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쟁영화의 공식과는 많이 다르다. 이동진은 '재난영화'라 칭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좋았던 지점도 여기에 있다. 피 튀기는 잔인한 장면, 특정 인물의 영웅화를 싫어해서인지 전쟁영화는 잘 안찾게 되는 부류의 영화인데 덩케르크는 전쟁영화 공식을 따라가지 않아서 좋았다.

 

역사전공하면서 혹은 역사 개론서를 읽을 때, 고대는 그렇다쳐도 근대로 넘어와서까지도 전쟁이 벌어지면 주목받는 건 늘 몇몇의 영웅인 게 늘 싫었다. 너무나 쉽게 '이 전쟁에선 몇 만 명이 죽었다' 혹은 '몇 백 명의 사상자만 남기고 승리했다'면서 전쟁에 참가한 이름없는 이들의 목숨을 한줄 처리하는 게 너무 싫었다. 보잘 것 없다 치부되는 병사 한 명의 목숨도 그 한 명에겐 세상 전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보잘 것 없는 병사가 될 가능성이 99.999999999%다.

 

이 영화에서는 바로 특출난 영웅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의 얼굴을 비춘다. 몇명 빼고는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다. 억지 눈물도 없고 사연 대결도 없고, 관객이 "그래도 A가 아닌 B가 사는 게 더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 안들게 해서 좋았다. 그냥 모두가 저 지옥불같은 전쟁통 속에서 살아남길, 살아만 나가길 바라게 하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았다.

 

또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흔하지만 계속 강조돼야 할 교훈. 전쟁엔 그 어떤 정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2. <옥자> 봉준호 감독

 

이건 어학연수 같이 한 친구들이랑 봤다. 내가 보자고 했던 영화인지라 취향에 안맞을까, 조금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봉준호인데.

 

옥자가 한눈에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가 아닌 게 오히려 좋았다. 초반부 미자, 옥자의 시간에서 자연스럽게 옥자에게 미자만큼이나 정이 쌓이게 하니 관객들 역시 저절로 옥자가 사랑스러워진다. 특정 대상을 향한 감정은 역시 함께 보낸 시간들과 추억에서 나온다.

 

폴 다노 볼때마다 왜이렇게 섬찟하지, 했더니 드니 빌뇌브 <프리즈너스>에서 고문 당하던 그 배우였다. 소름... ㅋㅋㅋㅋㅋ 연기 잘해서 완전히 다른 배우같이 느껴지긴 한데 한번 보면 각인되는 마스크의 배우라 겹쳐 보였나 보다.

 

변희봉의 깨알 연기 너무 좋다ㅋㅋㅋㅋㅋㅋ

 

루시&낸시 자매 얘기는 뭔가 더 풀어내야 했지 않았을까 싶다. 어딘가 개운치 않은 느낌.

 

미자가 옥자와 아기 돼지까지만 구출해내는 결론이 좋았다. 울타리를 부숴 모든 돼지들에게 자유를 안겼으면 판타지였을 거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그나마의 희망은 딱 아기돼지까지 인 것 같다.

 

역시나, 인간의 육식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작품.  쿠씨네에서 보고 나왔는데 건대 주변에 어찌나 삼겹살집이 많은지.. 마트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고기를 보면서 이것들 역시 어떤 생명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정도만 자각해도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3. <프란츠> 프랑소와 오종

 

이건 1차대전 이후 독일-프랑스 이야기.

 

기본적으로 흑백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는데 중간중간 컬러로 화면이 바뀐다. 시점의 변화도 없고, 특정 인물이 출현도 아닌 상황에서 왜 컬러로 바뀔까,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영화 중반부 쯤에서 확실히 알게 된다. 컬러로 되는 부분에서 등장 인물은 거짓말을 하거나, 이뤄질 수 없는 소망과 기대를 말하게 된다는 걸. 이 사실을 깨닫고 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어떤 '바람'을 말하는 순간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데 마음이 싸하게 가라앉는다.

 

여주인공의 연기, 외모, 그 중에서도 슬플 때의 눈이 매우 인상적이다.

 

4. <그후>

 

지맞그틀의 또다른 버전, 이면서도 밤의 해변해서 혼자의 男버전? 느낌.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부터 꾸준히 '껍데기'로 살 것인가, '진짜'로 살 것인가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듯하다. 분명 이 필름을 찍은 감독의 처지와 맞닿아있겠지 싶다. 껍데기와 진짜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순간의 감정이 내리는 기준을 내려도 되는가, 아님 이성이?

 

김민희는 점점 더 예뻐진다..

 

5. <엘르>

 

폴 버호벤 감독의 작품이자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라고 하니, 호불호는 엇갈려도 강렬함은 분명한 영화.

 

 

 

 

볼 영화가 쌓였다. 2,3월은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따라잡기만 해도 정말 풍족한 달이다.

