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열등감

onjung221 2016. 10. 8. 19:32

1.

스터디 시작 30분 전, 카페에 앉아있는데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무슨 요일에 스터디를 하는지 알고 계시는 터라 나도 그냥 카톡으로 답했다.

엄마가 평소 그런 말을 하는 편이 아닌데 갑자기 '보고싶다~'고 하길래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는데

엄마 옆에 반 선생님의 아들이 가출을 했다나, 고2 중간고사를 앞두고 집을 나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가출한 아들의 형은 의대에 갔는데 동생은 벌써 가출 두번째라며..

 

'나도 언니 의대갔는데 난 가출도 안하고 착하지?'라고 가볍게 답장하니 엄마가 '너무 착해~ 맛있는 거 사줄게~'라며 답장을.. ㅎ.ㅎ

 

2.

엄마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나, 둘다 행간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엄마는 요새 들어 뭔가 미안해하신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똑똑했던 언니 밑에서 자란 나를 많이 칭찬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나도 예전에야 섭섭하고 속상했지만 이제는 많이 의연해졌다. 언니는 언니고, 나는 나고. 나도 똑부러지게 제 할일 잘하고 나의 삶을 올곧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엄마는 예전에는 크게 신경안쓰시다가 최근에 생각이 많아지셨는지 괜히 미안해하신다. 후후

 

3.

중3 첫 중간고사 때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한 적 있다. 너무 신이나 성적표를 들고 엄마 퇴근하기만을 기다려 바로 보여드렸는데 '잘했네~' 한 마디의 칭찬이 끝이었다. 당시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미적지근한 반응이어서 살짝 서운했지만 이내 '언니는 매번 이런 성적표를 가져와서 그런가?' 결론지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같은 반 친구들이 부모님 반응이 어떻냐며 매우 궁금해했는데, '그냥 잘했다고 하던데?'라고 답하니 '그게 다야??????'라는 반응이 대부분.

 

이 날들의 장면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뭔가 내 머릿속에 뚜렷히 남아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성취들에 막상 나의 부모님들은 무덤덤할 때, 마음 속에 상처가 됐다. 친구나, 선생님의 칭찬이 되레 버겁게 느껴지는. '나는 이런 칭찬을 받을 만큼 잘한 건 아닌데...'

 

나에 대한 기대보다 언니를 향한 기대가 크다는 걸 직간접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느껴질 때 많이 슬펐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온전히 내 선택으로 이뤄내는 것들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그런 서운함과 섭섭함들은 사라졌다. 내 삶에 중심이 나의 만족이란 걸 아니까. 설령 부모님이라도 부모님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무언갈 하진 않으니까.

 

4.

'엄마도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 살아보는 것'이라는 대사가 어느 영화에 나왔는지 소설에 나왔는지 기억에 안나지만 이제 이해한다.

엄마도 엄마로서 처음 살아보는 것.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역을 우리 엄마는 너무 충분히 잘해주었고 또 잘해주셨으니까 이젠 어떤 섭섭함도 없다. 나도 이제 같은 어른으로 이해를 할 수 있다.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