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엘리베이터
1.
3월의 어느날, 공부할 채비를 마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작은 하얀색 강아지가 튀어나왔다. 강아지는 문 앞에 서있는 내 주변을 서성였는데 그 10초도 안되는 찰나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했고,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강아지는 엘리베이터 안 주인이 불러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비상계단으로 내려왔다.
작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같은 주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개가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왔고 너무 놀라서 이땐 진짜 주저앉았는데 주인은 "타세요~"라고 툭 한마디 던지더라. 진짜 너무 무섭고 화가 났지만 개가 주변에 있어 주인한테 한마디도 못하고 있는 힘껏 째려본 게 전부였다. 이때도 역시 난 비상계단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2.
어릴 때, 난 기억도 안나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제법 큰 개에게 쫓긴 적이 있다고 엄마는 말했다. 울면서 엄마가 있는 쪽으로 도망쳐 왔다고. 지금은 기억도 전혀 나지 않나는 당시의 경험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개(혹은 강아지)는 크기의 대소에 상관없이 나한텐 공포의 대상이다. 이건 호오의 감정이 아니다. '공포심'이다. 개가 싫다면 싫은 마음을 품고 개 옆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난 그렇게 못한다. 개가 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개에 목줄이 없어 자유분방하게 뛰어다닐 수 있고 나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온 몸이 공포심으로 휘감긴다. 대부분은 다른 길로 빠지거나 뒤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으면 개가 지나가는 순간 눈을 질끈 감는다.
3.
국민 대다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난 작은 강아지도 무섭다'고 얘기하면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다.(이해를 바라지도 않지만) 이 귀엽고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 무서워할 수 있지라고 되묻는 말에 어릴 때의 경험까지 구차하게 꺼내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개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싶고 극복하고 싶지만 개가 지나만 가도 오금이 저릴 정도인데 가능할까 싶은..
4.
바라는 건 이해가 아니다. 그저 '매너'만 지켜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 강변 주변을 산책할 때 목줄을 애완견에 착용하는 건 개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 전체의 질서를 위해서다., 3평 남짓의 엘리베이터 안에선 개 목줄만 맸다고 스마트폰만 만질 게 아니라 개를 자기 품에 안고 있어야 마땅하다.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을 방해하지 않고 존중하기 위해서 목줄을 달라고 하는 것인데 좁은 공간에선 개가 목줄 착용과 상관없이 방방 뛰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인지하지 못할까. 사람 자식도 제 눈에만 이뻐보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왜, 애완견에겐 그 사실을 적용시키지 못하는지. 그리고 최소한 그러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의 개때문에 놀랐다면 사과부터 해야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ㅠㅠ..