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

켄 로치 감독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onjung221 2016. 7. 14. 16:29

1.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싶었는데 국내 개봉도 안하고 도저히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켄 로치 감독의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봤다. 우연한 선택인데도, 보고 나서 한참이나 깊은 여운에 빠졌다.

 

2.

한때, 한국은 동양의 아일랜드라고 불렸단다. 왜? 그런지는 이 영화 한편만 봐도 감이 온다. 먼 나라의 독립투쟁과 내전을 다루는데도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조악해보이지만 마음 간절히 기적을 바라게 되는 독립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점령군, 독립의 방향과 국가방향을 두고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독립군의 내분은 우리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나온다. 영국군의 극악무도함엔 자동적으로 감정이 이입돼 화가 날 지경.

 

3.

'조국이란 게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무언가에 반대하는 건 쉬워도 무언가를 찬성하는 지 아는 건 어렵다'

 

정말 조국이란 건 뭘까. 내 집과 내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려면 조국이 존재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조국은 도저히 손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것인 듯하다. 점령군 1명을 죽이면 그 배 이상으로 내 동료와 민족이 앙갚음을 당하는 상황. <암살>에서 이정재가 '독립이 올 지 몰랐다'는 변명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겐 어쩌면 변명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기조차도 점령군 몇 명을 총살하고 나서 훔치는 수준이고, 눈 앞에서 점령군에게 희롱과 위협을 당하는 사람을 보아도 총알이 다 떨어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수준에서 과연 독립은 가능한 것이었을 런지. '가능성' '현실성' '이성' '효율성' 이라는 근대사회가 낳은 기준들에 따르면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은 난망할 뿐이 아닐 수 없다.

 

4.

자신들을 숨겨준 아주머니를 윽박지르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생을 제 손으로 죽일 만큼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보다 더 치열하고 끔찍하다. 왜, 이런 빌미를 안겨준 이들이 아닌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더 고통을 당하고 마는 걸까. 우리나라도 분단의 원인을 우리가 제공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을 겪고 분단상황은 한국에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을 가져온다. 지금만 해도 사드배치로 난리이지 않는가.. 한미동맹 덕에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다지만 애초 냉전시기 남북을 갈라놓는 원인은 미소의 세력 다툼 아닌가.

 

시리아 내전만 해도. 제국주의 시기에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서구가 갈라놓은 경계선 때문에 내전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고통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이어 받는다. 국제관계에서 어떤 정의나 도덕은 없다지만, 역사는 너무 잔인하고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