 

 

비록 노미네이트 되지도 않았고, 국내에서 그다지 흥행되지도 않았지만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밌었던 영화.

'그레타 거윅형 여성'이란 정의를 새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그레타 거윅이 연기하는 여성들은 정말이지 매력이 넘친다.

영화 초반부부터 내 코드를 저격하는 유머에 입을 틀어막고 웃기시작했고, 마지막 장면까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영화보면서 정말 안 우는 편인데 이 영화를 보다, 마음 저 깊숙한 곳이 흔들리는 눈물이 나왔다.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어떤 장면에선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정도. 미셸 윌리엄스는 몇 씬 안나오는데도 미친 연기를 선보여서 나올 때마다 울고..

 

가벼운 영화는 아닌데 그렇다고 시종일관 무겁게 극을 이끌어가지도 않아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거장'이란 이름은 괜히 붙여지는 게 아니다. 최전성기 이후 50여 년이 지났는데도 대단한 감독.

히치콕의 작품이 대단하다는 건 단지 '서스펜스'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히치콕의 흑백영화가, HD를 넘어 UHD까지 나오는 21세기에 봐도 여전히 재밌고 신선해서 충격적이다. 흔히 사람들이 봐야한다는 '고전'의 반열의 오른 영화들에 대한 나의 지독한 편견은 고전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나 충격적이었지 그 영화의 각 요소요소들을 흡수하고 활용하고 또 재활용한 영화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 지금 무슨 재미가 있냐는 거였다.(고전이라는 의미를 떠나서) 그래서 히치콕 감독 영화가 CGV에서 재개봉한다고 했을 때에도, '과연 재밌을까?'하는 의구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그래도 호기심에 '현기증'을 보게됐는데, 이게 웬 걸? 이게 진짜 50,60년대 만들어진 영화라고? 응?? 정말, 내가 영화감독 지망생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극장을 나왔다. 내가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면 절대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장의 작품을 보면 감탄과 함께 자괴감에 빠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히치콕 첫 영화 <현기증>

반전의 요소, 남녀 주인공의 심리적인 서스펜스, 그리고 숨이 헉하고 막혔던 마지막 장면..

패션 스타일의 유행이 돌고 돌아서 그런지 여주인공 스타일과 헤어가 촌스럽지 않다.(그냥 여주가 예뻐서일지도 모른다 껄껄..)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저게 흰 벽인줄 알았지, 화장실 바닥일 줄 누가 알았으리오..ㅠㅠ

<싸이코> 줄거리의 큰 얼개는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차용된 탓인지 반전의 요소를 영화 전반부에서 충분히 추측가능했는데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고 스릴감이 넘친다. 특히 여주인공이 회사 돈을 들고 도망칠 때 심리묘사는 굳굳. 같이 본 친구랑 '저렇게 벌벌 떨면서 무슨 돈을 훔치겠냐'며, 저렇게 개미심장만한 게 꼭 우리 같다며... ㅎ.... 착해서가 아니라 간이 콩알만해서 우린 거짓말 못하고 산다면서 이상한 곳으로 대화가 삼천포로 빠졌다.

 

<싸이코> 역시 마지막 장면은 소름...ㅠ-ㅠ

 

 

<새>를 보기 전에 언뜻 봤던 영화평에서 이 영화를 두고 '괴수 영화의 시초'라 평했는데 아주 절묘한 한 문장이었다.

 그야말로 '괴수영화', 이 영화에서 괴수에 해당하는 새떼가 출현한 이유도,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유도 전혀 설명이 없다. 이유를 몰라 더 극심해지는 공포, 그 앞에서 언론이나 학계는 아무런 힘이 없는 허공에 떠도는 추측만 해대는데 관객입장에서 더욱 소름이 끼치는 지점이다.

더욱이 앞에 여주와 남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온갖 암시만을 남기고 극 중 궁금증이 한껏 높아지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다. 제대로 맥거핀.... 난 낚여서 계속 허덕였다. '둘이 그래서 무슨 사인데?' '왜??'...

 

이 영화 보고 나서 정릉천에서 운동할 때 새가 퍼덕이면 소름이 돋는다는 게 함정;; 하하..

 

 

구글링하다가 봤던 굉장히 감각적이었던 포스터.

 

 

이제 저 까만새만 보면 무섭다. 몸을 움츠리게 됨.

 

 

드디어 본 <이창>.

잡지사 사진기자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거동하지 못하게 되자 빌라 창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스토리인데,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한데도 내러티브가 굉장히 풍성하다.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 간호사(?) 셋이 주된 인물인데 셋의 대사가 전부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특히 간호사가 극 초반부에 하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봤다.(결혼에 대한 이야기;)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본능적인 궁금증, 즉 관음증을 다루는 영화인데 아마 관객 대부분이 영화를 보면서 여주인공과 비슷한 심리변화를 겪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남의 집을 훔쳐보는 남친이 무섭고 괴이하게 느껴지다가 곧, 나 역시도 관음증이 있는 인간이기에 내가 본 것, 들은 것을 근거로 추리해보고 궁금해하는.. 제프, 리사, 스텔라가 나중에는 똘똘 뭉쳐 함께 앞의 집 사람들을 훔쳐보는 장면에선 저절로 조소를 머금게 된다.

 

히치콕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영화가 군더더기 없이 참 깔끔하다는 것인데, <이창>이 그 '깔끔함'의 대표작인 것 같다. 세트 자체가 제프의 집과 맞은편 이웃들의 모습으로 한정되서 인지 번잡한 느낌없이 잘 정돈되있다는 느낌을 준다.

 

 

<열차안의 낯선자들>

 

히치콕이 생전에 찍은 작품이 50여 편이 넘는데 이번에 CGV에서 재개봉 한 영화는 위에 언급한 네 편 뿐이다.

찾아보니 <북북서로>나 <레베카> 등 네 작품 이외에도 재미난 게 넘치는 것 같아서 침을 흘리다 네이버에서 <열차안의 낯선자들>을 다운받았다ㅋ_ㅋ

(다운 가능한 작품이 몇 개 안되서 너무 아쉽다ㅠㅠ 기준이 무엇이냐 ㅠㅠㅠㅠ)

 

이영화를 보기전 'train'이란 제목 때문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열차' 느낌의 스릴러물일까, 했는데 전혀 다른방향 @.@

 

이 영화는 '교환살인'에 관한 것인데 심리전이 정말 대단하다. 살면서 한번쯤은 누구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해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해칠 수 있을까에 대한 나쁜 상상들을 해 볼 텐데 이 작품은 그 지점을 아주 잘 건드린다. 도의적으로 수면밖에 꺼낼 수 없는 욕망들을 극 초반부부터 들춰내 영화에 몰입이 더 잘 된다.

 

또 심리전 뿐만이 아니라 후반부의 테니스 경기&라이터 꺼내기의 교차장면이나 회전목마장면은 엄지척bbb 놀이공원가서 회전목마밖에 못 타는데 이젠 회전목마조차도 못할 지경;;ㅋㅋㅋㅋㅋ

 

+)

앞으로 보는 대로 히치콕의 작품들을 더 추가.

<히치콕 트뤼포>는 영화의 기초가 된 책을 보는 게 더 나을 듯.

 

1.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싶었는데 국내 개봉도 안하고 도저히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켄 로치 감독의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봤다. 우연한 선택인데도, 보고 나서 한참이나 깊은 여운에 빠졌다.

 

2.

한때, 한국은 동양의 아일랜드라고 불렸단다. 왜? 그런지는 이 영화 한편만 봐도 감이 온다. 먼 나라의 독립투쟁과 내전을 다루는데도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조악해보이지만 마음 간절히 기적을 바라게 되는 독립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점령군, 독립의 방향과 국가방향을 두고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독립군의 내분은 우리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나온다. 영국군의 극악무도함엔 자동적으로 감정이 이입돼 화가 날 지경.

 

3.

'조국이란 게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무언가에 반대하는 건 쉬워도 무언가를 찬성하는 지 아는 건 어렵다'

 

정말 조국이란 건 뭘까. 내 집과 내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려면 조국이 존재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조국은 도저히 손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것인 듯하다. 점령군 1명을 죽이면 그 배 이상으로 내 동료와 민족이 앙갚음을 당하는 상황. <암살>에서 이정재가 '독립이 올 지 몰랐다'는 변명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겐 어쩌면 변명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기조차도 점령군 몇 명을 총살하고 나서 훔치는 수준이고, 눈 앞에서 점령군에게 희롱과 위협을 당하는 사람을 보아도 총알이 다 떨어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수준에서 과연 독립은 가능한 것이었을 런지. '가능성' '현실성' '이성' '효율성' 이라는 근대사회가 낳은 기준들에 따르면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은 난망할 뿐이 아닐 수 없다.

 

4.

자신들을 숨겨준 아주머니를 윽박지르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생을 제 손으로 죽일 만큼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보다 더 치열하고 끔찍하다. 왜, 이런 빌미를 안겨준 이들이 아닌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더 고통을 당하고 마는 걸까. 우리나라도 분단의 원인을 우리가 제공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을 겪고 분단상황은 한국에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을 가져온다. 지금만 해도 사드배치로 난리이지 않는가.. 한미동맹 덕에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다지만 애초 냉전시기 남북을 갈라놓는 원인은 미소의 세력 다툼 아닌가.

 

시리아 내전만 해도. 제국주의 시기에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서구가 갈라놓은 경계선 때문에 내전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고통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이어 받는다. 국제관계에서 어떤 정의나 도덕은 없다지만, 역사는 너무 잔인하고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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